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조은혜 기자] 9회말 2사 만루 상황 만큼이나 많은 타자들이 가장 긴장을 느끼는 순간이 바로 개막전 첫 타석에 들어섰을 때다. 그리고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41)은 지난 3월 31일, 선수로서 느낄 수 있는 그 떨림을 마지막으로 경험했다.
이승엽은 지난 2015시즌이 종료된 후 삼성과 2년 36억원의 계약을 체결하며 "'선수로서 마지막은 삼성에서'라는 마음에 변함이 없었다. 약속을 지키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라는 의미심장한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2016년, 불혹의 나이에도 젊은 선수들에게 전혀 뒤쳐지지 않는 성적을 거둔 이승엽은 시즌이 끝난 뒤 "남은 1년동안 후회를 남기지 않고 원없이 야구하겠다"며 2017년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현역 생활을 마감할 것을 밝혔다. 그렇게 2017시즌은 이승엽의 '마지막 시즌'이 됐다.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5년 삼성의 유니폼을 입은 이승엽의 프로 첫 출장은 데뷔 해 4월 15일 잠실 LG전이었다. 고졸 신인이었던 이승엽은 1-5로 승부가 어느 정도 기울어졌던 9회말 대타로 프로 첫 타석의 기회를 얻었다. 공교롭게도 대타로 들어선 타석의 전 주인이 바로 지난해까지 삼성을 이끌었던 류중일 감독이었다. 전광판의 이름이 류중일에서 이승엽으로 바뀌고, 이승엽은 당시 LG 마무리 김용수를 상대로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뽑아내며 프로 첫 타석에서 첫 안타를 만들어냈다. 이튿날 이승엽은 6번타자 및 1루수로 데뷔 처음으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이승엽은 "프로 데뷔전에서의 안타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그 후로 22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승엽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타자'가 됐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이승엽의 이름은 알았다. 그렇게 20여 년의 세월 동안 이승엽은 각종 대기록을 쏟아냈다. 시간을 거듭하며 리그에서 손꼽히는 노장이 됐지만 어중간한 전력으로 꼽히지도 않았다. 지난해만 해도 한일 통산 600홈런이라는 전무후무한 금자탑을 쌓았다. 물론 올시즌에도 이승엽이 내딛는 발자국들 하나하나가 모두 역사의 한페이지가 된다.
성적의 꾸준함 만큼이나 이승엽의 자세 역시 한결 같았다. 은퇴 시즌을 앞둔 마음가짐 역시 다름이 없었다. 그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준비한 건 사실이지만, 기분 좋게 그동안 해왔던대로 시즌에 맞춰 준비했다"고 이번 스프링캠프를 돌아봤다. 그리고 3월 31일 이승엽은 1루수 및 5번타자로 선발 출전, 한 개의 안타를 뽑아내며 4타수 1안타로 자신의 2017시즌을 시작했다. 다만 삼성은 2-7로 다소 허망하게 첫 경기를 KIA에게 내줬다. 첫 경기 후 이승엽은 자신의 경기에 대한 소감보다 "팀이 빨리 첫 승을 해야한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은퇴를 앞둔 베테랑들은 대개 체력 안배를 위해 지명타자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승엽은 마지막 시즌 1루수 도전을 선언, 외국인타자 다린 오프와 번갈아 1루를 맡고 있다. 개막 1,2차전에서 오랜만에 2경기 연속 1루수 선발 출장한 이승엽은 "쉽지 않더라"며 웃었다.)
2차전에서도 이승엽은 1루수와 5번타자로 선발 출전했고, 삼성은 KIA와 연장 혈투를 벌였지만 또다시 첫 승에 실패했다. 하지만 2일 열린 3차전, 이승엽은 KIA 선발 김윤동을 상대로 우월홈런을 때려내며 이날 삼성의 첫 득점을 만들어냈다. 이승엽의 KBO리그 444호 홈런이자 이승엽의 마지막 시즌, 첫 홈런이었다. 이승엽의 홈런이 터진 뒤 삼성 타선은 거짓말처럼 뜨거워졌고, 무려 17안타 16득점으로 2017 첫 승을 만들어냈다. 홈런 이후 희생플라이와 적시타 하나를 더 추가한 이승엽은 이날 4타수 2안타 4타점 1득점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개막 시리즈를 마친 이승엽은 "개막전에서 승리하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안됐다. 중심타선에서 쳐줘야 다른 선수들도 시너지 효과를 받는데 내가 1,2차전에서 단타 하나씩 밖에 치지 못했다. 중심타자로서 흐름을 우리 팀으로 못 가져온 것이 중심타자서 아쉽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얘기했다. 그는 개막 3일 만에 홈런을 치고도 "스윙이 조금 더 빠르고 간결하게 나와야하는데 조금씩 뭔가 모르게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렇게 이승엽의 은퇴 시즌이 닻이 올랐다. 이승엽 본인은 물론 삼성 구단과 KBO 차원에서도 이승엽의 '마지막'에 대한 준비가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이승엽의 어떠한 손짓 발짓도 의미가 있는 시즌이기 때문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이승엽 본인은 너무 많이 들리는 이 '은퇴 시즌'이라는 단어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이승엽은 "누구든 날 볼 때마다 '마지막 시즌'에 대해 얘기한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너무 많이 들어 조금 거슬릴 정도"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승엽은 "시즌은 길다. 아직까지 다른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은퇴까지의 카운트다운이 들어간 이상 지난 세월과 완벽히 똑같은 자세와 마음으로 임하기는 쉽지 않다. 이승엽은 "매 타석 매 타석 못 치면 더 아쉽고 더 화가 나는 것 같다. 원래 정규시즌은 장기 레이스이기 때문에 빨리 잊고 다음 타석을 준비해야 하는데, 특히 찬스볼 같은 것에 대한 잔상이 너무 남는다. 그런 건 예년보다 더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보면 조급함이라고 할까"라고 덧붙였다.
이승엽에게 혹시나 은퇴를 선언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냐고 물었다. 불혹의 나이를 넘겼지만 개막 3연전만 봐도 앞으로 몇 시즌은 너끈히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승엽은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남은 경기에 최상의 상태로 팀에 도움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과연 이승엽다운 대답이었다. 이제 이승엽에게는 141개의 경기가 남았다. 시간이 흘러 한 경기, 한 타석이 남는다 해도 이승엽은 같은 말을 하리라. 그리고 이승엽이기에, 이 말들이 진심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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