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3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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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구장이 성남 일화에 남긴 것

기사입력 2008.09.30 01:06 / 기사수정 2008.09.30 01:06

이상엽 기자



[엑스포츠뉴스=이상엽 기자] 대부분의 K-리그 구단이 웅장하고 멋진 월드컵 경기장이나 축구전용 구장을 사용하는 것에 반해서 성남 구단은 여전히 8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성남 종합 경기장이나 탄천 종합 경기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속칭 모란 구장이라고 불리는 성남 종합 경기장은 주로 성남의 2군 경기장으로 쓰였는데 2군 경기를 하는 동안 동네 아주머님들의 파워워킹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왠지 모를 익숙한 풍경뿐만이 아니라 주변 경관에서도 옛날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데요. 5일에 한번 씩 들어서는 모란 장에서는 온갖 먹거리를 구경할 수 있고, 주변의 길거리는 처음 본 사람이라도 자신이 어릴 때 살던 예전 집 앞 시장통을 연상할 수 있을 만큼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포근한 장소입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 모란 구장은 성남에 매우 가혹한 시어머니와 같았습니다.

탄천의 캐노피 공사(지붕 건설 공사)를 이유로 올림픽 휴지기 이후에 오랜만에 돌아온 ‘모란 구장’에서의 첫경기는 FA컵 16강, 대 울산현대미포조선 전이었습니다. 한 달여만의 경기 때문이었을까, 성남은 미포조선의 두꺼운 수비벽을 뚫지 못하고 0-0으로 경기를 끝마쳤습니다. 이때는 모두 FA컵과는 인연이 없는 성남의 징크스를 들먹이며 다음 홈 경기를 기대하였습니다. 물론 승부차기에서 승리하였기에 가볍게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다음 홈 경기는 제주와의 리그 전이었습니다. 아무리 상승세를 타고있는 제주라 할지라도, 전반기에 3-0으로 이긴 전적이 있기에 나름 편안하게 경기를 지켜보았습니다. 경기는 또다시 0대0. 그간 성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던 물 흐르는듯한 경기운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두 후반기에 영입한 이동국과 기존의 선수들이 호흡이 맞지 않기 때문에 생겨 벌어진 일인 줄 알았습니다.

사단은 9월 17일에 열린 전북전에서 일어났습니다. 0-1로 진 것입니다. 이때부터 모두 문제점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는 포메이션과 움직임은 모두 성남의 부진을 아리송하게 보게 하기 충분하였습니다.

저 역시 흥미롭게 생각하며 경기를 되짚어 보았습니다. 내적인 부분은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경기 외적인 부분은 현저하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바로 ‘잔디 상태’였습니다.

탄천 종합경기장 역시 리그에서 손꼽힐 만큼 관리가 안되어 있지만, 적어도 선수들이 뛸 때, 뒤에서 흙바람이 날리지는 않았습니다. 성남 종합구장의 잔디는 선수들이 뛰어갈 때마다 생기는 황사를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잔디의 길이는 길었지만, 전혀 관리가 되어있지 않은 모습임을 누구라도 쉽게 판단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선수들이 패스하는 공은 '통통' 튀면서 앞으로 나아갔고, 때로는 불규칙 바운드에 공이 갑자기 종아리에 맞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태클을 할 때마다 생기는 뿌연 흙먼지에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기 어려울 정도의 상황들도 있었습니다.

성남은 공을 몰고 들어가기보다는 빠른 패스 플레이를 통해서 만들어진 상대의 공간을 침투해 골을 뽑아내는 스타일의 경기운영을 합니다. 이러한 극악의 잔디상태에서는 어려운 경기 운영, 아니 좀처럼 골이 나오기 힘든 경기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9월 20일 대 울산전. 저는 월드컵 이전에 보아왔던 잔디상태를 보았습니다. 경기 당일까지 내렸던 비는 그라운드에서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았었고, 곳곳에 물웅덩이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패스를 할 때마다 물웅덩이에서 공이 멈추기 일쑤였고, 각 팀의 수비수들은 결정적인 상황에서 미끄러지며 상대편에게 좋은 득점 찬스를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과는 성남의 0대1 패배. 리그 첫 2연패를 당하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남은 더 이상의 모란 홈경기 대신, 캐노피 공사가 취소된 탄천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모란 홈경기는 앞으로도 없을 듯합니다. 2무 2패라는 리그 1위 팀 답지 않은 성적표보다 성남의 지지자들을 화나게 했던 것은 아마 좋은 그라운드 컨디션에서 성남의 플레이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게 한 '잔디'와 '시설 관리 공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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