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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츠 모닝와이드] 빙판의 소녀, 숙녀를 만나다

기사입력 2008.07.07 04:01 / 기사수정 2008.07.07 04:01

조영준 기자

 Monday Sports Essay - 빙판의 소녀, 숙녀를 만나다.



‘피겨 여왕’ 김연아(세계랭킹 2위, 군포 수리고)의 어머니인 박미희씨는 어릴 적부터 피겨에 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둘째 딸인 김연아를 통해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딸이 피겨에 대해 그리 흥미를 보이지 않던 반면 김연아는 달랐습니다. 피겨를 타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연아 본인이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장차 세계를 제패하게 될 김연아의 피겨에 대한 첫 출발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도 어머니는 딸의 가능성이 지금처럼 크게 성장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연아의 재능은 비범하다 못해 모든 이들을 경악시켰습니다.

트리플 점프를 익히려면 다른 선수들 같은 경우엔 1년이 넘게 걸리지만 김연아는 이것을 단 몇 주 만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이들은 하나같이 한국피겨 역사상 최고의 ‘피겨 신동’이 출연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김연아와 박미희씨가 함께 걸어온 길은 창창한 고속도로가 아닌 험난한 가시밭길이었습니다. 발에 맞는 스케이트를 구하지 못해 당한 고초와 쇼트트랙 선수들과 함께 좋지 못한 빙질에서 연습할 수밖에 없었던 열악한 피겨 현실, 거기에 김연아의 등장을 시기하는 일본 언론들의 보도까지 나오면서 김연아와 어머니인 박미희씨는 상처를 받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 국가들 중에서 피겨에 관한한 가장 ‘극성맞은’ 국가인 일본은 오래전부터 정부적인 차원으로 투자한 피겨선수 발굴과 양성과정을 통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자신의 선수들에게 강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사다 마오(세계랭킹 1위)와 안도 미키(세계랭킹 4위)를 위시한 자국의 선수들이 늘 세계최고 수준의 기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던 이들의 앞에 전혀 예상치 못한 김연아가 등장했습니다. 사실,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를 누르고 2006 세계주니어피겨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할 당시 일본 언론들은 적지 않은 쇼크를 먹었습니다.

자신들이 체계적으로 다져온 피겨 유망주 발굴 시스템에서 발굴한 역대 최고 선수라 칭하던 아사다 마오가 한국의 김연아에게 패했으니 그들의 시선은 김연아에게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국내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어지지 않았고 일부 피겨 팬들은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김연아 팬들의 오해라고 치부했었지만 정확한 것은 일본의 언론들은 결코 김연아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기술과 피겨에 대한 재능은 아사다 마오가 더 뛰어나고 표현력에 있어서만큼은 김연아가 특별하다고 평한 의견은 일본 언론들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고정관념’입니다. 이런 왜곡된 표현은 한동안 국내언론에서도 지극히 사실인 것 마냥 보도되었으며 ‘트리플 악셀’이란 기술의 구사여부로 두 선수들을 평가하는 지극한 단순한 방법은 김연아뿐만이 아니라 피겨 전체를 왜곡해서 보게 만드는 잘못된 시선이었습니다.

똑같은 점프의 난이도를 평가하며 아사다 마오가 김연아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을 일본 언론들은 일관되게 보도했습니다. 물론 자국의 선수를 더욱 높게 평가하는 것은 어느 국가에서도 자연스럽게 있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도가 지나친 일본 언론 몇 군데에서는 아사다 마오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피겨에도 전념하는 지극히 훌륭한 학생이지만 이에 반해 김연아는 학생의 본분인 공부를 외면한 채, 오로지 하루 종일 피겨에만 열정을 쏟는 ‘고지식하고 불쌍한 아이’로 표현했습니다.

이런 보도는 김연아 자신과 박미희씨의 귀에도 들어갔으며 도를 넘어선 인신공격에 가까운 보도들은 어린 김연아에게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서도 일부 양심 있고 피겨에 대해 진정으로 눈을 뜬 몇몇 일본 평론가들은 김연아의 뛰어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피겨를 ‘있는 그대도 보고 객관적으로 말하는’ 양심이 고개를 들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한 피겨 평론가들 중 가장 돋보인 인물은 다름 아닌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싱글 금메달리스트인 아라카와 시즈카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올림픽을 제패한 선수출신이었던 아라카와는 김연아의 정확한 점프와 레벨이 높은 스핀과 스파이럴, 그리고 놀라운 표현력 등을 골고루 평가하고 칭찬했습니다. 의례 김연아의 일부만을 높게 평가하고 자국의 선수들과 비교하며 깎아내리는 일본 피겨 전문가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아라카와 시즈카는 보다 엄격하게 매겨진 점프의 정확성에 대한 규정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습니다. 다른 일본의 평론가들과 언론들은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일본선수들을 견제하기 위한 유럽과 북미 세력의 비합리적인 룰이다.’라고 평할 때에 아라카와 시즈카는 정석적인 점프와 규정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해설을 할 때마다 우회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일례로 아라카와는 아사다 마오와 안도 미키, 그리고 나카노 유카리 등의 정확하지 못하고 회전수가 모자란 점프에 대해 시간을 두고 시정해나가는 것이 좋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교과서적이고 점프의 교본이 될 만큼 정확한 점프를 구사하는 김연아가 부럽다는 의견도 밝혔습니다.

지난 5월 중순에 있었던 김연아를 메인 선수로 내세운 ‘페스타 온 아이스’ 기자회견 장에는 한복을 나란히 곱게 차려입은 김연아와 아라카와 시즈카가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이 기자회견장에서 아라카와는 ‘김연아의 연기를 오래전부터 꾸준하게 지켜봤었는데, 단점을 발견하기 힘들만큼 김연아는 완벽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김연아가 구사하는 모든 연기 요소들은 높은 레벨을 받고 있다. 김연아의 연기를 평상시에 볼 때는 항상 부러운 점을 많이 느낀다.’라고 답변하며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라카와의 이러한 발언은 그녀가 일본에서도 김연아에 대해 평가했던 부분과 그녀가 일관적으로 해온 해설들을 생각해보면, 결코 립 서비스라고 보기 힘듭니다.

아라카와 시즈카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어떤 피겨가 옳고 정확한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자국의 선수들에 대한 격려와 편향된 의견들은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왜곡의 정도가 심하게 표현된 김연아의 진면목을 객관적으로 사심 없이 평가한 아라카와 시즈카의 모습은 진흙 탕같은 일본과 한국 언론들의 피겨 논쟁 속에 피어난 훈훈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김연아의 모든 연기와 기술이 피겨의 교과서라는 말은 아니며 김연아도 지적받을 단점이 충분히 존재하는 선수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에게도 동일시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아라카와 시즈카의 모습을 통해 새롭게 비춰져야 할 부분은 감정싸움을 배제한 피겨자체를 정확하게 보고 올바르게 평가하는 양심의 소리일 것입니다. 사실, 김연아는 일본 언론들에게 수도 없이 왜곡돼오고 과소평가 받아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 위치한 아라카와 시즈카는 자신이 직접 해오고 느낀 피겨 경험을 토대로 해, 일본에서 평가받지 못했던 김연아의 장점을 올바르게 밝혀왔습니다.

김연아도 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아라카와에 대한 존경과 칭찬을 보냈으며 아사다 마오를 늘 높게 평가해주는 성숙한 태도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직 18세의 소녀인 김연아와 1981년생으로 20대 후반에 들어서는 ‘숙녀’ 아라카와 시즈카를 보면서 성숙하고 진정한 경쟁관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사진 = 김연아, 아라카와 시즈카 (C) 전현진 기자]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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