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우울하고 어두운 과거사를 지닌 헤드윅이지만, 마냥 슬프지는 않다. 배우 유연석은 ‘헤드윅’의 슬픔과 고통을 해학으로 승화해낸다. 어느덧 축제처럼 즐기게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더 가슴이 저릿하다.
관객의 감성을 건드리며 스테디셀러 뮤지컬로 사랑받고 있는 ‘헤드윅’이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상처를 안은 소수자의 이야기이지만, 소수자뿐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헤드윅은 동독 출신 실패한 트랜스젠더이자 록 가수다. 6인치에서 5인치만 잘려나간, ‘화난’ 1인치의 성기를 가진 남자다. 성전환수술까지 받고 자유의 나라 미국으로 건너오지만 루터에게 버려진다. 소년 토미와도 사랑에 빠지는데, 토미 역시 그를 배신한다. 이후 투어 중 만난 드랙퀸이자 남편 이츠학을 미국으로 데려온다. 이츠학은 헤드윅과 록밴드 앵그리인치 밴드의 멤버가 된다.
동독과 서독의 경계를 갈랐던 베를린 장벽처럼, 헤드윅은 남성과 여성의 경계에 서 있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그런 사람. 어릴 때부터 아빠에게 당한 일들과 냉담한 엄마로 인해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 남들보다 심한 내적 갈등을 겪고 괴로워한다. 완전한 여자는 아니지만 남자에게 상처받고 아파하고 슬퍼하는, 감정이 여린 사람이다.
‘헤드윅’이 우리나라에서 13년간 사랑받는 뮤지컬이 된 이유는 파격적인 소재 때문만은 아닐 터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이들, 공허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 등 다수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위그 인 어 박스'(Wig In A Box)부터 '티어 미 다운'(Tear Me Down),'앵그리 인치'(Angry Inch)까지, 헤드윅이 부르는 넘버에 관객은 공감하고 즐긴다.
이번 '헤드윅'에는 유연석이 새롭게 합류했다. 록 뮤지컬에 처음 도전한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며 객석 뒤편에서 걸어오는 유연석은 등장부터 화끈하다. 엉덩이를 흔들며 교태를 부리고, “예쁘다고? 나도 알아. 오늘 면도 잘됐다”라며 능청을 부린다.
‘헤드윅’만의 묘미이기도 한 애드리브로 분위기를 돋운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의사 역할을 맡았던 그는 CPR, 인터베이션을 언급하다 “나 왜 이렇게 의학용어를 잘하니”라며 너스레를 떤다. “나 야구해서 그래. 투수. 어깨가 넓어”라며 ‘응답하라 1994’의 캐릭터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객석에 침입(?)해 노래를 부르고 공연 중간 관객의 말에 반응하며 함께한다.
유연석은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산 헤드윅의 슬픔과 증오, 아픔 등 여러 감정을 웃음으로 승화한다. 마치 록 콘서트에 온 것처럼 신나는 분위기가 이어진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짠하고 연민이 든다.
주로 드라마와 스크린을 오가며 활동 중인 그는 2015년 ‘벽을 뚫는 남자’에서 주인공 듀티율 역을 맡아 뮤지컬에 데뷔했다. 각종 드라마와 예능에서 노래 실력을 뽐낸 만큼 송스루로 진행되는 공연에서 48곡 중 29곡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이후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 참여하는 등 무대에 애정을 드러냈다. 노래보다는 연기가 강점이긴 하나, 이번 록 뮤지컬인 ‘헤드윅’에서 끼를 발산하며 130분을 이끈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뮤지컬 배우로서 앞으로 어떤 필모그래피를 채워나갈지 기대된다.
11월 5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열린다. 130분. 만 15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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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