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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질의 바둑 속으로] 바둑의 전성시대와 오늘

기사입력 2008.10.14 11:24 / 기사수정 2008.10.14 11:24

류지일 기자

[엑스포츠뉴스=류지일]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바둑을 배우러 간 게 벌써 10여 년 전이다.

1991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네 입구 4층에 자리를 잡았던 조그만 학원이었는데 오픈 한지 4일이 되었고 학생 수는 3명이었다. 어린 시절의 일이라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때부터 6년간을 학원에 다녔고 성인이 된 지금 아직도 그 학원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당시 초등학교에서는 정규과목으로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고 PC방은커녕 집에 286 컴퓨터가 없었으며 간간이 집에 8비트 게임기가 있다고 자랑하던 때인 걸로 기억한다. 피아노, 미술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고 주산학원에 다니던 친구도 꽤 있었던 것 같다. 동네에서 얼음땡, 말뚝박기, 신발 던지기로 하루를 보내던 시절이었다.

뜬금없는 과거이야기지만 10여 년 전 바둑과 현재의 바둑의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1990년대 초중반 한국에 바둑 열풍이 불어 학교에서 보던 친구들을 바둑학원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위에 언급했던 바둑학원도 하루에 등록을 하기 위해 찾아온 학부모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는 후문.

이때 우리나라 바둑을 이끌었던 프로들은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9단이었다.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바둑이 두뇌교육에 탁월하다'는 말이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자연스럽게 바둑열풍이 불었던 것이다.

당시에 판매되던 초콜릿 중에 작은 플라스틱 바둑통에 각각 백색과 흑색의 초콜릿을 담아 종이 바둑판을 넣어 팔았던 제품도 있었고 자가용 안에 햇빛 가리개로 부직포 바둑판이 제작이 되었으며, 거기에 결정적으로 바둑드라마도 제작이 되어 전파를 탔다고 하니 당시의 바둑 열풍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바둑의 전성시대 그 끝은 일본에서 2000년 출간된 만화 고스트 바둑왕이다. 일본에서 제작된 만화가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니 일본에서의 열풍은 말할 것도 없겠다.

지금의 바둑은 어떨까? 프로바둑의 경우 예전보다 지금의 실력이 월등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나이가 어린 프로기사들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고 한·중·일의 삼각구도에서 한·중의 2각 체제로 바뀌어 바둑실력이 세계 최강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내적으로 볼 때 예전과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다. 국, 영, 수를 잘해야 좋은 대학 가는 것도 옛말이다.

수학학원은 물론 무엇보다도 영어학원, 또는 모든 과목을 가르치는 종합학원까지 초등학생부터 심지어는 유치원생활을 하는 학생부터 영어는 필수라는 인식이 박혀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학원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져 여가를 즐길 시간이 없다. 컴퓨터도 마찬가지, PC의 성능이 좋아짐에 따라 그에 따른 게임도 급물살을 타고 전파가 되어 아이들이 쉽게 즐기고 빠져들게 된다. 경쟁시대, 정보화시대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어릴 때부터 열어 정신과 도가 중요시되는 바둑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다.

중요한 학원과 시간을 맞추지 못해 바둑학원을 그만두는 학생이 많고 초등학교 4학년부터는 바둑을 배우는 학생이 극히 드물다. 흔히 들리는 말로 프로입문의 좁은 문, 외국기사의 적은 참여기회 등도 문제시되고 있다.

바둑계가 변해야 한다는 말도 무척 듣고 있듯이, 정말 바둑계가 변해야 한다. 예전의 바둑 열풍이 아니더라도 수천 년의 역사를 꾸준히 올라온 바둑을 좀 더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하고 바둑을 두는 사람은 실력뿐 아니라 고유의 장점, 그 근본에 뜻을 두어야 한다.

아무 생각 안 하고 내가 좋아하는 바둑을 배우고 두던 옛날이 그립다.



류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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