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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김광삼, 굴곡진 현역 시절을 뒤로하다

기사입력 2016.12.06 16:42 / 기사수정 2016.12.06 16:48

채정연 기자

[엑스포츠뉴스 채정연 인턴기자] 2012년 7월 7일, 서울 잠실에서 두산과 경기를 펼치고 있던 LG는 11회말 1사 1,3루의 기회를 잡았다. 희생플라이 하나면 동점이 될 수 있는 상황, 3루에 있던 주자는 발이 느린 최동수였다. 엔트리에 남아있는 야수는 포수 김태군 뿐이던 그 때, 3루 대주자로 나선 선수는 투수 김광삼이었다.

김기태 당시 LG 감독은 투수진에서 유일하게 1군 무대에서 '야수'로 뛴 경험이 있는 김광삼을 과감하게 대주자로 기용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윤요섭의 외야플라이 때 김광삼은 거침없는 슬라이딩으로 홈을 밟았다. 투수지만 대주자로서의 롤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경기를 원점으로 만들었다.

고교 시절 투타 만능 유망주로, 프로에 입단한 후에는 투수로, 또 부상으로 야수 전향을 시도했지만 곧 투수로 돌아왔다. LG 트윈스 김광삼의 프로 생활은 굴곡이 많았다. 잦은 부상이 발목을 잡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꾸준히 노력했다. 재활의 시간을 견디고 돌아와 또 마운드에서 공을 뿌리곤 했던 김광삼이 은퇴를 선언하고 재활군 코치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한다.

1980년생으로 신일고 황금기를 이끈 3인방 중 한 명이었던 김광삼은 고교 시절부터 투수와 타자 양쪽으로 재능을 보였다. 봉중근, 안치용 등과 함께 고교 3관왕을 휩쓸며 기대를 모았던 그는 99년 고졸우선지명으로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게 됐다.

1군 무대에 투수로서 마운드에 서게 된 김광삼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4년간 꾸준히 마운드를 지켰다. 평균자책점은 4점대였지만, 기복없는 플레이는 안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2007년 단 4경기에 출장하며 평균자책점 12.27로 부진했다. 부상까지 겹치며 외야수 전향을 선언했고, 이듬해인 2008년과 2009년은 외야수로 나섰다.

야수로 뛰었던 두 시즌 통산 17경기에 나서 타율 2할9푼4리 5안타 1타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사실상 외야수 도전은 실패했고, 김광삼은 절치부심 끝에 다시 투수로 돌아왔다. 다행히 야수로 경기에 나서며 통증 부위가 호전됐고, 투수로 복귀한 첫 해인 2010년 완봉승을 기록하는 등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그러나 부활의 신호탄도 잠시. 2013년 오른쪽 팔꿈치 인대접합수술과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으며 또다시 마운드를 떠나게 됐다. 2014년 복귀를 타진했으나 수술 부위의 뼛조각이 떨어져나오며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2015년 7월 31일, 1056일만에 1군 콜업되며 선발 투수로 나선 김광삼은 4이닝 2실점을 기록했다. 정규 시즌이 끝날 때까지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4경기 1패 평균자책점 5.74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데뷔 17년차가 된 올해 김광삼은 재기를 꿈꾸며 퓨처스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4월 한달간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할만큼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고, 이후 2군에서 꾸준히 출장했다. 하지만, 불행은 또 찾아왔다. 8월 28일 머리에 타구를 직격당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올해 김광삼은 퓨처스에서 14경기 등판해 6승 5패 평균자책점 3.39로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가 투수로서 남긴 통산 기록은 182경기 41승 50패 764이닝 평균자책점 5.21이다.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며 은퇴 수순을 밟은 김광삼은 이제 LG 트윈스의 재활군 코치로 야구인생 2막을 연다. 많은 부상과 재활을 경험했고, 마운드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광삼이기에 선수들에게 격려와 희망을 불어넣어줄 재활군 코치직은 그에게 적격으로 보인다. 앞으로 선수 아닌 코치로서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게 된 '코치' 김광삼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lobelia12@xportsnews.com / 사진=엑스포츠뉴스 DB

채정연 기자 lobelia12@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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