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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쳐 · 나니가 보여준 '기다림의 미학'…박지성은?

기사입력 2008.02.25 09:26 / 기사수정 2008.02.25 09:26

박형진 기자


[엑스포츠뉴스=박형진 기자] 최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분위기는 상당히 좋습니다. 공들여 유니폼과 축구화까지 따로 마련하며 의미를 부여했던 뮌헨 참사 50주년 기념경기에서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에게 일격을 당하기는 했지만, 곧이은 FA컵 경기에서 '숙적' 아스날을 4-0으로 꺾는 파란을 연출했습니다. 맨유는 이 좋은 분위기를 챔피언스리그 리옹전까지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힘겨운 경기가 예상되었던 뉴캐슬 원정경기에서 5-1 대승을 거두며 1위 아스날과의 승점차를 3점차로 좁히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박지성 선수의 팬이라면 박지성이 빠진 가운데 이렇게 좋은 분위기가 계속되는 것이 씁슬한 뒷맛을 남길 것입니다. 박지성은 아스날과의 FA컵 경기에 90분 풀타임을 소화하며 4-0 승리에 일조했지만, 뒤이은 리옹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전과 뉴캐슬 원정전 모두 후보명단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나니와의 주전 경쟁에서 패배했다', '골을 넣는 길만이 살 길이다' 등의 성급한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박지성이 두 경기에서 후보명단에 들지 못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동안 부진했던 나니와 데런 플레쳐가 비약적인 상승세를 보이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시즌 나니는 시즌 초반 부족한 공격진을 메워주며 선발진에 쉽게 합류했지만, 팀플레이에 녹아들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점점 벤치로 밀려갔습니다. 나니는 맨유가 이번 시즌 치른 39경기 중 14경기에 선발로 출장했고, 8경기를 교체로 출장했습니다. 사실상 2군 멤버로 구성된 코벤트리와의 리그 컵 경기,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통과가 확정된 후의 로마전, 스포르팅 리스본전을 고려하면 주전급 멤버로서 나니가 출전한 경기는 절반이 채 안 됩니다.



맨유의 유스 출신인 데런 플레쳐는 나니보다 더 긴 인내의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박지성이 빠진 측면 미드필더진과는 대조적으로 중앙 미드필더에는 새로 영입된 하그리브스, 안데르손을 비롯한 스콜스, 캐릭 등 쟁쟁한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플레쳐는 비교적 비중이 떨어지는 선더랜드와의 경기, 조별예선 통과 후 치루어진 챔피언스리그 경기 등에만 선발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쳤습니다. 플레쳐는 전체 39경기 중 8경기에만 선발로 출전했고, 11경기에 교체로 출전했습니다. 이는 선발로만 14경기를 출전한 '신예' 안데르손보다도 적은 출전숫자입니다.

나니와 플레쳐는 팬들의 숱한 비판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나니는 호날두급의 드리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팀플레이에 전혀 녹아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나니는 종종 강력한 중거리슛을 성공시키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지만, 막상 쉬운 찬스에서 침착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미숙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긱스의 후계자로서 그를 대체하기에 나니가 올라가야할 길은 험난해만 보였습니다. 박지성의 복귀는 나니의 앞길을 더욱 가로막는 것처럼 보였구요.

플레쳐는 로이 킨 (전) 주장의 '블랙리스트'에 오를 정도로 수준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로이 킨 주장은 MUTV와의 인터뷰에서 '맨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선수들'의 예로 플레쳐를 꼽은 바 있었죠.) 유스 시절 '제 2의 베컴'이라는 평가까지 들었던 플레쳐이지만, 중앙으로 보직을 변경한 후 압박에 약한 모습을 보이며 부실한 맨유 중원의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국내팬들 사이에서는 스타크래프트의 '다크 템플러'라는 유닛처럼 경기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크 템플레쳐'라는 수치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니와 플레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두 선수는 교체로 출전한 경기에서 길게는 25분, 짧게는 10분 정도의 출전 기회를 받는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두 선수는 그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서 뛰었고, 팀의 승리를 끝까지 지키는데 기여했습니다. 퍼거슨 감독 역시 나니, 플레쳐, 존 오셔 등 비주전급 선수들에게 꾸준히 짧으나마 출전 기회를 주며 이들의 충성심에 보답을 했습니다.

결국, 나니와 플레쳐는 아스날과의 FA컵을 계기로 '비상'했습니다. 특히, 나니의 변신은 그야말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수준이었죠. (여담이지만, 영국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프로그램 이름이 바로 슈퍼나니(Supernanny)입니다.) 나니는 아스날전에서 감각적인 패스와 능동적인 팀플레이로 맨유 공격에 엄청난 기여를 했고, 결국 그 자신도 골로 보답을 받았습니다. 이 날 경기에서 두 골을 기록한 플레쳐는 자신이 여전히 강팀 킬러임을 입증했고(플레쳐는 첼시와의 중요한 일전에서 멋진 결승골을 터뜨린 바 있습니다), 골뿐만 아니라 패스를 끊고 전방으로 공을 전달하는 능력에서 다른 경쟁자에 못지 않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보였습니다. 



나니와 플레쳐가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자, 퍼거슨 감독은 주저없이 이 두 선수를 챔피언스리그 리옹전 후보명단에 올렸습니다. 플레쳐는 비록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나니는 부진한 모습을 보인 긱스와 교체되며 테베즈의 극적인 동점골을 어시스트했습니다. 그리고 프리미어리그 뉴캐슬전에서 두 선수는 당당하게 선발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90분 풀타임을 뛰었고, 이들이 뛴 경기에서 맨유는 5-1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맨유를 비롯한 유럽의 정상급 팀들에서 주전경쟁이란 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박지성이 두 경기 연속 결장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지만, 박지성과 한솥밥을 먹는 나니와 플레쳐 같은 선수들이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부단히 애를 쓰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이 날 경기에는 맨유의 '레전드' 라이언 긱스, 20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주고 데려온 오웬 하그리브스 역시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또한 유럽 최고의 유망주 수비수인 헤라르 피케가 선발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채 묵묵히 퍼디난드, 비디치 등과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퍼거슨 감독은 노력하고 가능성이 있는 선수에게 항상 공평하게 기회를 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우리가 아는 '쉬지 않는 심장' 박지성이라면, 그는 조만간 자신의 힘으로 맨유에서 자신의 자리를 당당히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박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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