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바라왔고 꿈 꿔왔던 것이지만, 그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 것이 기쁘기도, 또 무겁게 다가오기도 한다.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를 통해 처음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배우 김태리의 등장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아가씨'가 남긴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활약이었다. '아가씨' 역시 개봉 전부터 뜨거웠던 화제와 인기가 이어지며 6월 1일 개봉 이후 427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 "모든 게 신기했던 '아가씨'의 의미, 다음 작품 때 더 깨닫겠죠"
'아가씨'가 개봉 전부터 칸국제영화제를 통해 전 세계의 주목을 먼저 받았지만, 국내 개봉 후 느껴지는 반응은 또 사뭇 달랐다.
'아가씨' 개봉 후 만난 김태리는 "주변 친구들에게도 연락이 많이 오는데, 쑥스럽네요"라며 연신 해사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영화 속에서 김태리가 연기한 숙희는 도둑의 딸로 태어나 장물아비에게 길러진 고아 소녀다. 아가씨(김민희 분)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백작(하정우)의 계획에 가담하지만, 자신을 아껴주는 아가씨를 향한 진심과 백작과의 거래 사이를 줄타기하듯 오가며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나간다.
'아가씨'와 함께 했던 시간을 되돌아 본 김태리는 여전히 아쉬운 것이 많다며 부족했던 점들을 곱씹었다.
"'아가씨'가 대사가 많은 작품인데, 내레이션 후시녹음을 많이 했어요. 1부 숙희의 이야기에서는 내레이션이 더 많은데, 그건 저의 표현력 부족 때문에 생긴 게 아닌가 해요. '가짜한테 마음을 뺏기다니, 가엾고도 가엾구나'라는 대사가 있는데, '가짜'가 장음이 있거든요. 감독님이 장단음을 굉장히 정확하게 따지시는데, 제가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하기가 좀 힘들더라고요.(웃음) 그만큼 감독님께서 대사에 공을 많이 들이셨고, 또 1930년대 이야기인 만큼 옛날 언어들이잖아요. 자꾸 요즘 억양이 나와서, 그런 부분을 계속 체크했죠."
유려한 대사의 흐름과 아름다운 영상미가 특히 돋보였던 '아가씨'에서 동화 속 주인공처럼 매력을 발산하는 숙희의 모습은 특히 더 돋보인다.
김태리는 "대사들 속에서도 말장난 같은 것들이 유기적으로 군데군데 섞여있는데, 이런 식의 독창적인 말들을 처음 봐서 정말 좋았었어요"라고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숙희가 되기 위해 외적으로도 노력을 거듭했다. 생전 처음으로 태닝을 했고, 살을 찌우기 위해 근력 운동에 공을 들였다.
김태리는 '아가씨'를 '한 편의 성인 동화'라고 정의했다.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원래 시나리오에는 '책장이 펼쳐진다. 책장이 덮인다' 이 말이 있었거든요. 그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색감 같은 부분이 책이 펼쳐져서 누군가가 읽고 보여주는 동화 같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성인 동화라고 한 이유요? 청불이니까요.(웃음) 재밌게 보고 들으실 수 있는, 명확하고 쉬운 얘기라고 생각해요."
"감독님의 영화가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 '아가씨'는 좀 편하게 봐도 되지 않으실까 싶어요"라며 '아가씨'가 대중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덧붙인 김태리는 자신에겐 절대 잊지 못 할 작품으로 남을 '아가씨'의 의미에 대해 "첫 작품이라는 것이 가장 크겠죠. 앞으로 다음 작품들을 해 나가면서, '아가씨'가 제게 준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지 않을까 해요"라고 당차게 자신의 소신을 전했다.
▲ "다양한 경험 통해 성장하고 싶어요"
1990년 생으로, 올해 스물일곱 살인 김태리는 연극 무대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2012년 대학교(경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기까지 연극을 통해 연기와 친숙해지는 시간을 가져왔다. 2014년 CF를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비췄지만, 영화배우로의 삶은 구체적으로 그려보지 않았던 그였다. 그 이후 15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아가씨'에 캐스팅 된 것은 김태리의 삶에 큰 전환점이자, 새로운 시작이 된 순간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지금 같은 삶을 상상을 했었나'는 물음에 김태리는 '아가씨'로 칸국제영화제에 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상상 못 했었죠"라고 다시 한 번 웃음을 보인다.
"제가 비행기를 많이 타봤던 것은 아니지만, 여행 다닐 때 출입국신고서에 직업을 적을 때 항상 '학생'이라고 썼었거든요. 칸에 갈 때는 '액트리스(Actresses)'라고 적었는데, 그 땐 기분이 좀 새롭더라고요.(웃음)"
지금의 삶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김태리 역시 지나온 하루하루들을 틈틈이 기억하고 기록해두는 것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주어지는 삶에 충실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기억 보존 차원에서 노트에 종종 일기를 쓴다"고 말한 김태리는 "제가 겪은 것들이 진짜 기억이 잘 안나요. 초등학생 때처럼 어렸을 때 기억은 정말 폭파됐다시피 없고, 사소한 일이지만 친구와 어떤 음식점을 가면 친구가 '여기 왔던 데야'라고 말하는데 생각이 안 나죠. 책이나 영화 같은 것도 저는 두 번을 봐도 처음 보는 것처럼 볼 수 있어서, 두 번씩 보는 것도 좋아해요.(웃음) 기억력이 좀 위험하다 싶을 정도라서, 일기를 열심히 쓰는 편이죠"라고 얘기했다. 김태리의 소소한 일상의 한 부분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김태리는 화려하게 주목받으며 시작한 자신의 배우 인생의 첫 걸음을 돌아보며 "지금 제 상태에서 (대중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 않나 싶어요. 무언가를 거칠 때마다 그래도 하나씩은 배워나가는 게 있겠죠. 그렇게 계속 성장해나가다 보면 발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라고 또렷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대중이 자신에게 바라는 모습, 또 앞으로 하고 싶은 것 모두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그다. 하얀 도화지에 조금씩 덧칠해져 갈, 김태리라는 배우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 발현될 앞으로의 시간에 더욱 기대가 더해지는 이유다.
"'대중이 저를 어떻게 바라봐주셨으면 좋겠다'하는 점은 전혀 없어요. 앞으로 제가 어떻게 걸어 나가느냐에 따라서 변화할 테니까요. 좋은 길들만 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앞으로도 초조해하지 말고 욕심 부리지 말고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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