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19 23:47
경제

광주 유혈진압 직후 미국 600만달러 경협 제공, 위키리크스한국 보도

기사입력 2018.01.04 10:37

김지연 기자

[엑스포츠뉴스 김지연 기자] 신군부가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유혈 진압한 직후 미국이 대규모의 경협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등 인권보다 경제적 이해관계에 더 무게를 두는 정책을 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위키리크스한국은 30여년간 광주항쟁의 진실을 탐사보도해온 팀 셔록이 미국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포린폴리시인포커스(FPIF) 기고를 통해 “새로운 미국 문서들로 1980년 한국의 광주 항쟁에 대한 독재 정권과 워싱턴의 공모가 드러났다.” 라고 주장했다고 4일 보도했다.

위키리크스한국은 입수한 각종 문서들을 분석한 결과 당시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가 신군부-시민대표간 협상을 중재하지 않은 점 등 미국이 당시의 과오들을 광주시민들에게 여전히 사과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팀 셔록은 “비밀문서들을 통해 미국 정부가 광주항쟁의 무력 진압을 방조한 직후 6백만달러 규모의 미국의 핵발전 설비와 엔지니어링 서비스 수출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며 “안타깝게도 광주에서 깨닫지 못한 가르침이 바그다드에서 카불, 자카르타까지 반복되고 있다.” 고 지적했다. 추가로 한국의 위기가 미국의 안보 이익을 불안정하게 할 수 있다고 우려한 카터 행정부가 한국군이 학생과 노동자 시위자들을 진압하는 데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승인했다는 것이다.

“광주 시민들이 군의 만행에 반격했을 때 미 행정부는 진압을 위해 미군의 지휘 하에 있는 한국 군대의 파견을 승인했다.” 며 “카터의 행동은 한국에서 거의 8년 이상의 억압적인 군정의 길을 닦는 것을 도운 것이었고 이 시기에 지속된 한국 내 반미 감정의 물결을 일으키는 촉발점이 된 셈이었다.” 고 평가했다.

1980년 5월 17일 “시위대를 진압하는 데 군대를 이용하는 것을 막지 않겠다.” 는 워싱턴의 공지를 받은 후 전국적인 계엄령을 선포하고 도시와 교정을 휩쓸며 운동 주동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군대를 보냄으로써 커져가고 있던 민주화 운동을 종식시켰다고 지적했다.

군대는 몇 시간만에 광주로 이동을 시작했다. 한 때 광주 시민 위원회가 미 대사 윌리엄 글라이스틴에게 휴전 협상을 위해 개입해주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대사관은 요청을 냉정하게 거절했다.

5월 27일 이른 아침, 연합군 산하의 한국군이 단숨에 도청으로 진격했고 재빨리 저항을 진압했다. 군인들은 이 사태를 종결시켰고 이에 연루된 수백 명의 사람들을 체포했다. 6월초 카터 측은 수출입은행의 대출을 승인했고 한국은 미국의 핵발전 기술을 사는 계획을 진행했다. 이 자금은 미국의 거대 기업인 웨스팅하우스와 벡텔의 주머니로 바로 들어갔다.

대부분 국무부에서 나온 문서들은 미국이 한국군을 저지하려 했다는 공식 발표와는 반대로  카터의 고위급 관료들이 한국 장성들에게 5월 17일 쿠데타 전에 일어난 민주화 시위에 맞서 군대를 이용하겠다는 계획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확실히 언급했음을 보여줬다고 지적하였으며 보다 자세한 내용은 위키리크스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하다.
 

김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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