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8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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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장사'는 문제지만 박지성은 문제없다

기사입력 2008.04.18 11:05 / 기사수정 2008.04.18 11:05

박형진 기자

[엑스포츠뉴스=박형진 기자] 정희준 교수가 18일 프레시안을 통해 기고한 '언론의 박지성 장사, 그리고 불편한 진실'은 한국 스포츠 언론의 아픈 점을 잘 꼬집고 있다.

현재 스포츠 언론은 그야말로 박지성 때문에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 기자들은 경쟁적으로 검색창에 'Ji-sung Park'을 치며 관련된 현지 기사를 '사냥'한다. 박지성의 얘기가 메인이 아닌 기사라도, 한두 줄 언급된 기사라도 상관없다. 때로는 오역을 해가면서까지 박지성에 대한 얘기를 지어낸다. 이쯤 되면 번역기를 돌려가며 어색한 문장으로 기사를 만들어내는 것은 애교에 가깝다.

영국 타블로이드의 루머는 그 정확도가 상당히 떨어지지만, 특정 구단과 선수의 상황을 반영하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문제는 타블로이드의 루머 기사 중 일부를 발췌하여 뻥튀기한 영국의 스포츠 사이트의 기사를 한국 기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옮겨쓴다는 데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미 뻥튀기된 기사가 다시 한 번 뻥! 튀겨진다. 출처불명, 사실관계 미확인 기사가 하루에도 수십 개가 올라온다. 박지성의 이름으로.

정희준 교수의 한국 언론 비판은 분명 시의적절하다. 그러나 정희준 교수가 언급한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1 산소탱크는 EPL에서 가장 강한 무기다

정 교수 본인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아스날의 경기를 묘사하면서 얘기했듯이, 프리미어리그의 축구는 그야말로 '속도경쟁'이다. 아름다운 기술도 거친 태클에 막히고, 몸싸움에서 밀리면 공을 뺏기는 그야말로 '본능에 가장 근접한 축구'다.

박지성이 맨유의 선수가 될 수 있었고 맨유에서 살아남는 이유는 바로 이 '강인한 체력과 활동량' 때문이다. 이 점은 적어도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최대의 강점 중 하나다. 분명 박지성은 호날두가 가지고 있는 멋진 개인기를 갖추고 있지 못하지만, 박지성보다 뛰어난 개인기를 가진 선수도 아무나 맨유의 일원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현지에서 박지성의 별명은 산소탱크가 아니다. 맨유팬들이 박지성에게 '세 개의 폐를 가진 선수'라는 별칭을 가끔 쓰기는 하지만.

#2 박지성, 60경기를 다 뛰라고?

K-리그는 1년에 26경기를 치른다. (물론 컵 대회라는 기형적인 체제가 있어 10경기 정도를 더 치르기는 한다만.) 반면에 프리미어리그는 1년에 38경기를 치른다. 거기에 리그컵과 FA컵 대회가 있고, 유럽대회에 나가게 되면 최소 6경기에서 최대 15경기까지 더 뛰어야 한다. 유럽 정상급 팀이 1년에 치르는 경기는 거의 60경기에 달하는 것이 현실이다.

솔직히 박지성이 맨유에서 '주전급'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박지성의 자리에는 '레전드' 긱스, 세계 최고의 선수 호날두가 자리를 잡고 있으며, 올 시즌 영입한 나니도 기량이 급상승 중이다. (정 교수가 언급한 안데르손은 중앙 미드필더이므로 박지성의 경쟁자가 아니다. 요즈음 측면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하그리브스를 든다면 모를까.)

박지성은 이번 시즌 부상에 시달리며 여름 훈련도 하지 못했다. 리그 후반기에 겨우 훈련을 시작했고, 서서히 체력을 회복 중이다. 그런 가운데서 박지성의 출전시간과 그라운드 위에서의 활약은 인상적이다. 박지성은 정말 멋진 골과 어시스트를 이번 시즌에 보여주지 않았는가!

박지성의 나이는 한참 기량이 절정에 다다를 때다. 노쇠화한 긱스와 아직 어린 나니에 비해 박지성은 가장 믿음직스런 맨유의 측면 미드필더 중 하나다. 그가 60경기 전체를 소화할 수 없더라도, 박지성은 맨유의 일원으로서 분명 의미 있는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부상이 없었던 맨유에서의 첫 시즌, 박지성이 리그 38경기 중 33경기를 뛰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박지성의 입지는 튼튼하다.

#3 박지성이 멀티플레이어라고?

이 대목에서는 정 교수가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많이 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혹은 멀티 플레이어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맨유에서 멀티플레이어라고 말할 수 있는 선수로는 존 오셔 정도가 전부다. 존 오셔는 수비수이지만 중앙 미드필더로서도 좋은 활약을 했고, 좌우 윙백과 중앙수비, 심지어 골키퍼(!) 포지션까지 소화하는 진정한 멀티플레이어다.

정 교수의 말대로 박지성이 멀티플레이어라면, 긱스, 호날두, 나니, 루니 등 맨유의 공격진은 '모두' 멀티플레이어다. 퍼거슨 감독은 측면 미드필더와 공격수의 구분을 거의 두지 않고 자주 자리를 바꾸며 상대 수비를 교란한다. 박지성은 이와 같은 퍼거슨 감독의 전술에 걸맞게 중앙과 측면 모두에서 좋은 움직임을 보여준다.

또한, 박지성의 이타적인 플레이는 팀 전체적으로도 매우 유용하며 본인 스스로 자신의 장점이라 밝히고 있다. 나니와 호날두가 나왔을 때와 박지성이 있을 때를 비교하면, 맨유의 조직적인 플레이가 박지성으로 인해 얼마나 살아나는지 금세 알 수 있다.

#4 박지성의 커리어는 이제 시작이다

나 역시 '박지성이 긱스를 넘어섰다'는 식의 칼럼은 불편하다. 그러나 현재시점에서 박지성이 상승세를 타는 반면, 긱스가 하향세를 타고 있다는 분석은 정확하다. 퍼거슨 감독은 아스날과의 중요한 일전에 긱스 대신 박지성을 투입했고, 이것은 결코 긱스를 쉬게 해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긱스보다 박지성이 '현재' 유용한 옵션이었기 때문이다.

박지성과 긱스를 비교하려고 든다는 점에서 정 교수의 비교 역시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왜 커리어를 마친 차범근, 황혼기에 접어든 긱스의 축구인생 전부를 현재의 박지성과 비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박지성의 나이가 도대체 몇 살인가!

'박지성 논쟁'은 축구이기에 나오는 것

축구는 기록의 경기가 아니다. 물론, 축구에서도 의미 있는 기록과 통계가 있지만 같은 구기종목인 야구에 비하면 축구의 기록은 큰 의미가 없다. (박지성 출전경기 승률 100%, 이런 통계가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보는 사람에 따라 특정 구단, 선수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이 축구다. 정 교수 역시 언급했지만, 아스날전 박지성의 평점은 7점부터 4점까지 극과 극을 달렸다. 어느 쪽이 잘못 매겼다기보다는 그 자체가 축구의 특징이다.

학문적으로 보았을 때, 박지성 현상은 민족주의와 스포츠가 결합한 전형적인 현상 중 하나다. 그러나 축구라는 종목의 특성상 경기력에 대한 평가가 주관적이며, 그 속에는 박지성에 열광하는 자민족우월주의와 박지성을 비난하는 민족적 비관주의가 혼재한다. 같은 민족주의적 스포츠 스타이지만 이승엽, 박태환, 김연아를 두고 이와 같은 의견의 불일치가 있지는 않다. 전적으로 이는 박지성이 축구선수이기 때문이다.

백번 말해도 정 교수의 말은 옳다. '박지성 장사' 좀 그만하자. 출처 불명의 기사 끌어다가 번역기 돌려가며 낚시기사 좀 그만 써야한다. 그러나 박지성까지 함께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민족주의의 문제와는 별개로, 박지성은 자신의 인생을 꿋꿋이 살아가는 한 명의 청년이지 않은가.



박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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