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조곤조곤 말하는 부드러운 목소리 속에 또렷하고 명확한 생각이 담겨 있다. 배우 김민희가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를 통해 스크린 속에서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1일 개봉한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속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하정우), 그리고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 받은 하녀(김태리)와 아가씨의 후견인(조진웅)까지 4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들이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를 속고 속이는 모습이 흥미롭게 전개되며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극 중 김민희는 부모, 친구도 없이 거대한 자택에서 외롭게 자란 아가씨 히데코 역을 맡았다. 세상 물정에 무지하고 순진해 보이는 귀족 아가씨가 보여주는 감정의 변화는 김민희의 연기를 통해 섬세하게 가공됐다.
'아가씨' 개봉을 앞두고 만난 김민희는 이번 영화에 참여한다는 것이 부담감으로 와 닿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금방 출연을 결정했을 만큼 강하게 이끌렸다.
"부담이 될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요. 새롭게 저의 어떤 모습이 그려질 것이라는 기대 외에 다른 생각은 사실 많이 하진 않았죠. 물론 고민이라는 건 하지만, 시나리오를 보고 금방 결정했어요. 마음으로 느꼈을 때 '하고 싶다'고 바로 결정이 나는 것 같아요. 그 외에 고민됐던 부분들이 있긴 한데, 다른 작품들을 정할 때도 어떤 작품이 저한테 어떤 이점을 주고, 이런 것들을 깊이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제가 재밌게 읽고 '하고 싶다'라고 느껴지는 것을 선택했거든요.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는 것에 대해서 제가 호기심이 많고, 그 자체로도 즐겁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히데코라는 인물이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마음껏 입힐 수 있는, 보편적이지 않은 캐릭터라는 점이 김민희의 마음을 움직였다.
영화가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5월 한 달을 '아가씨'와 함께 숨 가쁘게 보냈던 김민희는 "완성본은 칸에서 처음 봤어요. 감독님의 전작에 비해서는 조금 고와진 것 느낌인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총 3부로 구성된 '아가씨'는 하녀의 시점으로 보이는 1부, 아가씨의 눈으로 그려지는 2부에 이야기들이 한데 모이는 3부가 각각 자리하고 있다.
김민희는 영화의 구성을 떠올리며 "어떤 캐릭터라고 딱 그 모습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다양한 모습이 있고, 어떻게 표출되느냐에 따라 다르죠.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고 한순간에도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해서, 어떤 게 진짜고 가짜인 것에 대해 구분을 두지는 않았어요. 관객들이 정말 나쁘다고만 느끼지는 않았으면 하는, 또 애정을 주고 싶고 관객도 사랑해주고 이해받길 원하는, 모든 것이 연기이긴 하지만 진실성을 주고 싶었죠"라며 캐릭터에 다가갔던 과정을 설명했다.
'아가씨'에는 화제가 되는 여러 요소들이 있었다. 특히 김태리와의 동성 베드신은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부분. 동성애에 대해서도 심각하기보다는 편하게 받아들였었다는 김민희는 "다양하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랑은 사랑으로 인정해야 되는 것 같아요"라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극 중 베드신 역시 김민희는 이것 부담보다 당연히 가져야 하는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노출이 있다는 부분도 알고 영화를 선택한 것이니 거기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싶어요. 영화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이기 때문에 들어갔겠죠. 감독님과 얘기하면서 설득의 과정을 거쳤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가지고 싶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죠. 조금 힘든 부분은 있었지만, 그건 제가 어차피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해요. 처음부터 거부감이 있었다면 결정을 안 했겠죠? 베드신의 경우에도 (김)태리 씨가 정확히 신을 잘 파악하고, 야무지게 잘하더라고요. 제가 끌어나갔다기보다는 감독님이 원하는 그림과 완벽한 콘티가 있었기 때문에 짜인 합에 따라서 함께 했어요. 감정이나 행동을 창조한 건 없어요."
숙희가 히데코의 발을 주물러주는 장면처럼 영화를 보면서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았다는 김민희는 "그런 장면들이 더 많았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라며 미소 지었다.
그렇게 '아가씨'는 김민희의 필모그래피에 첫 시대극으로 남게 됐다. 김민희는 "저의 또 다른 모습이 그려졌고, 그 안에서 제가 즐길 수 있는 부분들을 즐기고 해내야 되는 부분을 할 수 있는 만큼 했던 것 같아요"라며 하나의 도전을 마무리한 느낌을 전했다.
'아가씨' 이전에도 지난 해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우는 남자'(2014), '연애의 온도'(2013), '화차'(2012) 등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 온 김민희는 칸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홍상수 감독의 신작 촬영까지 함께 하며 쉴 틈 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어느덧 데뷔 17년차가 된 현재, 스스로도 '즐기면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재밌기는 해요.(웃음) 즐기면서 하고 있는 것 같고요. 그런 부분에선 감사하죠. 한 번도 빠짐없이, 제가 딱 '연기자의 길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작업했을 때는 결과도 다르고 성취감도 달라요. '굿바이 솔로'를 만났을 때도 그렇고, '뜨거운 것이 좋아'(2008)를 할 때도 마음이 그렇게 잡혔어요. 정말 즐거웠죠. 비록 흥행이 안 돼 많이 못 보셨겠지만 의미가 있고 소중하거든요. 그때부터 저는 똑같은 것 같아요. 이야기에 끌리는 것을 선택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고 즐기는 것이요."
김민희는 연기를 하면서 '정해놓고 가는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자연스럽게 작품을 다르게 만나니까 그 안에서 다른 색깔을 가졌고, 캐릭터도 달랐던 것 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여러 가지를 표현할 수 있다면 하고 싶죠. 만약 감독님이 정확히 원하는 감정 상태가 있으면 그걸 충족시켜드리고 싶고, 열려 있으면 열린 대로 정확하면 정확한대로 저는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웃음)"
"오래 쉬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 김민희는 "제가 생각해서 되는 일은 아니고 운도 따라야겠죠. 다음 행보가 쉬워질까 어려워질까 그런 것도 없어요. 똑같아요"라며 이내 다시 싱긋 웃어보였다. 어디로 갈 지 모르는, 그래서 더 기대되는 김민희가 만들어 갈 발걸음에 자꾸 눈길이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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