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4.16 09:47 / 기사수정 2008.04.16 09:47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최근 ‘피겨 여왕’ 김연아를 모델로 한 드라마가 제작된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스포츠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그 종목과 선수들에 대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도 적지 않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큽니다.
특히, 은퇴하지 않고 현역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선수들을 다루고 있다면 논란의 소지는 더욱 커집니다. 그 선수가 걸어온 길을 과장된 감동주의와 상업주의로 물들여 특정 개인이 이룩한 눈물과 땀을 왜곡할 소지가 크기 때문입니다.
할리우드를 비롯한 외국의 사례를 보면 스포츠 선수와 혹은 그 종목에 대한 픽션을 만들고자 할 때, 극도의 신중을 들입니다. 우선적으로 그 주인공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당사자를 비롯한 주변인들의 동의를 합법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스포츠의 선진국인 미국과 같은 경우는 특정 선수에 대한 팬들의 경외심이 높아서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들은 이들의 관심과 영향력에 항상 신경을 씁니다.
그러나 한국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부분이 아직도 미진합니다. 특히, 피겨 스케이팅의 변방국이었던 한국은 김연아란 세계 최고의 선수를 배출해 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피겨 스케이팅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런 대중적인 관심사를 이용해서 보다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드라마를 통해 이룩하려는 의도는 결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그냥 지나치고 넘어가기엔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은퇴한 선수가 아닌 현재 최고의 기량을 펼치고 있는 선수를 다룬다는 것은 조심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선적으로 가장 많이 비판받는 부분은 한 인간의 스포츠를 통한 신념과 좌절을 심도 있게 그리기보다는 이 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스포츠 영웅을 이용한 상업주의의 기승이 가장 문제로 지적받는 부분입니다.
스포츠 선수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은퇴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많습니다. 아무리 놀라운 경기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라 할지라도 단지 영광의 순간뿐이 아닌 그 선수가 걸어온 과정을 진정성 있게 성찰하려면 그만큼 검증해야 할 부분이 많고 전성기가 지난 다음 시점에서 반추해볼 객관적인 시선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1998년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는 두 명의 영웅이 호령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상 최고로 긴박감이 넘치는 홈런레이스를 펼친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였습니다. 이 두 선수는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면서 미국과 도미니카 공화국의 영웅으로 간주 받았지만 동시대에 이들의 활약을 픽션으로 만들려는 의도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지나친 영웅화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자성의 소리도 들렸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다음에 맥과이어는 약물 복용에 대한 청문회에 나가서 묵비권을 행사해 파장을 일으켰고 새미 소사는 부정 방망이 사용 이후 추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98년 당시의 이런 뛰어난 활약을 넌지시 영웅화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만들어졌다면 실로 문제점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선수들을 픽션으로 다루는 것은 그만큼 신중하고 조심스럽습니다. 단지 지금 이 시대에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이니 무조건 관심을 이끌고자 이들을 내세운다면 객관성이 떨어지는 과장된 감동의 드라마나 혹은 그 선수의 진면목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고 오히려 왜곡해서 내보내는 부정적인 영향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으로 볼 때, 아무리 김연아 본인의 일대기를 세세하게 그린 드라마가 아니라 할지라도 10대의 나이에 세계정상을 차지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고 한국의 드라마에서 거의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었던 김연아를 생각한다면 우려되는 부분은 적지 않습니다.
또한, 현재 피겨 스케이팅을 하고 있는 선수들을 생각한다면 일반적인 대중들을 위해 드라마가 필요할지는 몰라도 정작 현장에서 땀 흘리는 선수들에겐 오히려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피겨를 하는 선수들 대부분은 민감한 10대의 나이에 주변의 시선과 보도에 대해 중압감을 쉽게 느낄 수 있는 어린 선수들입니다.
물론 현실과 픽션은 철저히 구분되어야 하며 그런 면에서 피겨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피겨 스케이팅이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결코 피겨 드라마에 대해 달갑게 생각하는 점은 드뭅니다.
피겨 선수들이 겪는 단순한 애환과 경쟁을 통해 안방의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아직 한국 피겨계의 현실은 이런 달콤한 환상을 만들어 내기에는 여러모로 열악한 환경이 많습니다.
한국 피겨 스케이팅에서는 결코 엘리트 코스로 순탄하게 걸어온 선수는 없었으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공했지만 신데렐라처럼 급상승한 선수 역시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김연아는 국민 여동생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단순히 피겨 스케이팅 선수일 뿐인 자신이 예쁜 포장지에 쌓인 인형처럼 과대 포장돼서 세인들의 이목에 오르는 것은 결코 자신이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 스포츠는 이렇게 기량 발전에 대한 마인드는 항상 뒷전에 두고 특정 선수가 관심을 모으면 그것을 이용해 최대한의 이목을 받아 이익을 남기려고 하는 상술 때문에 많은 유망주를 잃고 선수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김연아를 비롯한 많은 피겨유망주를 진심으로 성원한다면 이런 것보다 그들을 순수하게 피겨 선수로서 인정해주고 그들이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하는 운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가장 필요한 부분입니다.
픽션과 스포츠는 별개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앞서 우선시되어야 할 부분은 스포츠 현장에서 뛰고 있는 이들에 대한 왜곡을 피하는 것과 한국 스포츠 엔터테인먼트가 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숙지해야 할 선수들에 대한 존중심과 배려심입니다.
비록 김연아란 선수를 배출했지만 한국은 시니어대회에 참가할 선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열악한 국가입니다. 이 땅에 진정으로 피겨에 대한 붐을 일으키려면 현재로선 상업적인 드라마의 제작보다는 실질적으로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의 완성과 연습하기에 더욱 좋은 피겨 환경의 조성이 무엇보다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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