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5.02.12 00:29 / 기사수정 2005.02.12 00:29
아마야구는 정보공급이 많지 않아 정확한 데이터와 팩트보다는 입소문을 빌린 형식으로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과장과 축소, 어느 정도의 사실 왜곡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일단 메이저 언론사들조차도 아마야구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보니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프로에서 대성공을 일궈낸 대스타의 경우, 성공스토리를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언론의 곡필까지 더해져서 스타의 아마시절이 사실과 다르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경우가 박찬호와 이승엽이 아닐까 한다.
평소에 아마야구에 관심 없어 사실관계 확인도 하지 않고, 성공스토리를 더 극적으로 만들어야 하다보니 과거 아마시절의 모습이 언론에서 사실과 다르게 묘사가 많이 되는 케이스가 많다. 앞의 두 선수의 경우 이렇게 과장된 소문이 많이 퍼져 사람들이 철썩같이 믿고 있는 형편인데 그들의 아마시절 실제 커리어와 모습에 입각해서, 그런 과장된 소문에 딴지를 좀 걸어보겠다.
◆ 고교시절 특급 좌완투수 재목 이승엽??
이승엽의 성공스토리를 말할 때마다 단골로서 처음에 나오는 얘기다. 경북고시절 특급 좌완투수 재목이었고, LG의 좌타군단을 잡는다는 포부로 입단했으나 부상 등이 있었고, 타자로서 숨은 재능을 알아본 백인천을 중심으로 코칭스태프가 타자로서 전향을 권유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타자로서 수업을 받아 대성했다는 스토리.
그런데 고교시절 이승엽은 특급 좌완투수 재목이 아니었다. 공의 구위나 구속으로 보나 당시 고교시절 커리어로 보나 딱히 드러나고 남긴 것이 없었다. 당시 이승엽과 동기 중 지존이었던 김건덕과 김병준에게는 당연히 비교조차 힘들었고 같은 좌완인 세광고 박정진에 비해서도 투수로서 한참이나 아래였던 투수였다. (박정진이 지금은 병풍으로 흐지부지 되었지만 보기드문 좌완 파이어볼러로서 아마시절에는 무척이나 좋았던 투수다. 연고전에서 최희섭을 3연속 삼진, 박용택을 연속삼진으로 잡아내었던 투수)
언론에서 당시에도 '대단한 투수였고 많은 기대를 모으면서 입단했다'고 기사를 내고 또 지금에 와서 성공스토리를 조명해가면서 당시 좋은 투수였다고 말하는 바람에, 팬들은 과거 삼성의 김태한 정도 되는 투수였다고 알고 있지만 전혀 사실무근인 이야기다.
공도 그리 빠르지 않았고 변화구와 제구력도 평균 이상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부산고의 고병우나 안산공고 김광현 정도. 저들은 좋은 좌완투수 재목이지만 아무도 특급 좌완투수라고들 하지 않는다. 어느 누가, 당장 프로와서 10승 이상해주기를 기대하면서 몇년 후엔 리그지배력을 가질 좌완투수재목들이라고 생각할까.
이승엽은 당시부터 정교함과 장타력을 갖춘 좋은 타자재목이었다. 전국무대에서 좋은 타격능력을 자주 검증 받았던 선수로서 특히 전국체전에서 세광고의 박정진을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뽑기도 했었던게 인상 깊었다. 정말 이승엽이 140중후반으로 뿌려줄 수 있고, 슈퍼에이스로 기대를 모은 좌완이었다면 잔부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팀지도부가 타자로 전업시킬 수 있었을까? 특급투수 재목, 아니 특급<좌완>투수재목을 타자로 전업시킬 지도자는 어느 나라를 뒤져보더라도 찾기 힘들 것이다. 고교시절 어느 강타자 못지 않게 쳐댄 봉중근과 김광삼도 지금 투수를 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삼성의 마운드 사정이 좋지 않고 연고에 대형투수재목이 씨가 말릴 지경이어서 유망주 투수에 대한 팬들의 관심과 기대가 대단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었다. 그러다보니 이승엽이 투수로서 부각될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결론적으로 고교시절부터 이승엽은 에이스재목이 아니었다. 슈퍼 타자 재목감이었다.
◆ 박찬호가 있을 당시 공주고의 에이스는 손혁이었다???
한국인으로 메이저무대에서 전무후무한 업적을 일군 박찬호. 그 박찬호의 고교시절에 대해 언론이 만들어낸 소문을 들어보면 정도가 심한 사실 왜곡이 많다.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말, '공주고 에이스가 손혁이었다', '당시 박찬호는 공만 빨랐고 무명이었다', 심지어 '타자로 한양대에 진학했다'는 등의 말들이 언론에서 많이 돌았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실제 사람들이 사실로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박찬호는 공주고 시절부터 좋은 투수였고, 당시 팀의 에이스였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1학년 때 대학진학이 걸린 봉황기 8강전에서 막강 휘문고를 상대로 박찬호가 선발로 등판했다. 4강에 들면 대학행이 보장되는 당시 상황에서 어느 투수가 나왔느냐는 그가 에이스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잣대가 되지 않을까? (위장선발이 아닌 게임을 맡기는)
2 ) 왕중왕전 그 자체였던 고2 전국체전 준결승전에서 봉황기의 왕자 안희봉이 있었던 대전고와 대통령배, 황금사자기의 왕자 심재학의 충암고를 공주고가 연파했는데 당시 두 경기는 신재웅과 박찬호의 계투로 따냈다.
3) 3학년때 곽재성과 차명주의 경남상고, 투타 모두 괴물이었던 박재홍의 광주일고, 당시 화랑고와 전국체전을 석권했던 부산고. 이런 강팀과의 경기에서 모두 총대는 박찬호가 맸다. 봉황기에서 강릉고를 상대로 손혁이 완봉승을 거뒀지만 박찬호는 박재홍의 광주일고를 상대로 2안타 완봉승을 거두었다. 광주일고와 강릉고 누가 더 강팀이었을까? (스카우트 파동에서 과대평가되기도 했던 손경수보단 오히려 박재홍이 더 좋은 투수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대회본선보다 더 치열한 것이 북일고와의 지역예선이었는데 당시 이성갑의 북일고를 상대로 한 지역예선에서 역시 에이스 총대는 박찬호가 짊어졌다. 언론에서 문제제기 될 정도의 편파판정시비가 있어 패했지만. (이성갑도 좀 잘못 알려진 케이스다. 단대가서 갑자기 컸고 심지어 피닉스 문동환과의 맞대결 한판에서 이겨 뜬 케이스라고 알려져 과대평가된 선수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북일고시절부터 좋은 투수였다.)
고등학교 내내 마운드에서의 비중, 그리고 커리어 공의 구위 모두 박찬호가 앞섰는데 왜 손혁이 에이스라고 알려졌을까? '누가 에이스고 아니다'라는 것이 주관적인 느낌으로 갈리고 판단될 여지도 많지만 당시에도 손혁은 박찬호와 수평적인 비교자체가 안되는 선수였다.
그리고 당시에도 박찬호는 특급 투수 소리를 들었다. 북일고와 예선에서 고배를 드는 바람에 대통령배와 청룡기대회를 출전을 못했지만 전문가들로부터 인정을 많이 받았던 선수로서, 공만 빠랐던 투수, 그리고 타자로서 한양대에 진학했던 선수가 절대 아니었다. 당시에도 좋은 투수였고 한팀의 당당한 에이스였다. (당시 빙그레에서 돈 천만원 때문에 잡지 못해 대학보냈다고 하는데, 그보다 훨씬 큰 액수를 제시했다는 말도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 김영덕 감독은 박찬호를 대단히 탐냈다.)
'고교시절 무명 손혁에 밀렸던 선수', '타자로서 재능이 더 많아 타자로 대학진학했던 선수' 이렇게 운을 띄워놓고, 성공 스토리를 풀면 그만큼 극적인 효과는 올라가겠지만 어디까지나 저것들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고2 청룡기 4강전에서 군산상고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둔 것이 손혁의 고교시절 가장 화려한 커리어인데, 당시 군산상고는 약체였다. 그 대회를 제외하곤 전국대회 성적이 미미했다.)
◆ 어디까지나 사실에 입각해야-지나친 과장은 사절
팬들은 아마야구에 대해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얻기 힘들다. 하물며 과거의 아마야구 정보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다보니 입소문으로 많이 퍼지고 그것이 재탕, 삼탕되어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메이저 언론에서 스타를 만들어주고 조명을 할 때 아마시절 얘기를 꺼내는데 대부분 사실의 과장, 축소 왜곡된 부분이 많다. '박찬호가 고교시절 형편없는 투수였는데 메이저가서 투수로 대박'이 나고, '이승엽이 고교시절 아주 좋은 투수였는데 타자로 대성'을 했다는 식으로 쓰면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실에 입각해서 팩트만을 말해야지 않을까. 더구나 저들이 국민영웅 대접을 받았고, 나라의 얼굴이기도 했던 선수들이라면 더 과장을 피해야하는게 아닐까? 언론과 팬들은 사실을 알아야 하고, 과장된 소문과 오해들은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 엑스포츠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주요 뉴스
실시간 인기 기사
엑's 이슈
주간 인기 기사
화보
통합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