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승현 기자] 삼각 로맨스의 향방에 대해 설왕설래가 오가는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지만, 드라마의 강점으로 소소한 가족 이야기도 꼽힌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세 번째 주자는 가족애와 이웃간의 정을 주로 다룬다. 전작인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가 각각 첫사랑과 청춘을 조명한 것과 차별화를 외치는 지점이다.
중심이 되는 배경인 쌍문동 골목길은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의 삶을 반영한다. 이웃 간의 정이 왕래하는 보통의 공간이다. 특별하지 않아도, 이러한 공간이 더욱 특수해졌다고 체감하는 것은 빠르게 지나가는 현재와 달리, 공동체를 챙기면서 강한 근린의식을 형성했던 따뜻함이 식었다는 아쉬움의 일환일 것이다.
신원호 PD는 "이웃들의 훈훈한 정이 지금 많이 없어 그립다. '따뜻한 정과 사람이 그리운 분들이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골목을 배경으로 정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전유물이 된 남편 찾기는 88년도에 역시나 펼쳐진다. 극의 근간을 이루는 러브라인은 무시하지 못 할 파급력을 지닌다. 첫사랑의 코드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드라마를 대표하는 색채이지만, "멜로 뿐만이 아니라 다른 에피소드가 많다"고 신원호 PD가 말한대로, 가족들의 이야기는 남편 찾기에 가려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풍성한 콘텐츠의 자양분으로 작용하며, 무게 중심을 계속 유지한다는 평이다. 남편 찾기에 가려진 가족 이야기의 분량을 늘려 달라는 반응도 숱하다.
이웃들은 잠금 장치, 그리고 초인종의 존재가 무색하게, 제 집처럼 남의 공간을 드나든다. 그래도 핀잔 하나 없이 녹아든다. '이웃사촌'의 의미가 약해진 현재와 다르게, 끈끈하게 형성된 유대감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속을 바탕으로 어른들은 전혀 핏줄을 가리지 않고 젊은 청춘을 보듬는다.
'타짜'와 '사짜'의 연이은 등장으로 안개 속으로 빠진 고스톱에서 철부지 없는 아이들처럼 복수극을 펼치지만, 가정의 리더들은 한없이 따뜻하고 든든하다. 성동일(성동일 분)은 둘째의 서러움을 안고 사는 덕선(혜리)을 위로하는 한편, 화려한 조명을 받지만 귀가길이 씁쓸한 최택(박보검)에 따뜻한 손길을 건넨다. 그에겐 딸의 친구들이 모두 자식같다.
이일화는 딸 성보라(류혜영)를 연행하려는 경찰에 맞서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며,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을 몸소 보여줬다. 피가 번지며 붉게 물든 양말은 딸을 기필코 위기에서 구해내겠다는 모성애를 대변한다. '여장부' 라미란(라미란) 여사도 그 누구보다 섬세하고 여린 여성이다.
쌍문동의 다섯 골목대장의 눈에는 어른들은 '로보트 태권브이'처럼 강하다.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음에, 기성 세대는 아이들 앞에서 더욱 의젓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한없이 듬직한 어른들도 때로는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고, 의지하고 싶다. 세월을 정통으로 맞이하며 가슴 한 켠 속 자리잡은 한(恨)의 감정을 터놓고 얘기하고 싶다.
어머니를 잃은 성동일은 장례식장에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성덕선의 입장에서 비보에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상한 것은 당연했다. 마지막날 큰 아버지(정원중)이 미국에서 급히 귀국하자, 성동일은 그제서야 억눌렀던 슬픔을 쏟아냈다. 성덕선은 그때 깨달았다. 슬프지 않아 울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슬픔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것을. 나이가 주는 무게감을 견디고 있었고, 항상 자신을 뒷바라지 하면서 악착같이 일어서는 어른들이 사실 아프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개그 강박증에 시달리며 당대의 유행어를 모두 섭렵하며 소화하는 김성균(김성균)도 마찬가지다. 썰렁한 개그로 라미란에게 타박을 받아도 절대 풀이 죽지 않는 수상한 사내는 생일을 맞이해서 기쁠만 한데도, 이상하게 울적해졌다. 가족들의 축하에도 시큰둥한 그에겐 사실 '어머니'라는 위대한 인물의 부재가 가슴 아팠다. 그는 녹음 테이프 속 돌아가신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훌쩍였고, 라미란은 개구쟁이 어른에서 순수한 아이가 된 남편을 약손으로 위로했다.
첫 방송 전에 제작진은 "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허나 엄살로 판명난 분위기다. '응답하라 1988'은 더욱 다양한 스토리로 무장하며 다시 찾아왔다. 이웃 간의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는 곳곳에 심은 장치와 맞물리며 잔잔한 감동을 전했다. 신원호 PD가 전작을 뛰어넘는 성공 여부에 대해 몸을 사리면서도 "물론 포기하지 않았다"고 은근한 자신감을 표한 것에는 지당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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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기자 drogba@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