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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e스토리] 명예와 자긍심, 이성은 감독의 진짜 세레모니

기사입력 2015.10.28 00:09 / 기사수정 2015.10.28 11:32

박상진 기자

[엑스포츠뉴스=박상진 기자] ‘이성은’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세레모니’일 것이다. 삼성전자 칸 소속 스타크래프트 선수 시절 상대 선수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각종 세레모니로 주목을 받았다.

선수 생활을 마치고 전역 후 스타크래프트2 해설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이성은은 돌연 리그 오브 레전드 팀 감독으로 변신했다. 큐빅에 이어 중국 WE 감독으로 활동 중인 이성은은 선수 시절의 과감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인물이 되었다.

그런 이성은이 돌연 선수 시절의 과감한 모습을 보였다. 바로 최근 터진 승부조작 사건에 대해 페이스북으로 일침을 놓은 것. 과연 무엇이 감독 이성은에게 선수 시절의 과감한 모습을 다시 드러내게 한 걸까. 이성은 감독이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그를 만나 최근의 근황과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큐빅 팀을 정리한 이후 어떻게 지냈나?

큐빅을 정리하고 한 달도 안 돼서 중국에 갔다. 처음 팀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슬픔보다는 눈앞에 닥친 현실을 해결하기에 바빴다. 스폰서가 빠지고 반년 정도 한국e스포츠협회와 팬들의 지원이 있었다. 하지만 팀 운영이라는 게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했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면 여기까지 하는 게 당연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먼저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선수들의 앞길을 생각해야 했다. 결국 몇몇은 스베누(구 프라임 LOL 팀)로, 나머지는 해외로 나가게 됐다. 그러고 나서 내 진로를 고민했는데 다행히 지인의 추천으로 WE팀을 소개받았다. 팀에 대해 알아보고 계약을 진행하고 싶어 감독 계약도 하기 전에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에서 지낸지 1년이 되었는데, 활동하기 어떤가.

벌써 그렇게 됐나(웃음). 중국에서 느낀 게 많다. 먼저 중국은 정말 넓다는 걸 느꼈고, 내가 중국에 대해 가진 선입견이 많았다는 거다. 정작 가서 지내보니 중국도 사람 살아가는 곳이었다. 오히려 이제 한국에서 중국어를 들으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중국 음식은 힘들더라. 처음에는 음식의 향이 강해서 혀가 얼얼할 정도였다. 그래도 사람들이 다 먹는 음식이라 생각하고 개구리부터 온갖 희귀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었다. 아직 벌레로 만든 음식을 못 먹어봤지만, 기회가 되면 도전해보겠다.


감독으로서 1년동안의 자신을 평가하자면.

100점 만점에 20점 정도 주고 싶다. 감독이면서 팀을 내 카리스마로 이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항상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이다. 그리고 중국어에 능숙하지 못하니 중국인 선수들과 더 친해지지 못한 부분도 아쉽다. 성적도 불만이다. 내가 WE팀에 합류한 게 스프링 시즌 중순인데 당시 팀이 꼴찌였다. 오너도 이번 시즌은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팀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스프링 시즌 반이 남았고, 모두 승리한다면 2위까지도 가능했다. 마음처럼 성적이 쭉쭉 오르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며 스프링 시즌 커트라인인 8위로 시즌을 마쳤다.

섬머 시즌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자신이 있었지만, 나도 생각지 못한 문제가 계속 터졌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 차이도 있었고, 다른 팀들도 우리만큼 열심히 하더라. 몇몇 중요한 경기에서 우리가 패배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섬머 시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40점은 줄 수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이 아쉽다. 첫 시즌이라고 해도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롤드컵 진출전 시드가 없으니 시즌 종료 후 한국에 들어왔다. 8월부터 쉬기 시작해서 곧 중국으로 돌아가는데, 생각보다 오래 쉬어서 내 감각이나 선수들의 경기력이 걱정되긴 한다.

올해 많은 선수들이 중국에 진출했다. 중국에서는 한국 선수들의 활약을 어떻게 보는지.

선수나 팀마다 다르다. 이제 거의 모든 중국 팀에 한국 선수들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롤드컵에 진출한 세 팀도 한국 선수들이 활약했고, 그렇지 못한 팀들에도 한국 선수들이 뛰고 있다. 그들이 중국에 와서 얼마나 잘 녹아드느냐의 차이인 거 같다. 아마 올해만 중국에서 활동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선수도 있을 거고, 반대로 한국에서 중국으로 건너오는 선수들도 있을 텐데, 중국에서 활동하는 선수라면 자신이 한국 출신 선수라는 것을 인지하고 중국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아무리 한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도 중국에 가서 나태한 모습을 보이면 실패한 선수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중국은 도피처도 아니고 기회의 땅도 아니다. 선수들과 경쟁해야 하는 또 다른 무대일 뿐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지내던 중 승부조작 사건을 접했는데, 어떤 기분이 들던가.

처음에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리까지 후들거리더라. 다른 팀도 아니고 큐빅에서 활동하던 선수들이 건너간 팀 감독의 일이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선수들이 어떤지 확인했다. 승주나 기훈이, 정현이 말고도 다른 선수들이 괜찮은지 궁금했다. 다행히 위대윤 코치가 잘 추슬러 지금 케스파 컵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

2010년 마재윤과 진영수가 가담한 사건을 접했을 때는 내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게임을 좋아해서 17살부터 한 우물을 팠는데, 조작범들이 내가 파는 우물에 독을 뿌리고는 도망간 거다. 결국 우물을 아무리 파도 오염된 물만 나온다는 느낌이 들어 결국 은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팀을 나와 방황하다 공군 입대로 방향을 잡았다. 당시에 그들의 조작 행위를 알고 앞에서 세레모니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우연의 일치였을 뿐이다.

공군 전역을 했는데 조작범들이 아직도 아프리카를 통해 개인 방송을 하고 있더라. 기분이 나쁘다 못해 역겨웠다. 방송하든 말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그런데 자신이 망가트린 스타크래프트를 왜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갔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하더라도 방송에서 하는 이야기가 ‘어차피 망할 리그였고, 나 때문에 망한 게 아니다’였다. 그렇게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는 게 어이없었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없는 사람 취급을 하고 살았다.

이번 사건 초기에는 스베누 선수들이 괜찮은지 챙기느라 바빴다. 그런데 진영수가 방송에 나와서는 축구에 비유하며 무슨 권리로 자기의 방송을 막느냐고 하더라. 진영수가 초등학생도 안 넘어갈 되지도 않는 비유를 하는 걸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비유를 해도 무식하고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게 되었다. 스타를 하고 싶으면 혼자서 방송하지 말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조작에 가담한 사람들의 인생이 다 망가지길 원하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형을 끝내고 스타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이러한 죄를 짓고 나서 방송을 켜서는 자기를 일반인으로 봐달라고 하는데, 그러면 대중 앞에 서지 말고 지내면 되는 거 아닌가.


두 번이나 현업에서 승부조작 사건을 겪었다. 

첫 사건때는 다들 경황이 없었다. 두 번째 사건이 되자 한국e스포츠협회의 대응도 빨랐고, 개인 방송 플랫폼인 트위치와 아주부, 아프리카 TV, 다음TV팟도 공동 대응에 나섰다. 이들이 한국e스포츠협회의 요청을 받아줄 법적 의무는 없다. 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과감한 결정을 내려준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의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개인 방송을 하는 전 선수나 관계자들도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전 프로 출신으로 선수 생활때 보이지 못한 재미있는 모습이라거나 개그 소재로 자학하는 건 뭐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도 선수 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면 최소한 공개적인 곳에서는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자들과 엮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수로서 명예를 가지고 승부를 겨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야 그 뒤를 걷는 후배들도 같은 자부심을 가질 거 아닌가. 사적으로는 어떻게 지내든 개인이 결정할 바이지만, 방송에서 교류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 진영수가 여는 스타리그에 선수들이 참여하는 등의 사건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승부조작 사건을 원천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 그러나 돈을 위해 명예를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프로라면 돈을 따라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이건 자신의 실력으로 얻은 정당한 명예와 보수를 따라가는 거지, 명예를 버리고 돈을 쫓는 건 적어도 선수가 할 일은 아니다. 그리고 때로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큐빅을 포기했듯이. 돈이 없으면 팀 운영을 포기해야지, 승부조작을 해서 운영하는 게 말이 되나. 

그리고 누구든 e스포츠 선수로 활동한다면 팬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했으면 좋겠다. 이기든 지든 승패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자부심을 선수들이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다른 건 없지만 10년 동안 자부심 하나로 계속 활동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종목이든 이 사건에 대해 굉장한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 봐주셨으면 좋겠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금방 잊히는 거 같아서 아쉽다. 승부조작 사건은 e스포츠 역사에 있어 오점으로 남을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지고 봐주셨으면 좋겠다.

작년 한 해는 팀 운영과 중국 생활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올해는 나도 감독으로 성과를 거두고 싶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많은 곳에서 나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감독으로서 내가 드릴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은이라는 이름 석 자를 기억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언제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vallen@xportsnews.com

박상진 기자 vallen@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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