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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 삼국지] '처음의 꿈'을 이뤄낸 안양 한라…그들의 정규리그 우승에 부쳐

기사입력 2009.01.26 02:21 / 기사수정 2009.01.26 02:21

김경주 기자



[엑스포츠뉴스=김경주 기자]
'손호성, 파이팅!'을 외치는 목소리에 평소 무뚝뚝하던 골리가 손을 들어 답을 하고, 페이스 오프를 하러 나온 1조의 숙여진 등에선 빳빳한 긴장감과 승리에 대한 열망이 타고 흘렀습니다.

원정이었지만 홈이나 다름없는 응원을 등에 업고 달렸습니다. 이 경기만 이기면, 정규리그 우승. 한국팀으로선 '처음'으로 그 영광을 얻을 수 있는 상황. 59분이 지나고, 이제 남은 시간은 단 10초. 전광판이 19:50을 가리키자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지막 카운트 다운이 울리고 목동 빙상장은 그야말로 함성으로 가득 차올랐습니다. 빙상장이 터져나갈 듯 외쳐대는 기쁨 속에서 안양 한라 선수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스틱을 집어던지고, 글러브를 벗은 채 양팔을 치켜들며 자신 바로 옆의 동료를 품에 안았습니다.

정규리그 우승. 그토록 꿈에 그리던 그 정상이 이제 꿈이 아닌 현실이 된 것입니다. 역사가 새로 쓰였습니다.

2003년, 한·중·일이 참가해 시작된 아시아리그에서 한국은 내내 일본의 빛에 가려 2인자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05-06시즌 펄펄 날며 2위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정상에 선 적은 없었죠.

25일 오후 목동빙상장에서 열린 08-09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안양 한라가 만난 팀은 국내 라이벌 하이원이었습니다. 하이원은 시즌 5위가 확정된 상태라 승리가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라이벌'이 어디 그렇겠습니까.

경기 시작을 알리는 페이스 오프와 동시에 총알이 튀어 오르듯 빙판을 박차고 나선 양 팀 선수들은 속도감 넘치는 경기를 펼쳤습니다. 경기 기록을 담당하던 안양 한라의 신인 선수가 "오늘 경기 정말 빠르다."라고 할 정도면 말 다했죠.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쉽게 골이 터지지는 않았습니다. 1피리어드 내내 조심스레 서로 진영을 탐색하는 데 그쳤습니다. 탐색전이었지만, 몸싸움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했습니다. 빠르고 거칠게 진행된 1피리어드에서 득점을 올리지 못한 양팀은 2피리어드 들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2피리어드 4분 35초, 안양 한라가 먼저 기선을 제압했습니다. 패트릭 마르티넥의 패스가 김근호의 스틱에 닿았고, 그대로 하이원의 엄현승 골리를 지나 오른쪽 골망에 꽂혔습니다. 

경기 전 안양 한라의 한 팬을 마주친 김근호는 골을 요구하는 팬에게 꼭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고, 첫 골로 그 약속을 지켜냈습니다.

이어지던 팽팽한 긴장감은 김근호의 첫 골로 다소 안양 한라로 기울었습니다.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브락 라던스키와 브래드 패스트, '코리안 로켓' 송동환까지 계속해서 하이원의 골문을 노렸죠.

그러나 엄현승 골리의 신들린 듯한 선방은 안양 한라에 추가골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엄현승 골리의 선방 속에서 기회를 잡은 하이원은 구와바라 라이언 하루오와 권태안을 주 공격에 내세웠습니다.

이러한 작전이 주효하게 먹혔습니다. 안양 한라의 손호성 골리가 골대 앞으로 나왔고, 하이원 공격수를 놓치자 그 틈을 타 권태안이 동점골을 성공 했습니다.

하이원이 기뻐한 것도 잠시, 안양 한라는 1분 16초 만에 패트릭 마르티넥이 다시 골을 성공 시키며 역전에 성공했죠.

이 날, 명절 연휴임에도 목동 빙상장에는 공식 기록상 2305명이라는 많은 관중이 두 라이벌의 경기를 보러 찾아왔습니다. 하이원의 홈 경기로 진행된 경기였지만 군데군데 눈에 띄는 안양 한라의 유니폼과 선수들의 이름이 적힌 응원 피켓은 흡사 안양 빙상장 같았습니다.

뜨거운 열기 속에 안양 한라가 앞선 채로 2피리어드가 마무리되고, 시작된 3피리어드에서는 라이벌전답게 또 한 번의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하이원 측에서 안양 한라의 패트릭 마르티넥의 스틱이 부정스틱임을 주장했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근 10분 가까이 경기는 중단되어야 했죠.

영문도 모른 채 관중은 경기를 기다렸고, 시즌 내내 같은 스틱을 써온 패트릭은 당황한 표정이었습니다. 결국, 패트릭은 스틱을 연마기에 갈아 폭을 맞췄고, 부정 스틱 사용으로 2분간 퇴장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 해프닝은 마치 의도한 것처럼 상승세를 타던 안양 한라의 맥을 끊는 데 성공했습니다. 경기가 재개된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하이원의 고브르와는 동점골을 터트렸고, 전광판은 다시 2대2, 팽팽한 균형을 맞춘 채 원점으로 돌아섰죠.

깨지지 않을 것 같던 평행선을 다시 안양 한라쪽으로 기울게 한 건 맨 처음 그 균형을 깼던 김근호의 스틱에서 나왔습니다. 하이원의 골문 앞에서 그 작은 골대를 향해 더 작은 퍽을 집어넣으려는 안양 한라와, 끝까지 지키려는 하이원의 치열한 스틱 싸움이 벌어지자 지켜보고 있던 관중석의 함성은 점점 높아졌습니다.


스틱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안양 한라였고 승리를 목격한 관중석은 터져 나갈듯한 함성으로 뒤덮였습니다. 김근호의 골은 그대로 팀의 우승을 확정 짓는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결승골이 되었고 마지막 10초의 카운트다운 후, 안양 한라는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골문을 지키던 손호성이 포효했고, 모든 선수가 손에 들고 있던 스틱과 글러브를 벗어 던진 채 벤치로 달려갔고, 서로 껴안았습니다. 벤치에 있던 코칭스태프도 눈시울이 붉어진 채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기에 바빴죠.

벤치 바로 위에 모여 목이 터져라 안양 한라를 외쳤던 서포터 또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함께 장식하며 행복을 만끽했습니다.

이 날 역사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김근호는 "시즌 내내 원하던 대로 플레이가 되지 않아 마음이 무거웠는데,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정규리그는 끝났지만, 이제 더 중요한 플레이오프가 남았다. 정규리그 우승을 최종 리그 우승까지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해서, 공격수로서의 내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다가올 플레이오프에 대한 각오를 밝혔습니다.

부임과 함께 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끈 '전설' 심의식 감독은 "선수들 하나하나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서 낸 좋은 결과라고 생각한다."라고 운을 뗀 뒤 "무척 기쁘지만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남은 플레이오프를 잘 치러 마지막에 다시 한번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리그 우승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서로에게 샴페인을 뿌리고 아이스박스에 가득 차 있던 얼음물을 끼얹어도 얼굴엔 마냥 웃음만 가득했습니다. '정규리그 1위'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빙판을 도는 중에도 서로 수고했다고 안고 다독여주는 중에도 행복함은 톡톡 터져 올랐습니다.

힘들었습니다. 아직도 비인기종목이라는 설움과 단 두개뿐인, 그래서 아시아 3개국이 모여 겨우 리그를 만들 수 있는 아이스하키입니다.

그러나 그래서 더 열심히 했고, 항상 위에서 내려다보는 일본이 싫어 그 아성을 무너뜨리려 부던히도 노력했습니다.

노력 속에서도 조금은 삐걱거렸던 시즌 초반, 스타 출신 감독에 대한 불신과 우려를 모두 떨쳐버리고 어느 때보다 힘겨웠고 어느 때보다도 값진 이 행복이 3월, 이 마지막에도 터져 올라 그토록 원하던 '처음'을 모두 가져갈 수 있길 바라봅니다.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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