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5.03.21 03:57 / 기사수정 2005.03.21 03:57
삼성라이온즈 김응룡 사장은 해태 타이거즈 사령탑 시절부터 유명한 게 하나 있었다.
"어휴, 올 시즌 큰일났어. 쓸만한 투수들은 재활중이고 타자들 역시 완전 부상병동이야. 어떻게 된 것이 멀쩡한 녀석이 하나도 없어. 큰일이야, 큰일."
자신이 현재 이끌고있는 팀에 대해 누가 물으면 최대한 죽는소리를 하는 것. 그냥 예의상 자신과 주변을 낮추는 것이 아닌 속으로는 어느 정도 계산이 섰으면서 일부러 연막을 깔아놓는 행위로 겸손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그야말로 엄살수준인 것이다.
그런 다음 정작 본게임에 들어가서는 무서운 전력으로 상대를 초전박살 내버리는 모습은 김응용 전감독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였다.
하도 이런 모습이 반복되다보니까 언론과 팬들사이에서는 김응용 전감독이 죽겠다고 하소연을 하면 또 엄살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까지 비일비재했던 것이 사실.
물론 해태말년기 같이 진짜로 전력이 엄청나게 약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엄살의 횟수 역시 그만큼 많았다.
그런데 요 몇년사이의 야구판을 돌아보면 이상한 상황들이 자주 목격된다.
"우리팀이야 뭐 볼 것 있나요? 저쪽팀 정도는 되야 강팀이라고 할 수 있지"
"아이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십니까. 그쪽 팀 정도만 되도 소원이 없겠습니다. 앞으로 살살 좀 부탁드립니다"
자신을 낮추면서 상대를 높이고, 그러면서 또 경계와 함께 전략탐색까지. 이른바 김응용식 엄살성 멘트가 아주 유행처럼 번져나가는 느낌이다.
작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준우승을 나눠가졌던 현대와 삼성의 사령탑 역시 상대가 강하고 우리는 아직 멀었다라는 모습을 강조하기 바쁜 듯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올해는 이런 '엄살전선'에 팬들까지 동참하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것이 삼성라이온즈의 팬들인데, 많은 삼성의 팬들은 각종 언론에서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을 '절대강자'라고 부르는 것을 무척 부담스러워하는 듯한 모습이다.
"아니! 우리만 강한가요? 초강력클린업타선을 구축한 SK, 썩어도 준치 현대, 선발왕국 기아까지, 따져보면 다들 한전력하잖아요. 왜 계속 우리만 강하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냥 1강이 아닌 똑같은 4강으로 분류해주세요."
근래의 야구판을 잘 접해보지 않은 이들은 고개가 갸웃거려질만한 부분이다. 자신의 응원하는 구단을 강팀으로 평가해주는데도 싫다. 아니 싫은 정도가 아니라 울화통이 터진다?
삼성팬인 이형태(회사원·29)씨는 "솔직히 말해서 우리 삼성이 강하지 않은 시절이 얼마나 있었냐?"며 "그동안 쭈욱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초라한 우승횟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고 말했는데, 특히 "한국시리즈를 제패하기 전, 같은 연고지를 쓰고있는 농구팀 대구오리온스가 '달구벌의 저주'를 푼다고 고사 운운했을 때는 뒤로 넘어질 만큼 화가 났었다"고 한다.
이처럼 전력에 비해 유달리 나오지 않는 성적, 그리고 최근 언론에서 불거져 나온 절대강자의 예상도와 그로 인한 '공공의 적'이미지가 삼성팬들을 더욱 엄살떨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분석 역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우리는 착한 사람이고 싶은데, 정의의 사자이고 싶은데 왜 이쪽을 나쁜놈 취급하냐는 것.
여기에 대해 롯데팬인 백아무개(30)씨는 "삼성과 롯데는 최근 걸어온 길이 워낙 다르니까 팬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한다해도 동상이몽이 될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는 자신의 팀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며 "미국 메이저리그를 봐도 서로 자신의 팀이 올시즌은 해볼만하다, 강하다라고 스스로 파이팅을 이끌려는 분위기인데 국내프로야구는 무슨 해괴한 유행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아팬인 이승현(31)씨 역시 "우리 팀은 강하다, 누구든지 덤벼라 이런 식의 발언이 팬들로서는 더 자신감도 넘쳐 보이고 승부욕도 끌어 오르는 듯한 발언이 아닐까 싶다"며 "과거 김응룡 감독 식의 너구리 사령탑들이야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 것이니 구태여 왈가불가하지 않겠지만 우리 팬들까지 그런 것을 따라가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은 듯 하다"는 말로 요즘의 추세를 비판하는 모습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전력상 가장 강한 삼성이 대표적인 예가 되었지만 속칭 강팀으로 꼽히는 현대, SK, 기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뉴욕양키즈가 아무리 강한 전력을 키워도 겁없이 덤벼드는 보스턴의 모습이 아닌, 삼성은 강한데 우리 팀은 큰일이다라는 식의 반응이 무척 많은 듯 보인다.
설마 진심으로 우리팀은 큰일이고 삼성만 너무 강해서 독야청청 잘나가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다들 소속팀이 잘되기를 빌고, 속마음 역시 자부심과 희망을 잃지 않았으리라.
'그래! 우리 삼성라이온즈는 원래 돈도 많고 전력도 강하다. 부럽나? 부러우면 덤벼봐, 우리는 절대강자니까'
'흥! 우리는 삼성을 강자로 생각한 적이 없다, 네임벨류는 낮지만 알짜로 똘똘 뭉친 모습 우리가 진짜 강팀이다'
지나친 엄살보다는 스스로의 자부심을 겉으로 표출하는, 도전적인 팬들의 모습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 일까? 자신의 팀이 강하다는 주변의 평가는 결코 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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