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9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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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영화 속 첩보작전, 실제는 어땠나

기사입력 2016.07.27 08:19 / 기사수정 2016.07.27 08:19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배우 이정재, 이범수 등 화려한 캐스팅과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의 첫 한국 영화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인천상륙작전'(감독 이재한)이 오늘(26일) 베일을 벗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첩보 작전이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950년 당시 실제 작전에 대한 관객들의 궁금증 또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 개봉 후 다시금 재해석되고 있는 'X-RAY(엑스레이)' 작전을 살펴봤다.

극중 엑스레이 작전을 주도했던 인물은 대위 장학수로 분한 이정재가 이끄는 8명의 해군 첩보부대다. 이들은 대장 서진철로 분한 정준호가 이끄는 16명의 켈로(KLO) 부대원들과 협업해 7만 5천명의 연합군과 261척의 함정이 인천에 안전하게 상륙할 수 있도록 작전을 펼친다.

실제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지난 1950년 8월 당시 22살이었던 함명수 소령과 17명의 청년들은 엑스레이 작전에 투입된다. 이들은 인천 앞바다의 영흥도를 거점으로 인천에 잠입한 뒤 북한군 해안포대 위치와 수, 병력 배치 등 고급 정보를 수집해 맥아더 사령부에 보고했고, 맥아더 장군은 이를 토대로 상륙작전을 실시했다.

당시 맥아더 장군이 '한국 해군을 다시 보게 됐다'고 말할 정도로 함명수 소령이 이끈 첩보전 엑스레이 작전은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토대가 됐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인 9월 14일, 첩보대원들은 철수 명령을 받았지만 북한군 1개 대대가 영흥도를 기습하면서 전투가 벌어졌다. 이때 해군 첩보대원이었던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는 적을 유인해 다른 부대원들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 탈출하지 못하고 적에게 포위될 위기에 처하자 총으로 자결했다. 포로가 될 경우 인천상륙작전이 탄로날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자결을 선택한 것.

정부는 1954년 이들에게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으며, 미국은 1953년 7월 은성 훈장을 수여했다. 해군은 두 사람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도탄 고속함 10번함을 임병래함으로 11번함은 홍시욱함으로 제정했다.

연출은 맡은 이재한 감독은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의 흐름을 바꾼 세계사적인 사건으로,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건 숨겨진 영웅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그들을 영화로 그린다는 것 자체가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뜻 깊은 도전이었다"고 전했다.

'인천상륙작전'은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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