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10.21 10:25 / 기사수정 2008.10.21 10:25
이 날 명지대를 찾은 기자는 조금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전광판인데요. 흙 운동장이 아닌 인조 잔디에서 뛰는 것도 신기했지만 전광판에 명지대 : 경희대라는 이름이 선명히 찍혀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고무적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양 팀 스물두 명의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뛰었습니다. 프로 경기처럼 노련한 맛은 없었지만, 그에 반하는 치열함이 있었죠. 차고 차여도 악 소리 한 번 제대로 안내고 다시 일어나 뛰어갑니다.
전광판은 있어도 벤치는 쉽게 마련하기 어렵죠. 각자 하나씩 들고 나와 앉은 의자에서 대기 선수들은 누구보다 훌륭한 감독과 서포터, 두 가지 일을 해냅니다. 그라운드 안에서 뛰고 있는 동료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독려하기도 하고, 세트 피스 상황이 되면 '이리 들어가! 저 선수 막아!'라고 서서 바라보고 있는 감독보다 더 열성적으로 코치합니다.
경기가 과열되다 보니 선수들끼리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이내 벤치에서 페어플레이 하라는 외침이 들려옵니다. 이렇게 그라운드는 찬연한 가을답지 않게 뜨겁습니다.
이 날 명지대 학생들은 북을 들고 나와 큰 목소리로 '명지대 파이팅'을 외치며 뜨거운 운동장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응원이 있어서 인가 양 팀 선수들은 더 열심히 뛰는 것 같더군요.
후반 20분, 경희대의 첫 골이 터질 때까지 양 팀은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았습니다. 명지대는 경희대 골문 앞에서 얻은 파울로 PK를 얻었지만, 경희대 골키퍼 정산이 그 PK를 막아내고 튕겨져나온 것을, 재차 명지대 선수가 슈팅을 시도했습니다. 넘어져 있던 정산은 미처 그 슈팅을 막지 못했죠. 그 슈팅이 골망을 출렁였을까요? 아뇨, 골문 앞에 버티고 섰던 경희대 수비수가 절묘하게도 걷어내더군요.
그 후 경희대는 분위기를 가져와 명지대를 몰아붙였고 후반 20분, 명지대 수비진의 집중력이 떨어진 틈을 타 첫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또, 정산의 골 킥이 명지대 중앙 수비인 김명룡의 머리를 넘기며 자유로워진 것을 놓치지 않고 다시 골로 연결, 순식간에 2-0으로 앞서 나갔죠.
명지대도 가만히 있진 않았습니다. 오세룡을 중심으로 경희대의 측면을 괴롭혔고, 결국 전광판의 시계가 5분을 남겼을 때 만회골을 터트리고야 맙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골인데, 동점으로, 혹은 역전으로 가는 발판을 겨우 마련한 명지대인지라 좋아할 겨를도 없이 경희대 골 문안에 들어간 공을 들고 나와 허겁지겁 하프라인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게 명지대가 보여줄 수 있었던 세리머니의 전부였죠.
골 이후 명지대는 더욱더 경희대를 옥죄었습니다. 모든 선수가 올라와 경희대 골문만 바라보고 있는 걸 보자니 어떻게든 동점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그 들의 심정이 절실히 와 닿더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기는 그대로 막을 내렸습니다. 명지대 선수들은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일어날 줄을 모르더군요.
이렇게 박진감 넘치고 열의가 가득한 그라운드지만, 여전히 관중석은 썰렁합니다. 몇몇 명지대 학생들이 응원에 동참했지만, 그래도 관중석은 쓸쓸할 뿐이었죠. 물론, 꽉 들어찬 관중석을 바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순수한 열의만 넘치는 이들을 조금 더 많은 누군가가 봐줬으면 하는 바람은 생기더군요.
텅 빈 운동장이라는 이 상황이 쉽게 바뀔 리도 없고 바뀌기도 쉽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 한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갈 테니까요.
이제 U리그는 단 두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총 10개 학교가 참가한 이번 시즌은 그런대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이 다음해, 그리고 또 다음해에는 더 많은 학교가 참가해 북적북적한 U리그를 만나보고 싶어집니다. 조금 더 많은 학교가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경쟁하다 보면 자연스레 모교 학생들의 관심도, 열성 축구팬의 관심도 얻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혼자 보기 아까웠던 이 뜨거움도 조금씩 전염되어 크게 타오를 수 있겠죠.
U리그가, 대학 축구의 선봉에 그리고 하나의 즐거운 축제로 자리 잡을 수 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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