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가 1일 개봉 후 328만 관객을 넘어서며 인기몰이 중이다.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유려한 대사의 맛이 '아가씨'를 관람한 이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하정우), 그리고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 받은 하녀 숙희(김태리)와 아가씨의 후견인 코우즈키(조진웅) 등 4명의 주인공이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를 속이고 속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배경이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시대인 만큼, 극 중 주인공들의 대사는 한국어와 일본어가 섞여있다.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대사가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히데코가 낭독회에서 쓰는 일본어, 백작이 귀족 행세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본어처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한국어와 일본어 대사의 묘미를 살펴보는 것도 작품을 보는 또 다른 재미가 된다.
박찬욱 감독은 각본을 쓸 때 한국어와 일본어 대사를 함께 사용하는 것에 있어 "특별한 원칙은 없었다"고 얘기했다. 다만, 각 캐릭터들이 대사를 표현하는 부분에서 언어를 달리 하게 된 상황과 이유는 존재한다.
박찬욱 감독은 "일단 히데코는 일본어가 모국어이긴 하지만, '책을 읽는 언어'라고 분류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쓰는 언어니까 말할 때까지 쓰고 싶지는 않다'는 게 히데코의 생각이다. (이렇게 보면) 히데코에게는 어떤 원칙이라는 것이 있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조진웅이 연기한 코우즈키는 그 반대의 경우였다. 박찬욱 감독은 "코우즈키는 조선 사람인데도 일어만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히데코의 편지를 받고 나서 자신의 서재가 다 파괴되고, 콜렉션이 훼손됐다는 것을 안 다음에는 이 사람의 상태도 그냥 '붕괴'가 된다. 그 곳의 책과 그림은 자신의 모든 것인데, 그게 망가지니 이 사람은 인생이 끝난, 폐인이 된 거다. 그래서 그 때부터는 점잖거나 멋있게 얘기하고, 연미복을 차려입을 필요도 못 느끼고 헤어스타일이나 수염도 아무렇게나 하면서 스스로를 그냥 놓아버린다. 그 다음부터는 그렇게 우아한 일본어를 애써 할 필요가 없으니 '될 대로 되라' 자포자기가 된 것이다. 그래서 조선말을 쓴다. 어차피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일본인인 척, 고상한 척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거기에선 코우즈키도 해방감을 느끼지 않았겠나"라는 설명을 내놓는다.
백작에게 일본어는 위장 신분의 언어였다. 박찬욱 감독은 "백작은 일본 귀족 행세를 하느라고 일본어를 쓴다. 그렇기에 백작의 일본어는 다 거짓말인 것이 된다. 반대로 진심을 말해야 할 때는 조선말을 쓰게 되는 거다"라고 전했다.
코우즈키의 대사와 관련해서는 조진웅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 장면도 있었다. 극 말미에 등장하는 고문신을 언급한 박찬욱 감독은 "코우즈키가 더 이상 일본어를 쓰지 않아도 될 상황인데도 지하실 고문신에서는 가끔씩 일본어가 나온다. 백작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줄 듯 말 듯 하다가 중단할 때 '뭐야, 왜 얘기하다 말아' 이런 느낌의 접속사나, 다급할 때 말하는 일본어가 나온다. 왜 배운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 있지 않나. 유학한 사람들 중에, 남이 해주는 재밌는 얘기를 듣고 있다가 중단됐을 때 'What?'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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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