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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생고 이민우,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드래프트 앞에 서서

기사입력 2008.11.21 10:41 / 기사수정 2008.11.21 10:41

김경주 기자



[엑스포츠뉴스=김경주 기자] "누나, 시험 보다가도 받을 테니까요. 내 이름 불리면 무조건 전화해줘요. 알았죠? 동명이인도 없어요. 이민우 나 딱 한 명이에요."

평소 알고 지내던 녀석이 드래프트 명단에 이름을 올렸더군요. 드래프트 날이 다가오자 초조해졌나 봅니다. '누나 거기 갈 거예요??'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묻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 중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내 이름나오면 무조건 전화해달라.'였는데,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하는 그 녀석에게 알았다고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안심시키느라 바빴습니다.

풍생고, 성남의 유소년 클럽으로, 클럽 우선 지명이 가능한 상황이었고  다른 친구들은 우선 지명을 받은 상황. 본인도 조금 편하게 프로에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꼭 전화해달라고 말하는 그 녀석은 도전이라는 다른 길을 걸었죠.

드래프트 전날인 19일 저녁 잠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평소 가득하던 장난기도 여전했지만, 그 장난기 구석구석에 배인 불안감과 긴장은 어찌 숨길 수 없었나 봅니다. "아버지는 잠도 안 온대요."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이름이 불려야 할 본인 자신이 가진 긴장감 또한 그러했을 겁니다.

20일 열린 2009 K-리그 드래프트에는 여느 해보다 많은 수의 프로 지망생들이 자신의 이름을 후보 명단에 올렸습니다. 강원FC가 새로 만들어지고, 2008 시즌 어느 해보다 알찬 신인들의 활약이 돋보였던지라'나도 한 번 도전해보자.'라는 자신감이 팽배해졌던 탓이죠.

그러나 축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강원FC의 창단과 우선지명제도로 인해 이미 데려갈 만한 선수는 강원FC에서 전부 가져가 버렸다는 의견과, 그 때문에 많은 선수가 지명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뤘습니다. 1순위를 거의 뽑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의견들을 뒤로 한 채 2009 K-리그 드래프트의 뚜껑이 열렸습니다. 드래프트가 열린 홍은동 그랜드 힐튼 호텔 그랜드 볼룸에는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북적거렸죠.



각 팀 관계자와, 기자, 또 이름이 불리길 바라는 선수 본인과 가족까지 모여들어 드래프트 장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관계자와 기자에게 밀려 한편에 모여있던 선수 가족의 표정은 밝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긴장감이 기자에게까지 전해질 것만 같던 그 순간부터 하나하나 선수의 번호와 이름이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14개 구단이 전부 1순위를 지명했고, 가득 찬 이름들을 보며 뒤편의 선수 가족 사이에서는 희망찬 목소리들이 흘러나왔습니다. 이렇게 6순위까지 전부 불린다면 더 많은 선수가 프로에 입단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가득 찼던 드래프트 장안의 희망찬 분위기는 그러나 금새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2순위부터 포기를 외치는 구단이 많아진 탓인데요. 2순위 7번째 지명 팀이었던 제주를 선두로 13번째 지명인 전북도 이어 2순위 지명을 포기했습니다. 각 구단 코칭스태프의 '포기'라는 무미건조한 말이 들려올 때마다 기자 뒤쪽에선 간헐적인 한숨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렇게 극명하게 분위기는 갈려가고 있었죠.

 
지명이 계속 진행되고, 하나하나 이름이 불려가는 동안 기자의 옆에 적혀진 핸드폰 번호는 눌릴 일이 없었습니다. 점점 시간이 가면서 그동안 봐왔던 U-18리그에서의 모습이 떠올라 더욱 맘이 시렸습니다.

다른 선수보다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는 골키퍼라는 포지션에 서 있던 이민우의 팔에는 골키퍼라는 이름 말고도 주장이라는 이름 하나가 더 맺혀있었습니다.



'프로'에 진출하고 또 '성공'한다는 것은 축구화를 신는 그날부터 시작되는 모든 선수들의 꿈일 것입니다. 축구화에 장갑까지 하나 더 낀 이민우에게는 '목표의식'이 짙게 배어있었죠.

185cm가 조금 안 되는 키로, 골키퍼로선 크지 않은 체격이지만 날아오는 공에 대한 감각은 남달랐던 이민우는 2학년이던 07년 경인일보 배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GK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후 풍생고 축구부 주장을 맡아 후배와 동료를 다독이고 때론 질책하며 처음으로 열렸던 U-18리그에서 팀을 4강까지 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항상, 대학보다는 프로에서 조금 더 체계적인 골키퍼 수업을 받고 싶다고 한 이민우는 그래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프로로 눈을 돌렸고요.

"저는요. 돈 안 받아도 좋고, 번외 지명이나 연습생이라도 상관없어요. 프로만 갔으면 좋겠어요. 프로에 가면 GK 코치님이 계시잖아요. 1년이든 2년이든 기회만 준다면 대학 왔다고 생각하고 다른 건 아무것도 신경 안 쓰고 운동만 죽어라고 할 자신 있어요. 그렇게 배우다가 여쭤볼 거에요. 제가 앞으로 가망성이 있는지 없는지."

그래서 가망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할거냐는 질문에 "그때는 지도자라던가 다른 무언가를 생각해야겠지만, 지금은 프로 가서 운동하는 게 유일한 소원이고 희망이에요."라고 대답한 그의 표정엔 희망과 불안함이 함께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기자는 약속한 전화를 걸지 못했고, 기다리고 있을 어린 소년의 초조함이 너무도 안쓰러워 약속되지 않은 전화를 걸었습니다. 짧은 신호음이 멈추고 기대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전할 수 있는 말이 "어쩌면 좋니."뿐이라 마음이 아프더군요.

"저 안 뽑혔죠? 괜찮아요. 어떻게든 될 거에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 어린 소년의 어른스러움이 더욱 안쓰러웠습니다.

이 날 이런 감정을 가진 사람은 기자 하나가 아니었겠죠. 이번 드래프트는 지난해에 비해 2배 가까이 많아진 402명이 지원했습니다. 우선 지명을 포함한 총 지명자 수는 127명. 전체 지원자 중 31.6%만이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되었습니다.

선수 등록이 마감되는 2월 말까지 각자 계약을 통해 번외지명을 받을 길도 아직 열려있기는 합니다. 그때까지는 실낱같은 그 희망을 버릴 수 없겠죠.

축구화를 처음 신는 날부터 이런 시련을 겪는 날까지 모두의 목표는 '프로'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 목표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래도 다만 아쉬운 점은 그가 가진 확고하고 탄탄한 '목표의식'을 더 빨리 보여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마, 지명을 받지 못한 모두가 그렇겠죠.

이 시련을 빨리 깨치고 일어나길 바랄 뿐입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아직 젊고 자신이 스스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기회는 그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말이죠.

그가 보여줬던 호쾌한 선방처럼 지금의 슬픔과 아픔을 떨쳐낼 수 있기를 그뿐만이 아니라 지금, 지명을 받지 못한 모두가 자신의 꿈과 희망을 이뤄낼 수 있길 바라봅니다.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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