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이은경 기자] 지난 20일, 연세대가 모비스에 1점 차(78-79)로 패배하면서 허훈(20, 연세대)의 2015 프로-아마 최강전도 끝났다. 이번 대회 우승팀은 연세대가 아니라는 게 확정됐지만, 대회 최고의 ‘핫 플레이어’를 허훈으로 꼽아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허훈은 18일 열린 대회 1회전에서 SK를 맞아 아주 인상적인 경기를 보여줬다. 가드로서의 테크닉, 그리고 당돌하기까지 해 보이는 두둑한 배짱이 그것이었다.
허훈은 SK전에서 25점, 이어 열린 모비스전에서 23점을 넣었다. 모비스전에서는 23점 7어시스트 8리바운드로 올어라운드 플레이어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양동근이 붙는데도 과감하게 수비를 달고 돌파해서 레이업 슛을 넣는 장면에선 관중석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미꾸라지처럼 상대 수비를 피해 다니는 센스는 프로팀 벤치를 곤혹스럽게 했고, 단번에 찔러 넣는 패스를 팀 동료가 제대로 못 받는 장면도 몇 번 나왔다. 수비 센스도 있어서 상대 공격 길목을 끊기도 했고, 리바운드도 잘 걷어냈다.
허훈이 다른 선수들보다 더 큰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가 허재 전 KCC 감독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허재 전 감독은 ‘농구 대통령’으로 불렸던 한국 농구 최고의 스타였다.
허훈과 아버지를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다. 이미 아버지 허재 감독의 완승이라는 걸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은희석 연세대 감독도 딱 잘라서 이야기한다. 그는 기자들이 “훈이 플레이를 보면서 가끔 허재 감독이 오버랩되기도 하나”라고 묻자 “솔직히 훈이가 허재 감독님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고 했다. 허재 전 감독은 현재 허훈의 나이였던 중앙대 재학 시절부터 한국농구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허훈은 아직 숙제가 많다. SK전에서 쏟아진 관심에 오버플레이를 했는지 모비스전 후반에는 다리에 쥐가 나서 벤치로 잠시 물러나기도 했다. 모비스의 노련한 2-3 지역방어 공략법도 찾지 못해 결국 1점 차 패배라는 결과를 받아들어야 했다.
선수로서의 능력이 아버지만 못하다는 ‘대전제’를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훈은 매우 매력적인 선수다. 그가 아버지에게 완벽하게 물려받은 건, 어쩌면 ‘스타로서의 DNA’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허훈에게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매력적인 성격(혹은 멘탈)이다. 허재 전 감독은 둘째 아들 허훈의 성격에 대해 “골 때린다”는 농담을 종종 했다. 어린 시절 허훈이 아버지 경기를 보러 가면, 구단 사무실에서 춤 추고 노래부르며 사람들을 웃기곤 했다. 당시엔 허 감독이 “훈이는 연예인 할거래. 쟤는 집에선 코미디언이야”라는 말도 자주 했다.
허재 전 감독의 큰 아들 허웅(22, 동부)이 상대적으로 진지하고 과묵한 성격이라면 허훈은 낙천적이고 끼가 많다. 허훈의 어머니 이미수씨가 과거 두 아들의 성격에 대해 했던 이야기가 있다. “아빠가 선수 은퇴하고 미국 연수를 가게 됐는데, 웅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엄마, 이제 우리는 뭐 먹고 사는 거예요’라고 묻더라. 그런데 훈이가 형을 가르치듯이 ‘에이, 형. 뭐가 걱정이야. 아빠 카드가 우릴 먹여 살릴거야’라고 했다. 훈이는 매사 해피한 아이다.”
허훈은 20일 모비스전 경기 후 인터뷰에서 “롤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양동근”이라고 했다. 기자들이 “아버지는 롤모델 아니냐”고 되묻자 허훈은 “아버지는 나랑 스타일이 좀 다르다. 시대도 다르다”고 너무나 당당하게 말해서 기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허훈은 SK전 직후에 한 인터뷰에서는 당돌하게도 “이 시대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고 했다.
그에게 “허재의 아들이라는 말에 별로 부담을 안 느끼는 것 같다”고 하자, 생글생글 웃으면서 “부담 안 된다”고 했다.
올해 ‘프로-아마 최강전’은 허훈에겐 특별한 대회였다. 그가 상대했던 SK에는 김선형, 모비스엔 양동근이라는 현재 KBL 최고의 가드들이 있었다. 그리고 허훈은 당당하게, 또 당돌하게 ‘맞짱’ 뜨는 모습을 보여주고 씨익 웃으며 인터뷰를 했다.
허훈의 플레이가 얼마나 더 좋아질까 기대는 되지만, ‘아버지를 넘어설 것이다’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최소한 배짱은 아버지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밝고 낙천적인 에너지는 오히려 아버지 이상인 듯하다. 늘 스타에 목 마른 한국 농구를 생각하면, 그래서 허훈의 ‘스타 DNA’가 참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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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기자 kyo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