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박형진] 축구팬들마다 좋아하는 리그가 다릅니다. 수비전술과 치열한 중원싸움의 묘미를 즐긴다면 세리에를 좋아할테고, 화려한 기술과 개인기를 보는 맛에 축구를 본다면 단연 프리메라리가의 팬일 것입니다. 몸과 몸이 부딪히는 빠르고 치열한 축구를 좋아한다면 프리미어리그를 보고 있겠죠. 국내에서 크게 인기를 끌지는 못하지만, 분데스리가나 프랑스의 리그1 역시 훌륭하고 매력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리그입니다. 우리의 K리그도 빼놓을 수 없겠죠. K리그 역시 강한 압박과 빠른 스피드가 매력인 우리의 리그입니다.
그러나 유럽축구를 좋아하는 팬들의 마음이 한 곳에 몰리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꿈의 무대'라 불리우는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있을 때이지요. 조별예선을 다 마친 챔피언스리그는 이번 주를 시작으로 치열한 토너먼트 경기에 들어갑니다. 벌써 오늘 새벽(한국시간)에 16강 경기 중 네 경기가 열렸고, 내일은 국내팬들이 고대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리옹의 경기를 비롯한 네 경기가 열릴 예정입니다.
어제 저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페이지 기사가 설레는 국내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다름 아닌, 리옹 원정 명단에 박지성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FA컵 90분을 소화한 상황이라 박지성의 리옹전 선발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후보 명단도 아닌 '원정 명단'에서 아예 빠진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퍼거슨 감독의 철저한 로테이션 정책이다, 부상을 배려한 휴식이다 등 위안을 삼는 평가도 있었지만, 명단에 포함된 "크리스 이글스, 대니 심슨보다 박지성의 기량이 떨어지는 것이냐!"는 원망 섞인 한탄도 나왔죠.
다행히 박지성의 원정 명단 제외는 맨유 홈페이지 담당자의 실수로 알려졌습니다. 박지성은 리옹에 도착해서 다른 맨유 선수들과 즐겁게 훈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단 원정 명단에 합류하게 팀 동료들과 즐겁게 훈련하고 있다는 소식은 다행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박지성의 선발진 합류는 가능성이 작아 보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PSV 아인트호벤을 4강으로 이끈 박지성을 높이 평가했고, 결국 그를 올드 트래포드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이 챔피언스리그에 적합한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 합니다.
아인트호벤 시절 박지성은 유럽권 대회에 관한 한 붙박이 주전이었습니다. 03/04 시즌에는 8경기 중 7경기에 모습을 드러냈고, 7경기 모두 선발 출장이었습니다.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로 국내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던 04/05 시즌에 아인트호벤은 총 12경기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루었고, 박지성은 그 중 11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90분 대부분을 뛰었습니다. 박지성이 뛰지 못한 경기는 로젠보리전 퇴장으로 1경기 출장정지를 당했던 조별예선 경기 1경기였습니다.
그러나 맨유로 오면 박지성의 상황이 달라집니다. 박지성은 데브레첸과의 챔피언스리그 3차예선에 후반 22분 로이 킨과 교체되며 맨유에서의 데뷔전을 가집니다. 당시로서는 갓 영입한 선수를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선발 출장시킬 수 없기에 당연한 결정이었지요. 그러나 박지성은 맨유가 조별예선에서 탈락할 때까지 5경기에 나왔고, 모두 후반 늦은 시간에 교체로 출장했습니다. 이 5경기에서 박지성이 활약한 시간은 112분에 불과했습니다.
06/07 시즌의 박지성은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있는 시기에 부상을 당하며 더욱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리그에서는 5골을 터뜨리며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정작 챔피언스리그에는 단 한 경기, 릴과의 16강전 2차전에 교체로 8분여를 뛰는데 그쳤습니다.
즉, 박지성은 맨유의 유니폼을 입고 단 한 번도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선발로 출장한 적이 없습니다. 불운이 겹친 탓도 있지만, 퍼거슨 감독은 챔피언스리그에서만큼은 노련한 긱스와 섬세한 기술의 호날두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긱스와 호날두는 아스날과의 FA컵 경기에서 아예 명단에 빠지며 충분한 휴식을 취했고, 리옹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선발로 출전할 것이 확실해보입니다. 국내팬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퍼거슨 감독의 전술이지만, 긱스가 크게 부진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한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박지성의 자리는 커 보이지 않습니다.
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경기 초반 벼락같은 골을 넣으며 밀란의 기세를 꺾었던 박지성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박지성에게 안타까움을 느낄 법도 합니다. 그러나 빽빽한 일정 속에서 강한 체력과 높은 팀 기여도를 자랑하는 박지성의 역할은 맨유의 우승 가도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아니 결승전에서 골을 넣고 포효하는 박지성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꿈 꾸어보는 것은 우리의 자유가 아닐까요? 다른 것도 아니고 '꿈의 무대' 챔피언스리그에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