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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

[블로그]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같은 학교를 다니다 보면…

기사입력 2008.09.11 11:07 / 기사수정 2008.09.11 11:07

박혜림 기자

[체대생 이야기]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일어난 올림픽 출전 선수단 환영회

나는 현재 한국체육대학교 사회체육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다.

사정이 있어서 나이는 어느덧 24살이지만 졸업은 못하고 있다.  대학생으로써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실기 수업 때는 어린 후배들을 못 따라갈 때도 간혹 있다.

아무튼, 약간 힘든 몸(?)으로 열심히 수업을  따라가고 있는 가련한 여학생이다.

시작하기에 앞서 많은 사람이 하는 오해 한가지.

사람들의 인식에 한국체육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하면 모두 엘리트 체육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엘리트체육을 전공하는 체육학과 학생들이 반, 나처럼 입시체육을 거치고 들어온 일반학과 학생들이 반이다.

한마디로 일반 대학교 체육교육과나 사회체육과 (혹은 생활체육과)를 다니는 학생들과 똑같다는 소리다. 다만, 학교 이름이 한국체육대학교일 뿐이다.  그러니 주위에 '한체대'에 다닌다고 소개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신기하게 보면 안된다. 그들도 일반학과 학생일 수 있다.

그래도 체육학과 학생이 반이다 보니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이 꽤 많다. 소개로는 64명 정도 된다고 하더라.

그러다 보니 당연히 올림픽 주기와 같이 우리 학교도 4년마다 한 번씩 활기를 띤다. 실제로 올림픽이 끝나고 개강이 되어 학교를 가보니 이미 메달을 딴 선수들의 이름과 성적이 현수막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니 선수들의 얼굴이 강제 팝업창을 수놓고 있었다. 역시 이런 일엔 빠르구나. 속으로 감탄했다.



▲ 올림픽 끝난지 3주째인데 이거 언제 내리는거야?

조만간 한번 하겠거니 했던 선수단 환영회를 바로 오늘 하였다. 덕분에 오전 수업은 모두 휴강.

[등교길 난데없는 출장부페 차. 아 오늘은 공짜밥이구나.]
[등교길 난데없는 출장부페 차. 아 오늘은 공짜밥이구나.]


▲ 등굣길 난데없는 출장뷔페 차. '아 오늘은 공짜 밥이구나'

미리 얘기를 해줬으면 학교에 안 나갔을 텐데…(이런 학생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되어 미리 얘기 안 한 듯?)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며 그래도 TV에서나 보던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을 풀었다.



▲ 설마…이 더위에 밖에서?

9월하고도 둘째 주에 접어들었지만 날씨는 아직 8월의 무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 학교가 있는 올림픽공원 근처는 높다란 빌딩 숲이 없기 때문에 직사광선에 그대로 노출된다.

설마 운동장에서 할 줄은 몰랐지만 조례대에 행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아…. 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널리고 널린 체육관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이면 밖이야! 핸드볼장도 있고 배드민턴장도 있잖아! 라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아무래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이 정도의 뙤약볕은 거뜬하게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여 운동장에 설치한 듯하다.

체대생도 더위는 탄다. 30도를 웃도는 더위에는 천하장사도 맥을 못 추는 법이다.




▲ 오…이것도 취재하러 온 방송국이 다 있네?

유명 방송국은 아니지만 취재하러 온 방송국도 있었다.  맨날 '패밀리가 간다'만 틀어주는 케이블 방송국.

시작할 시간이 다 되어 슬슬 구경하러 갔다. 무슨 유치원생 소풍 가는 길도 아니고 줄을 지어 가서 줄을 지어 앉았다.



▲이런 것까지 세울 필요는 없잖아! 우린 다 성인이라고!

학교 출신으로 메달을 딴 선수들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 레슬링의 박은철 선수, 역도의 사재혁, 윤진희 선수, 태권도의 차동민, 황경선 선수, 배드민턴의 황동민 선수, 양궁의 임동현 선수가 참석했다.
멀리서 볼 수밖에 없었지만 다들 하얀색 선수단 복장을 입고 있었기에 구분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 서서히 등장하는 선수들. 얼굴이 안 보여서 거리가 '349845723광년'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학교 응원단 공연, 선수들의 활약 모습 시청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몇 번을 보더라도 선수들이 메달을 따는 결정적인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역시 이런 벅찬 감동 때문에 스포츠를 끊지(?) 못하는 것이다.

선수들에게 표창장과 격려금을 지급하면서 화기애애한 시간이 지나가고 우려하던 순간이 다가왔다.

총장부터 시작해서 별 관련도 없는 송파구 국회의원의 축사까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태양이 내리쬐고 있는데도 잔디밭에 앉아있는 대다수의 사람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준비해온 축사를 꿋꿋이 읽는 그들의 모습에 옆에 앉아 있던 무용학과 학생들의 쓰러지는 퍼포먼스를 덤으로 볼 수 있었다.

총장이나 기성회 회장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국회의원은 왜 여기까지 와서 축사를 하는 거지? 라는 의구심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더군다나 잘못 알고 있는 사실까지 거리낌없이 얘기하고 있었다.

이봐요, 올림픽 공원이 나중에 생긴 거라고요. 우리 학교 옆에 올림픽공원이 생긴 거라고요.
이럴 시간에 국회에 나가서 싸우지 말고 정치나 열심히 해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무의미하고 지루한 시간이 지나가고 태권도 시범단의 시범 공연을 끝으로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이보게들, 잘 달구어진 트랙 위에서 맨발로 공연하느라 수고 많았네.

드디어 가까이서 얼굴을 볼 수 있는 찬스! 이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을 비웃듯 대부분의 학생은 점심을 해결하러 음식이 놓여있는 자리로 발길을 돌렸다.

거의 다 운동하는 사람들이라 올림픽 메달리스트도 형, 동생 하는 사이다. 잘 됐다 싶어 냅다 뛰어가 가까이서 사진을 마구잡이로 찍기 시작했다.

  

 



▲ 기념촬영에 응한 선수들

기자단이 사진을 다 찍고 몇 명 안 되는 학생들이 나와서 선수들과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아갔다. 나도 질 수야 없지! 라는 생각으로 평소 소심한 성격을 이겨내고 좋아하는 사재혁 선수와 사진을 찍었다.

그래그래. 적어도 한체대에 다니면서 이런 호화로운 경험(?) 정도는 당연히 겪어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뭐 한 시간 동안 땡볕 아래에 세워둔 것도 이해할 수 있고 뷔페 음식이 정말 맛없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지만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것 하나.

분명 우리 학교 선수들이 60명가량 출전했다고 했지만 왜 환영회에 보이는 건 메달리스트들밖에 없는 것인가?

교수들과 내빈들 앉으라고 의자가 마련 됐지만 약 2/3은 빈자리였다. 왜 그들은 이 자리에 부르지 않은 거지? 메달을 따진 못했지만 우리나라 대표 자격으로 큰 대회에 나갔던 선수들이다. 당연히 박수와 환호성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근데 왜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걸까?

올림픽이 끝날 때마다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박수와 격려를 보내줘야 한다고, 누구보다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같은 식구들까지도 이렇게 차별을 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그리 편치 않았다.

같은 식구도 하지 못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다.

비록 얘기 한마디 못 나누고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더라도 소심한 성격 탓에 몇 마디나 했을까…) 멀리서 사진만 열심히 찍었지만 메달리스트를 실제로 봤다는 것 자체로도 좋았다. 일생에 몇 번이나 이렇게 메달리스트와 사진을 찍어 볼 수 있을까?

일반 대학과는 다르게 체대는 역시 나름의 재미가 있는 것 같다.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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