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7 05:13

맛있는 잡담(13) 햄으로 때우는 '하루'

기사입력 2005.01.28 11:06 / 기사수정 2005.01.28 11:06

김종수 기자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공식품 햄, 나는 그중에서도 정도가 심한 편이다.

내가 햄을 처음 먹어본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이다.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시골집에서 살다보니 먹을 기회도 없었고, 또 구태여 찾아먹을 생각도 안 했다. 햄말고도 맛있는게 얼마나 많은데 말이다.

그게 그렇게 놀라운 일인가? 가끔 친구들이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면 '원시인'취급을 받을 때도 있다.
하기야, 작은 지방도시에 살고있기는 하지만 이미 다른 친구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햄을 먹어 왔었으니까(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거기에 비하면 나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세상 속에서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계란프라이'도 중학교 때까지는 아주 드물게 먹은 편이었으며 그나마 먹었던 계란음식은 거의 밥솥에서 같이 쪄낸 형태의 이른바 '계란찜'이었다. 하기야 피자도 군대제대하고 한참있다 먹었으니까 말다했다.

언젠가 가만히 앉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남들은 다 어릴 때 경험하고, 먹었던 것을 난 참으로 늦게 알고, 먹었던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반면 남들이 안한 짓은 또 빨리 했다. 무슨 짓이냐구? 험험…말 안하는게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자꾸 서론이 길어지려고 한다. 암튼 고등학교때 처음 햄 맛을 본 나는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어쩌고 저쩐다'는 옛말처럼 주식처럼 햄을 즐겨먹었고, 이런 습관은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며칠 전에 있었던 하루를 모두 햄으로 때운 일화를 얘기하면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가리라 보여진다.




아침: 내가 사는 지역만 그런 것인지 다들 그런 것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내 또래 젊은이들은 아침을 잘 먹지 않는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 같으면 아내 등쌀에, 또는 유부남의 습관으로 아침을 먹기도 하지만 총각들은 챙겨먹기도 쉽지 않거니와 밥맛도 없어 대충 아무거나 집어먹거나 그냥 나가기 일수다.

나 역시 그동안은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요즘 와서 과일이며 우유 같은 것을 먹으려고 노력중이다. 오늘아침메뉴는 '햄 조각 집어먹기'이다. 

어젯밤에 사다놓은 커다란 통 햄을 도마 위에서 부엌칼로 썽둥썽둥 잘라서 반찬통에다 집어넣은 후 일부는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맛있었다.

군대시절, 이등병 때부터 빠졌던(?) 나는 자주 취사장 주위를 얼쩡거렸고, 취사병고참은 그런 나에게 부식으로 남은 커다란 통햄을 주곤했다. 나는 여지없이 그런 것들을 통째로 몇 개씩 먹어댔다. 그리고 밥맛이 없어서 음식을 남기다 고참들한테 수없이 깨졌다. 그래도 난 꿋꿋하게 통햄을 애용했다. 고참들왈 "저것이 누굴 닮아서 벌써부터 저렇게 빠졌을까나"

억울하다! 난 군기였다. 할 것은 다했다. 다만 햄을 너무 좋아했던게 패착이었다.


점심: 잘라놓은 햄 조각을 커다란 그릇에 상당수 밀어 넣고 고추장, 열무김치, 참기름과 함께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언제 먹어도 되게 맛있다.

햄 조각을 넣은 얼큰한 비빔밥은 고등학교졸업이후부터 특히 애용한 식단으로, 배고팠던 자취생시절 허기를 채우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언젠가 자취를 하다가 돈이 떨어져서 방바닥에서 이를 악물고 누워있던 적이 있었다. 친구들이나 선배들에게 연락하면 바로 달려왔겠지만 아르바이트하다가 사정이 생겨 그만 두었던 때라 자존심 때문에 그냥 내리 사흘을 굶었다. 더 이상 있다가는 굶어 죽을 것만 같아서 태연한 얼굴로 웃으면서 친구한테 이천원만 달라고 해서(절대 굶은 티 안내고) 집으로 달려갔다.

냉장고에 있는 햄이랑 밥, 모조리 바가지에 넣고 비벼먹었다. 조금 있다가 배 터져 사망하는 줄 알았다. 과식은 하지 말자.

저녁: 아침, 점심이 너무 부실했던 것 같아서 아는 누님에게 부탁해서 커다란 냄비 가득, 부대찌개를 끓였다. 내가 좋아하는 햄이 가득한 부대찌개의 맛은 일품이었고, 난 밥을 세공기나 비웠다. 

역시 햄 요리의 결정판은 부대찌개가 아닌가싶다. 군대시절에도 가장 좋아했던 음식중 하나가 부대찌개였고, 이후에도 밖에 나가서 가장 자주 먹는 음식 역시 부대찌개이다. 부글부글… 배고플 때 듣는 부대찌개 끓는 소리는 그야말로 고문이다.



밤: 친구가 소주한잔하자고 느닷없이 집에 찾아왔다. 그야말로 기습방문인지라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었다. 친구가 소주두병을 치켜들고 안주 없냐고 행패를 부린다. 할 수 없이 슈퍼에 가서 안주를 사왔다. 줄줄이 비엔나 소세지이다. 물론 이것도 햄이다.

친구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본다. 이 녀석은 햄을 안 좋아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소주에 햄 안주로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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