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차분하고, 또 침착하다. 이른 오전 시간의 만남.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나직이 건네는 인사말에 순식간에 주위 분위기가 따뜻하게 밝혀진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에스프레소 한 잔과 물 한 컵 앞에, 꾸미지 않은 수수한 모습으로도 은은함을 풍기는 배우 고수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영화 '루시드 드림'(감독 김준성)으로 스크린에 돌아온 고수와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기까지 비교적 긴 시간이 걸렸던 작품이었다. 2월 22일 개봉한 '루시드 드림'은 대기업 비리 고발 전문 기자 대호(고수 분)가 3년 전 계획적으로 납치된 아들을 찾기 위해 루시드 드림을 이용, 감춰진 기억 속에서 단서를 찾아 범인을 쫓는 기억추적 SF 스릴러.
흥행에서는 아쉬운 성적을 거뒀으나 국내 최초 루시드 드림을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남겼다. 고수 역시 작품을 위해 짧은 시간동안 10kg의 체중을 증감하는 몸을 아끼지 않은 열연과 절절한 부성애를 실감나게 그려내며 시선을 모았다.
고수는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꿈속으로 들어가고 하는 모습들이 비주얼적으로 어떻게 구현이 될까 궁금했어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영화가 없었으니까요. 판타지 같은 그 장면들이 재밌을 것 같았고, 아이를 잃어버린 절박한 대호의 마음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하나로 이어지는 대호의 감정을 쭉 가지고 가는 것이 제게는 관건이고, 또 숙제였어요"라고 '루시드 드림'을 처음 만나고, 또 준비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루시드 드림'에서는 공유몽(여러 사람이 동시에 하나의 꿈을 꾸는 현상)과 디스맨(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인물), RC(Reality Check·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 등 다양한 개념이 등장한다. 나의 꿈, 혹은 다른 사람의 꿈으로 들어간다는 설정들을 다소 낯설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들도 존재할 수 있다.
고수는 "꿈이라는 게 굉장히 스펙터클하잖아요. 우리 영화에서는 또 중요한 부분이, 어떤 화려한 것보다도 아이를 잃어버린 과거의 한 시점으로 돌아가서 단서를 구하고 범인을 잡는 그런 사건 해결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었으니까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현실에 닿은, 어떤 판타지에서 표현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실제로도 두 아이의 아버지인 고수는 "시나리오에도 대호의 감정 표현 수위가 모두 들어있었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입장이다 보니 몰입에도 더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라고 얘기했다. 많은 화제가 됐던 몸무게 증감에 대해서도 "제가 90% 이상 등장하기 때문에 일정상으로 좀 빼기 힘든 것이 있었는데, 감독님이 일주일 정도 시간을 주셔서 그 때 확 감량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라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루시드 드림' 개봉 이전에도 지난 해 영화 '이와손톱'을 촬영을 마쳤고, 4월부터 11월까지 드라마 '옥중화'의 긴 여정을 이어갔다. 지금도 '남한산성' 촬영을 한창 진행하며 하나하나 새로운 필모그래피를 쌓아올리고 있는 중이다.
고수는 "매번 작품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98년 포지션의 뮤직비디오로 데뷔 후 10편이 넘는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꾸준히 달려온 20여 년.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연기를 대하는 마음만큼은 항상 한결같다.
"많은 경험, 많은 작품, 많은 캐릭터를 경험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친 고수는 '현대극에서의 모습도 보고 싶다'는 이야기에 엷은 미소를 띄우며 "요즘에는 본의 아니게 시대극을 많이 했어요. 수염 붙이고, 한복 입고.(웃음)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제게는 다 소중히 남아있는 작품들이에요. 멜로도 당연히 좋아하고요.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는 너무나 위대한 것이기 때문에 정말 그것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라는 마음을 덧붙인다.
"벌써 20년 정도가 됐네요. 제게는 아직도 배우로서의 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라고 지나온 시간을 살펴 본 고수는 "저는 또래 연배의 사람들에게 굉장히 큰 힘을 받거든요. 제가 예전에 '박카스' 광고도 찍고, 시트콤도 했었고 드라마도 하고, 그런 저의 과정들을 다 같이 봐온 것이잖아요. 지금 이렇게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각자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같이 보내고 있다는 자체가 힘이 돼요"라고 웃었다.
관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고수는 "관객들에게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시간이 흐르고, 저 역시 주름이 조금씩 생기고 깊어지겠죠. 제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면서 함께 추억과 현재의 삶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네요"라는 바람을 함께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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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