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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L 칼럼] 아이스하키의 황제 웨인 그레츠키

기사입력 2009.01.03 10:26 / 기사수정 2009.01.03 10:26

이동희 기자

[엑스포츠뉴스=이동희 기자]

- 캐나다가 낳은 최고의 NHL스타 웨인 그레츠키

축구의 펠레나 농구의 마이클 조던 그리고 야구의 베이브 루스 같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소위 '황제'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선수들이 있다.

이런 선수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항상 영웅대접을 받으며, 스포츠 역사에 길이 기억될 선수들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아직까지는 다소 생소한 NHL(북미프로아이스하키)에서도 황제라 불리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캐나다 출신의 닉네임은 '더 그레이트 원'이자 'No.99'인 웨인 그레츠키(49)이다.

그레츠키는 NHL 117년 역사상 선수 개인으로는 최고로 많은 골을 성공시키고, 무수한 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이자 감독으로 부임했던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시절 당시 소속팀이었던 캐나다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금메달로 이끈 아이스하키계에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NHL에서는 지난 1979년 에드먼튼 오일러스에 1순위로 지명된후에 22년(1978-1999)이란 긴세월을 뛰었고, 정규시즌에서만 총 1,487경기에서 894골과 1963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천재적인 기량을 어김없이 발휘했으며, 10시즌(79-88)간 소속팀이었던 에드먼튼 오일러스에서 모두 4번(84,85,87,88)의 스탠리컵 우승을 경험했는데 플레이오프에서 더욱 강력한 플레이(122골,260어시스트)를 펼쳤던 참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선수라 할 수 있다.

특히 최전성기였던 1981-1982시즌에서는 정규시즌 80경기에서 92골을 넣었고, 1985-1986시즌에서도 정규시즌 80경기에서 163어시스트를 기록한 것이 최고의 하이라이트 성적이자 NHL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고의 기록이었다.

또한, 그레츠키는 조국인 캐나다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개최시키는 것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는데 선수시절에도 타의 모범이 될만한 선수였으며, 전성기 시절에는 부상이 거의 없었을 만큼 자기관리에 철저한 선수이기도 했다.

NHL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는 1999년에 이름을 올렸으며, 뉴욕 레인저스 시절이었던 1999년 4월 18일은 그가 선수생활의 마침표를 찍는 역사적인 날이었고, 홈구장인 메디슨 스퀘어 가든(MSG)을 가득 메운 2만여 명의 관중들은 왼쪽 엄지손가락을 세운 그에게 아낌없는 기립박수를  보내주었다.

은퇴 후에는 인터넷 영화 업체나 자기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설립하기도 했고, 주니어 아이스하키 등 각종 스포츠단체의 장으로도 역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레츠키라고 해서 하는 모든 일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고, 지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NHL 감독을 처음으로 맡았던 피닉스 코요테스에서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는 자기 생애 최고의 비운을 맞기도 했으며, 2006년에는 미식축구 도박사건으로 상당한 곤욕을 치른적이 있었다.

그러나 캐나다인들에게서 만큼은 에드먼튼의 홈구장인 '렉솔 플레이스'앞에 빛나는 그의 동상을 세울 정도로 웨인 그레츠키란 존재가 시대를 초월하는 진정한 '아이스하키의 황제'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데 반해 전 세계적으론 그의 이름은 아직까진 그다지 알려져 있진 않다.

물론 아이스하키가 비인기 종목인 이유도 있겠지만 대중들에겐 아직까지도 아이스하키가 '백인들만의 스포츠'라든지 '귀족스포츠'라는 다소 그릇된 고정관념이 많이 지배하는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젠 우리들은 웨인 그레츠키라는 한 사람에게 아주 조금만 이라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자그마한 관심을 통해서라도 그레츠키로 인해 지금까지 몰랐거나 알 수 없었던 아이스하키의 참재미를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진 (C) NHL 공식 홈페이지]



이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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