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최진실 기자] 세상은 뭐든지 빨리 하길 원한다. 꿈이 없는 것은 절망적인 일이며 긍정의 힘과 열정을 소리 높여 외친다. 하지만 영화 '걷기왕'(감독 백승화)은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고 맞서주고 있다.
지난 19일 전야 개봉한 '걷기왕'은 선천적 멀미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고생 만복(심은경 분)의 이야기를 담았다. 만복은 무슨 이유인지 차만 타면 멀미를 하게 된다. 결국 차를 못 타는 만복은 2시간 거리의 학교를 매일 걸어 다닌다. 학교에 오면 잠만 자고 공부엔 영 흥미가 없는 만복이지만 행복하다.
그런 만복에게 담임 선생님(김새벽)은 꿈을 찾아주려 노력한다. 담임 선생님은 매일 엄청난 거리를 힘들지 않게 걸어다니는 만복을 육상부에 추천했고 만복은 육상부 코치(허정도)의 안내에 따라 경보에 도전하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경보였지만 선배 수지(박주희)의 모습은 만복에게 귀감이 됐고 만복에게도 도전하고 싶은, 그 무언가가 생긴다.
'걷기왕'은 꿈과 열정, 그리고 알차게 살아야 한다는 요즘의 세태에 무언가 한 대 맞은 것 같은 일침을 가한다. 영화에서 나쁜 이는 없다. 영화 속 가장 악역과 비슷한 이를 굳이 꼽는다면 만복을 비롯한 아이들에게 꿈과 열정을 상기시키는 담임 선생님일 뿐이다.
만복과 수지, 그리고 만복의 단짝이자 공무원 시험을 위해 몰두하는 지현(윤지원), 만복의 첫사랑인 힙합을 사랑하는 배달소년 효길(이재진)까지 학생들은 억지로 꿈을 꾸며 빨리 그를 쫓기 보다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색으로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 방법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지만 어쨌든 이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조금씩 꾸준히 다가간다.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걷기왕'의 톤은 누구보다 밝다. 억지는 아니지만 인물들의 대사와 설정은 자연스러운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일상 연기의 대가인 심은경의 모습은 진짜 실감나는 멀미를 그려낼 정도였다.
이미 '수상한 그녀', '써니', '널 기다리며' 등으로 또래 중 독보적인 위치를 가진 심은경이기에 '걷기왕'에서도 만복 그 자체였다. 심은경의 모습 그대로기 때문에 새로운 면모는 없지만 어쩌면 심은경의 만복이가 더 진솔하게 다가올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만복이의 단짝, 소순이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안재홍의 존재감도 돋보인다. 목소리로만 출연하지만 안재홍의 묵직하면서도 웃음을 터뜨리는 존재감은 '걷기왕'의 재미를 더했다.
'걷기왕'의 엔딩 과정에 대해서는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봐왔던 영화나 드라마에서의 엔딩과는 조금 다르다. 그럼에도 그것이 어쩌면 '걷기왕'이 이야기 하는 메시지를 담았을 수도 있다.
만복이 또래의 10대 청소년 뿐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지금 이 길이 맞는지, 나의 속도는 너무 느린 것은 아닌지. 그런 이들에게 '걷기왕'은 만복이의 모습을 통해 단지 바쁘게 사는 것만이 좋은 것 혹은 옳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 또한 그런 생각에 대해 어렵거나 복잡하게 접근하기 보다는 가볍고 밝게 접근한 느낌이다. 93분. 12세 관람가.
true@xportsnews.com / 사진 = CGV 아트하우스
최진실기자 tu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