기사입력 2009.03.25 23:40 / 기사수정 2009.03.25 23:40
[엑스포츠뉴스=김경주 기자] 그토록 원하던 빛을 봤습니다. 포항 스틸러스의 중앙 수비수 김형일이 뒤늦게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달았습니다.
대한축구협회는 25일 오후 수비 보강을 위해 포항의 김형일을 추가 선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 늦은듯한 선발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가 가진 능력을 인제야 제대로 인정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프로 2년차, 187cm의 큰 키에 듬직한 체격을 지닌 김형일은 K-리그에서도 알아주는 파워형 수비수입니다. '글레디에이터'라는 별명이 전혀 무색하지 않을 정도죠.
그라운드에서 골을 넣으려면 귀찮을 정도로 몸으로 달라붙는 그를 지나쳐야 합니다. 국내 공격수는 물론 외국인 선수까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진득한 수비를 펼치는 김형일은 공중볼 장악 능력 또한 뛰어난 수비수입니다.
지난 7일 K-리그 개막전에서 수원에 2-3 승리를 거둘 때도 황재원의 몸과 김형일의 '머리'가 포항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으니까 말 다했죠.
그가 뛰는 경기를 보다 보면 '힘들지도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언제나 열심입니다. 구르고 부딪히고 어찌 보면 처연하다 싶을 정도로 상대 공격수에게 달라붙어 더 이상의 전진을 허용하지 않는 그를 보고 있으면 가끔은 보고 있는 사람이 더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을 정도죠.
항상 악착같이 뛰는 본인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공격수를 괴롭히는 만큼 공격수들도 그를 떨쳐내려 애쓰기 때문에 거친 몸싸움은 90분 동안 잠시도 멈추질 않습니다.
상대 선수의 손에 얼굴을 맞기도 하고, 공중볼 다툼을 하다 공중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는 아파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이겨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책망으로 그라운드에 엎드려 잔디를 주먹으로 내려치는 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몰매를 맞은 것 같다."라고 혀를 내두르면서도 다시 그라운드에 나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또 다시 근성을 발휘합니다. 90분 동안 벌어지는 그 어려움이 중앙 수비수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김형일의 국가대표 선발은 어쩌면 그래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프로에 입단해 대전의 유니폼을 입고 만년 하위권이었던 대전을 6강까지 이끄는데 큰 공을 세웠던 그는 그러나 지난여름 생각외의 트레이드로 포항의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그 후 자리를 잡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던 김형일은 포항 이적 후 근 반년 만에 황재원과 더불어 포항의 문 앞을 지키며 진정한 웃음을 되찾았습니다.
얼마 전 대구와의 K-리그 3R에서 프로 데뷔골에 성공하기도 한 김형일은 국가 대표 승선으로 그 기쁨이 두 배가 됐습니다.
국가대표에 선발된 소감을 묻자 김형일은 잠시 숨을 고른 뒤 "기쁘다."라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아직 채 실감이 나지 않는 듯한 무심한 말투였지만 아마 파주에 소집되고 검고 빨간 줄무늬가 아닌 가슴에 호랑이가 새겨진 빨간 유니폼을 받으면 조금은 더 와닿겠죠.
백업 멤버로 선발했다는 허정무 감독의 말처럼 아마 그가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밥 먹듯이 해왔던 경쟁을 또 다시 새로운 누군가와 해야 합니다.
쉽진 않겠지만, 늘 그래 왔듯이 김형일은 진득하니 들러붙어 자신에게 올 또 한 번의 빛을 기다릴 겁니다. 그 빛이 그의 것이 되는 날, 포항을 지나 대한민국의 그라운드 또한 그의 것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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