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감독, 또는 배우로 자신만의 발걸음을 우직하게 걸어가고 있는 양익준이 영화 '시인의 사랑'(감독 김양희) 속 시인으로 돌아왔다.
지난 14일 개봉한 '시인의 사랑'은 인생의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사랑을 맞닥뜨린 시인(양익준 분), 그의 아내(전혜진) 그리고 한 소년(정가람)의 이야기를 그린 감성 드라마. 양익준은 시를 쓰는 재능도, 먹고 살 돈도 없는 마흔 살의 시인 현택기 역으로 분했다.
아내와 소년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낸 양익준은 '시인의 사랑'을 통해 대중에게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시인의 사랑' 개봉과 함께 서울 중구 을지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양익준은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 인터뷰의 현장까지 도착했다. 사진 촬영을 위한 의상과 모자 등 소품들을 직접 챙겨온 것은 물론이다.
지난 해 개봉한 '춘몽' 이후로 소속사 없이 홀로 활동 중이라는 양익준은 양손 가득 들고 온 의상들을 카페 안의 옷걸이에 차곡차곡 걸어놓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테이블 옆에 자리한 디자이너들의 작업실에 자리한 의상들을 살피며 "여기서 옷을 빌릴 수는 없겠냐"고 관계자에게 너스레를 떤다.
"'춘몽' 이후로 혼자 다니고 있어요. 힘들긴 하지만, 일종의 어려움이 있어야 좋은 에너지를 얻기도 하니까요. 다른 소속사 4~5군데에서도 연락이 와서, 몇 달 전부터 만나고는 있는데 아직은 혼자 지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예전부터 혼자 해 왔어서 그게 특별한 건 아닌데, 드라마 찍을 때 두 세 시간 자고 다시 촬영가야 하고 할 때는 좀 힘들긴 하죠. 하긴, 안 힘 든 것이 어디 있겠어요.(웃음)"
양익준은 자연스럽게 '시인의 사랑'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래서 '시인의 사랑'이 잘 돼야 하는 것 같아요. 영화가 감독님의 첫 데뷔작이기도 하고, 저에게도 제가 조연 역할들을 하다가 극을 이끌어가는 작품을 작년 '춘몽'부터 시작했거든요. 그 때도 완전한 주연이라기보다는 공동 주연이었잖아요. 그 때부터 역할 자체가 좀 달라졌죠. 일본에 있을 때 보내주신 시나리오를 보고 좋다고 생각했고, 처음에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좀 쉽게 봤었는데 나중에는 어렵다고 느꼈어요. 굉장히 일상적인 느낌이어서 출연하게 됐죠."
'시인의 사랑'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후 김양희 감독에게 직접 쓴 시를 보내기도 했다.
"시를 두 편인가 썼던 것 같은데…"라고 웃은 양익준은 "보내드렸더니 감독님이 (모바일 메신저로) 웃기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저는 진짜 열심히 써서 보내드렸는데 말이에요. 일본에서 '아, 황야'를 찍을 때였는데 복싱 훈련을 하다가 양 팔이 다쳐서 너무 괴로웠거든요. '나의 왼팔이 울고 있다'고 감독님에게 이것에 대해서 써서 보냈었죠"라고 말을 이었다.
소년을 바라보는 택기에게서는 시적 영감을 충분히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양익준은 "시나리오에서 덜 채워진 게 있었고, 제가 더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감독님과 얘기한 부분이 많았어요. 시인에게는 자기 연민에 대한 시도 있지만, 어떤 대상이나 여러 가지 것들 안에서 사랑을 발견해야 하는 슬픔이나 고통도 말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감정들을 찾아가는 도화선이 필요했어요"라고 '시인의 사랑'을 촬영하며 고민했던 지점도 털어놓았다.
"영화를 쉽게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는 생각도 덧붙였다.
"우리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엄마를 쉽게 이해하지는 못하잖아요. 그런 느낌 아닐까요. 영화는 쉽고 어렵고의 개념이 없고 단순해요. 그리고 이런 영화가 관객들에게 쉽게 뭔가 설명해주면 아까운 것 같기도 하고요. 쉬운 감정은 아니니까, 천천히 느꼈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서사로만 보면 저는 '반지의 제왕'같은 것이 더 어렵더라고요."
영화를 통해 부부로 함께 호흡한 아내 강순 역의 전혜진에 대한 칭찬도 함께 전했다. 강순은 무능한 남편이자 철없는 예술가인 택기를 구박하면서도, 또 택기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으로 시선을 모은다.
양익준은 "제가 택기가 될 순 없어요. 택기라는 캐릭터를 뒤집어쓴 양익준이 있는 것이죠. 소년에게 빠져야 하는데, 오히려 저는 강순이에게 푹 빠져가지고…"라며 다시 한 번 웃어 보인 후 "(전)혜진 씨가 갖고 있는 정서가 있어요. 제 안에도 택기 같은 부분이 있는게, 여성에게 끌려가고 싶은 지점들이 있나 봐요. 여성들이, 정말 강한 것 같아요."
연기에 대한 소신도 이야기했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와 '밤을 걷는 선비', '추리의 여왕'은 물론 영화에서는 양익준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려준 '똥파리'(2009), 최근의 '나의 절친 악당들'(2015), '계춘할망'(2016), '춘몽'(2016), 일본 주연작 '아, 황야'까지 연출과 연기를 자유롭게 오가며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고 있는 그다.
"좋은 연기자들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표현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배우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표현하면서 사는 것이고요. 연기자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 재미가 없어지잖아요. 훌륭한 연기자들은 보는 사람들을 푹 빠져들게 하는 것이 있죠. 제 말에 어폐가 좀 있을 수도 있는데, 저는 연기에 대해 표현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어요. 완전히 사실적인 다큐멘터리 연출을 하지 않는 이상 사실까지는 갈 수 없겠죠. 그래도 그 카드의 바로 밑장까지는 표현을 해줘야 하지 않나 싶은 욕망이 있죠. 관객들도 그런 배우들을 기대할 것이고요."
양익준은 "지금 제가 마흔 세 살인데, '똥파리'를 30대 초반에 했으니 벌써 10년이 됐어요. 요즘 어떤 생각을 하냐면, 이제 10대나 10대 미만인 친구들은 저와는 완전 또 다른 세대잖아요. 그 친구들과 어떻게 교감하고, 이들과 뭔가를 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뭘까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하죠"라고 설명했다.
"제게는 그게 중요해요. 시대가 많이 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지점이 있겠지만, 저는 소통하고 싶거든요. 제가 아직까지도 연기나 연출을 할 때 제일 모티브로 활용하는 세대가 10대예요."
지난 2012년 단편 '시바타 와 나가오' 이후 연출 활동이 없는 그는 "5년 전부터 '내년에 할게요'라고 했었다"고 쑥스럽게 웃은 뒤 8년 정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거든요. 뭔가를 할 때 그것만 생각하고 해야 생각하는 가지들이 건강하게 넓혀지는데, 그렇지를 못했어요"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연출을 하려면 연기를 한 시즌 하지 말아야 해요. 어떤 분들은 연기와 연출을 같이 하는 게 부럽다고 하는데, 사실 같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시나리오는 저를 위한, 저를 놓고 쓰려고 하지는 않고 있어요"라고 전한 양익준은 '시인의 사랑'과 일본 영화 프로모션도 있어요. JTBC '전체관람가'에서는 단편 영화도 만들어야 하죠. 단편은 11월에 찍어야 하니 이 모든 일정을 소화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데, 여력이 되면 반년 정도는 쉬고 싶고요"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함께 덧붙였다.
잠시 숨을 고른 양익준은 "쉬다 보면 영감이 오고, 일을 하고 싶어져요"라고 웃으며 "일하고 쉬고를 잘 병행하다 보면 내후년에는 작품을 하나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내후년쯤에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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