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박상진 기자] 추운 겨울날 밤이었다. 방송 스튜디오가 있을 거 같지 않은 마장동 근처에서 방송 스튜디오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봤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방송은커녕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드문 길만 이어졌다.
겨우 물어물어 도착한 곳은 대로변의 한 건물이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방송 스튜디오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몇 번이고 확인하고서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깥 풍경과는 전혀 다른 장소가 나타났다. 바로 GSL TV가 방송되는 '온풍 스튜디오'.
스타크래프트를 예전부터 봐왔던 사람이라면 온풍기가 어떤 존재인지 다 알 것이다. 이제동과 이영호의, 그야말로 역대급 결승을 정전으로 날려버린 주역. 심지어 본좌라고 불리는 그는 GSL TV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박상현 캐스터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그야말로 '박상현 그 자체'라고 불리는 것이 온풍기다. 박상현 캐스터는 제2의 정전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 위해 온풍 스튜디오의 전기 시설은 최고급 기기를 엄선했다고 소개했다.
온풍 스튜디오에는 박상현 캐스터와 함께 공허의 유산과 결혼했다고 자처하는 황영재 해설이 있었다. 스스로 술과 담배를 멀리한다고 이야기 한 황영재 해설은 한국 스타크래프트2 역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한국 스타크래프트2 초창기 유명 선수라면 황영재 해설의 '기사도 연승전'을 거치지 않은 선수가 드물 정도.
GSL TV의 마지막 주인공은 박진영 해설. 가장 마지막으로 스타크래프트2 해설로 입문한 중계진이다. 그는 선수 시절 프로토스가 저그에 밀려 암울할 때 혜성처럼 나타나 프로토스를 구원하며 '구원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신은 공평했다. 그에게 키와 절정의 저그전 실력을 준 대신 절망스런 테란전 실력을 준 것. 하지만 박진영 해설은 선수 은퇴 이후 작년 GSL 해설로 처음 합류해 계속 해설 실력을 늘려가고 있다.
이들은 아프리카 TV에서 진행하는 스타크래프트2 정규 리그인 GSL 해설진이다. 하지만 주말 밤에는 어김없이 프릭업 스튜디오가 아닌 온풍 스튜디오에서 스타크래프트2 연승전을 진행하고 있다. 혈기 왕성한 세 명의 중계진이 주말 밤마다 스타크래프트2 연승전을 진행하고 있다. 과연 이들이 개인 시간을 들여 방송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9일 연승전이 끝난 새벽 2시, 방송이 끝난 후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GSL TV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박상현: 2015년 GSL 시즌이 끝나고 리그 공백기가 길었다. 그리고 곰exp에서 아프리카 TV로 GSL 제작 및 송출 플랫폼이 바뀌면서 (황)영재, 그리고 (박)진영이와 무엇을 해볼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2016년 리그가 두 번으로 줄어들고, 아마추어 리그도 적다는 점에 착안해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연승전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마침 연승전 노하우가 있는 영재도 있었고, 선수들과 친분이 두터운 진영이도 있어서 바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프리카 TV e스포츠 팀 채정원 팀장도 기본적으로 방송할 수 있는 부분을 지원해주고 조언도 많이 해줬다.
스타크래프트2 자유의 날개 시절만 해도 연승전이 활발했는데, 군단의 심장에서는 연승전이 거의 없었다.
황영재: 군단의 심장 시절에는 욕심이 많았지만, 방송 일정 때문에 연승전을 진행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리그도 한 번 줄었고, 빠진 만큼 리그 콘텐츠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연승전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아마추어 육성이나 프로게이머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대회도 필요했다. 그래서 다시 연승전을 시작했고, 오랜만에 다시 진행하니 재미있고 즐겁다.
박진영: 형들이 연승전을 진행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했을 때 무조건 하겠다고 답했다. GSL TV를 선보이기 전까지 두 형이 투자한 게 많았고, 나에게는 열심히만 해달라고 하셔서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게 중요한 건 해설 경험이라 생각한다.
방송 시간대가 토요일과 일요일 밤이다. 주말 저녁에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박상현: 주말 저녁이긴 하지만 일을 하는 거니까 집에서도 큰 반대는 없었다. 그리고 가족들이 잘 때 나와서 일어나기 전에 들어간다. 매일 이렇다면 힘들겠지만, 주말에만 하는 거라 괜찮다.
황영재: 혼자 연승전을 진행했던 시절에는 내가 마음대로 방송 시간을 정해야 했지만, 지금은 시간이 고정됐다는 점 말고는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방송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게 조금 부담이긴 하지만,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라 시간을 투자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박진영: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선수 생활에서 은퇴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던 와중 주말에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있었는데, GSL TV를 시작하기 전 개인 방송이나 해외 대회 중계를 위해 사람 만나는 걸 줄여도 괜찮더라.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즐겁게 방송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GSL TV의 화질이나 음질에 대해 많이 칭찬하고 있다. 대부분 박상현 캐스터가 직접 세팅했나?
박상현: 원래 방송 장비나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황영재 해설이 방송에서 화질과 음질의 중요성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래서 어떤 장비를 구매해서 어떻게 조합하고 프로그램을 설정해야 최고의 화질과 음질을 만들 수 있을지 한 달 넘게 준비했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시청자들이 화질과 음질 모두 만족하는 반응을 보면 정말 기쁘다. 목표가 있다면 지금 소프트웨어적으로 처리하는 부분을 하드웨어로 바꿔서 더 좋은 방송을 만드는 거다.
황영재 해설은 연승전에서 옵저빙과 해설을 동시에 진행하는데 힘들지 않나?
황영재: 자유의 날개 시절 계속 해왔던 일이라 힘들지 않다. 그리고 어설픈 옵저빙을 보느니 내가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옵저빙과 해설을 같이 하는 것도 좋아한다. 다만 자세가 불안정하다는 게 조금 힘들긴 한데, 빨리 편한 자세에서 해설과 옵저빙을 같이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프로게이머 섭외는 박진영 해설의 몫인데, 선수들이 빌드 노출 등을 걱정할 거 같다.
박진영: 초반에는 출전할 프로게이머를 섭외하기 조금 힘들었다. 고맙게도 방송을 도와주기 위해 방태수나 한이석, 강동현이 많이 출전했다. 연승전이 본궤도에 오른 지금은 연승전에 참가하고 싶다는 프로게이머들이 늘고 있다. 그리고 연승전에 출연하는 프로게이머는 모두 익명으로 출전한다. 프로게이머고, 빌드나 게임 스타일이 생명인 선수들이라 이 부분은 정말 철저하게 지켜준다. 심지어 익명으로 출전한 프로게이머 둘이 대결한다고 해도 서로 상대가 누구인 줄 모른다. 연승전에 참여해 준 모든 프로게이머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각자 GSL TV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 많은 생각이 있었을텐데.
박상현: 예전부터 스타크래프트2 메인 콘텐츠는 많았지만 서브 콘텐츠가 적었다. 이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아프리카 TV로 넘어오며 지금이 생각했던 것을 하기 위한 최적의 기회라 생각했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2 공허의 유산이 론칭되며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었다.
아프리카 TV 플랫폼에서는 정말 많은 게임이 방송되고, 많은 분이 게임 방송을 시청한다. 그리고 시청자 중에 아직 스타크래프트2를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다. 스타크래프트는 했지만 스타크래프트2는 해본적도, 본 적도 없는 분들이 많다. 우리가 잘 준비해서 스타크래프트2를 알리면 전체적인 시청자나 팬도 늘어갈 거라 생각했다. 결국 이 팬들이 GSL, 스타리그, 그리고 프로리그의 시청자 되는 거다.
황영재: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인생을 던진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몰두하는 편이다. 지금 내 취미와 특기, 그리고 직업을 살릴 수 있는게 연승전이고 GSL TV다. 따로 시간이 드는 취미는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술이나 담배도 안 할 정도로 하나에 집중하는데, 그게 스타크래프트2다. 밑바탕이 튼튼해야 프로층도 튼튼해지는데, 스타크래프트2 베타 시절부터 이 생각으로 아마추어들이 경기할 수 있는 연승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해설을 그만두면 다른 누군가가 내 자리를 금방 채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예전처럼 스타크래프트2의 기초부터 튼튼하게, 차근차근 새로운 선수와 시청자를 찾아낼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생겨 기쁘다.
박진영: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자는 제안이 많았다. 리그 오브 레전드 코치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의도 있었지만 고민하다가 거절했다. 하지만 GSL 해설을 제의받았을 때와, 형들이 연승전을 같이 해보자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는 바로 승낙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고민이 많은 편인데, 이번에는 고민보다는 무조건 내가 해야겠는 생각이 들었다. 해설 경험이 많이 필요한 시기에 연승전을 진행할 수 있어 기쁘기도 하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GSL TV가 예상보다 빠르게 시청자가 늘고 있는데, 연승전을 진행한 소감과 앞으로의 각오를 이야기하자면.
박상현: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시절 방송을 봤던 분들이 내 이름을 보고 방송에 들어와서 그 박상현이 맞는가 하는 질문을 하고, 오랜만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직 스타크래프트2 방송을 접하지 못한 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분들이 오셔서 이야기하고 방송을 보고 우리 반응이 좋다고 계속 보시다가 고정 시청자가 된 경우가 많다. 잠시 방송에 들렀다가 고정 시청자가 되는 분들이 늘어가는 걸 보면서 아직 스타크래프트2에 희망이 있다는 걸 느낀다.
동시 시청자가 천 명 정도 되는데 방송 순위를 더 높여 스타크래프트2도 브루드 워만큼 파급력 있는 콘텐츠가 되면 더 많은 시청자가 외서 방송을 보실 거 같다. 급하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천천히 나가는게 목표다. GSL TV를 많이 애청해주시고, 스타크래프트2 아마추어 분들도 많이 도전해서 꿈을 펼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연승전 외에도 토너먼트식 대회와 아케이드 방송도 진행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의견 부탁드린다.
황영재: 연승전을 다시 시작하니 자유의 날개 연승전 시절도 많이 생각난다. 이번에는 옆에서 같이 방송하는 사람이 있으니 의지도 되고 재미도 있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아서 생각보다 빠르게 GSL TV 연승전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고 더 많은 분이 시청해주셨으면 좋겠다.
내 최종 목표는 언젠가 스타크래프트2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황영재라는 사람이 이런 일을 했다고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이대로 쭉 열심히 하면 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 방송이 즐겁다.
박진영: 공허의 유산 들어 새로운 콘텐츠가 생기며 게임을 접하기 쉬워졌지만, 여전히 래더는 진입장벽이 있다. 래더에 처음 도전하거나, 한계에 부딪힌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방송을 하고 싶고, 주말 연승전 외에도 주중에 스타크래프트2 개인 방송을 하니 많이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마추어 선수 중에 패배에 대한 부담보다는 가볍게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연승전에 많이 와주셨으면 좋겠다. 아마추어로 게임을 즐기는 분들에게는 기회가 된다면 프로 선수와 직접 경기하고, 프로를 지망하는 아마추어라면 해설진들과 시청자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GSL TV 연승전이 많은 분들이 도전하고, 이름을 알릴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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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 기자 vallen@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