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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P 인터뷰] 이준익 감독, '동주'에 남기고 싶었던 윤동주 시의 가치

기사입력 2016.04.17 06:40 / 기사수정 2016.04.16 21:50


[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영화 '동주'가 작지만 강한 울림으로 대중과 교감했다. 2월 17일 개봉한 '동주'는 116만 명이 넘는 관객을 극장에 불러 모으며 장기 흥행을 이뤘다. 5억 원의 초저예산으로 만들어 낸 값진 성과였다.

그 중심에는 이준익 감독이 있다. 이 감독은 영화로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던 시인 윤동주를 스크린에 그려냈다. 흑백으로 만들어진 '동주'는 영화에 등장하는 윤동주의 시와 함께 더욱 깊은 여운을 선사한다.

이 감독은 21세기에도 살아있는 윤동주의 시 그 자체를 '스펙터클'이라고 설명했다.

"보통 스펙터클하다는 것은 자극적인 영상, 화려한 액션, 못 보던 풍경을 말한다. 하지만 '동주'는 그렇지 않다. 윤동주의 시 자체가 스펙터클하지 않나. 인간의 욕망과 시대에 대한 아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조 같은 감정들을 담아놓은 것이 시라는 결정체다. '동주'에서는 그 시를 쓰게 되는 시인의 상태, 그리고 시인이 처해 있는 상황을 줄거리로 두고 전환점마다 시가 나오게 만들었다. 시인을 영화로 만들면서 그 시가 갖고 있는 감정이나 의미가 내포되지 않는다면 시인을 그리는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영상과 다양한 시각효과들이 스크린을 수놓으며 관객들을 끌어 모으는 요즘이다. 이 감독은 "현대사회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 나오는 흥미와 재미는 그야말로 '매드맥스'같은 영화를 볼 때 나오지 않나? 그런 시대에 흑백으로 영화를 찍은 나는 정확히 말하면 시대착오적인 인간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대착오라고 해도 좋았다"며 소신을 드러냈다.

그렇게 이 감독은 관객들에게 윤동주의 시가 가진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윤동주의 삶, 또 윤동주가 살았던 시대로 돌아갔다. 이 감독 역시 평소 윤동주의 시를 좋아해왔다. 실제 이 감독은 4년 전 교토 도시샤 대학에 들러 윤동주 시비를 본 경험이 있다. 분명 일본인에 의해 죽음을 맞은 윤동주인데, 그를 추모하는 기념석이 일본에 있다는 사실은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동주’에서 윤동주는 배우 강하늘이, 동주의 사촌이자 그와 평생을 함께 한 벗 독립운동가 송몽규는 박정민이 연기했다. 이 감독이 '최고의 캐스팅'이라고 손꼽을 만큼 배우들 역시 인물에 완벽히 스며들었다. 그렇게 이름과 언어,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1945년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빛나던 청춘을 담은 '동주'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 감독은 "인류의 역사에서 밤하늘의 별보다 훨씬 더 많은, 셀 수 없는 시들이 있지 않았겠나.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에서 윤동주의 시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살아남은 시의 가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또 그런 고민이 이 영화 속에 흔적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윤동주의 시에 다가갔던 순간을 떠올렸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나 '서시', '자화상', '참회록'을 알고 있지만 어린 시절 수능 시험을 보기 위해 잠시 새겼을 뿐이지, 그 시인의 삶과 죽음까지 들어가지는 못했을 것이다"라고 시를 마주하는 현 세대들의 접근 방식에 안타까움을 표한 이 감독은 "시는 온전히 그 시 자체로 설명되는 것이 아닌 그 시를 쓴 시인, 시인의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것이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또 이 감독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한 번쯤은 모두 접했을 윤동주의 시와 흑백 졸업사진을 언급하며 흑백 화면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상기했다. 윤동주의 교복 입은 모습을 보고 동질감을 느끼는 과거의 세대와, 그렇지 않은 지금의 세대들. 이 감독은 '동주'가 그 세대 차이를 좁힐 수 있는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윤동주의 졸업 사진을 봤겠지만, 이해하고 소화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살아가면서 지나가던 것들 중의 하나로 치부된 듯 한 느낌이 있다. 그런데 어떤 젊은 시인의 시가 70년이 지난 아직까지 한 소절만 들어도 '윤동주의 시다'라고 각인이 된 것은 무슨 신호가 있는 게 아닐까? '동주'는 그 신호를 안테나로 받아서 그 시대로 가보는 거다. 그게 바로 '동주'의 매력이기도 하고 말이다."

'동주' 시사회 후 열린 간담회 당시 박정민은 "일제시대에 살았던 그 분들의 마음과 한의 크기를 몰라 죄송한 마음뿐이다"라며 눈물을 흘려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감독은 "윤동주의 시를 좋아한다는 사람은 많지만 그의 삶과 죽음까지 같이 사랑하지 않고 그의 시만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가. 삶과 죽음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것은 죄스러운 것이다. 박정민 배우가 눈물을 흘렸던 이유 역시 그것 때문이다"라면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 감독은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조선에서 '서시'를 남기고 일본으로 떠난 윤동주는 1942년 4월 도쿄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해 얼마 지나지 않은 6월 '쉽게 쓰여진 시'를 썼다. 이 감독은 "윤동주는 조선어 금지 정책이 시행되던 와중에도 한글로 시를 썼다. 그 때 윤동주가 쓴 것이 '쉽게 쓰여진 시'다. 그 때 마음이 얼마나 두려웠을 지 생각해봤나"라며 '시가 쉽게 쓰여진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 그대로를 '엄청난 스펙터클'이라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동주'가 누군가에게는 큰 선물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보는 이들이 영화를 통해 잠깐의 행복을 만들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는 바람을 함께 전했다.

"'동주'를 본 사람들이 윤동주의 시를 보고 자기 자신을 대상화시켜서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잠깐의 행복을 얻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면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드문데, 내가 나한테 소홀히 했던 게 무엇인지 그 때의 윤동주와 지금 현재의 나를 같이 생각해보며 자신의 위치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란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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