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지난해 영화 시상식을 돌이켰을 때, 가장 많이 회자된 배우는 아마도 천우희일 것이다. 천우희는 지난해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각종 영화제에서 13개의 트로피를 쓸어 담으며 자신의 이름을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그런 천우희가 올해 여름, 새로운 영화 '손님'(감독 김광태)으로 다시 관객들을 찾아왔다. '손님'은 '독일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모티브를 차용한 작품으로, 1950년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산골 마을로 들어선 낯선 남자와 그의 아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숨기려 했던 비밀과 쥐들이 기록하는 그 마을의 기억을 다룬 판타지 호러.
매 작품마다 강렬한 캐릭터를 선보여 온 그는 '손님'을 통해 마을 안에서 무당임을 강요받는 젊은 과부 미숙 역할을 연기했다. '손님'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천우희는 극 중 캐릭터에 대한 물음에 "(강한 캐릭터를 연기한 뒤) 힘든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고민도 했지만, 그것 때문에 하고 싶은 작품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고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전했다.
'손님'이 '마을'이라는 하나의 특정 공간 속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담았다는 것도 천우희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동화 원작이라는 것도 그렇고, 전쟁 직후의 상황을 가져왔다는 것도 맘에 들었다. 평소에도 마을 같은 제한된 공간에 흥미를 두는 편인데, 그런 부분이 남달랐던 것 같다"며 미소를 보였다.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한 고민의 시간은 길었다. 천우희는 "미숙이 역할이 시나리오 상에서 보여질 수 있는 게 적었다"며 "부족한 설명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했다"고 말했다.
미숙 캐릭터는 너무 가릴 수도, 너무 풀어서 연기를 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는 게 천우희의 설명. 시나리오 상에 있는 지문에 얽매이지 않고, 현장에서 바뀔 수도 있는 상황들에 대해 유동적으로 대응해가며 역할, 장면에 대한 당위성을 찾아내려는 것이 그의 노력 중 하나였다.
역할을 위해 살을 찌우는, 여배우로서는 다소 과감할 수 있는 선택을 한 것도 눈에 띄었다. 실제 촬영을 위해 5kg 정도를 늘렸었다는 천우희는 "화면에 나오는 모습은 맘에 들었는데, 계속 그렇게 지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다시 살을 뺐다"고 해맑게 웃었다.
13관왕을 하기 전이나, 그 이후나 연기를 대하는 천우희의 진중함은 변한 것이 없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그에게 지난해 수상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쑥스러운 듯 다시 웃으며 "주변 대우가 달라지긴 한 것 같다"고 얘기한다.
이내 "상을 받고 난 이후부터 불안해졌던 것 같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천우희는 "'사람들의 기대가 커질 것이고, 그만큼 실망도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더라. 상을 받기 전이나 후나,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마음먹었다. 제가 맡은 역할을 진심으로 연기하는 것, 그게 맞다고 본다"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자신의 소신을 전했다.
좋은 점을 꼽자면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 대본의 양은 물론이고, 작품 속 비중 역시 이에 해당한다. 천우희는 "크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제게 작품의 선택권이 있다는 자체가 좋았다"며 "사실 그게 배우들의 욕심이기도 하지 않나. 그래서 좋은 것 같다"며 솔직한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고 싶지만, 한 번에 노선을 확 바꾸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 '다른 이들은 예쁜 역할도 많이 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고난의 길을 갈까'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었지만, "천우희가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주어지는 거다"라고 힘을 실어준 주변의 응원에 책임감과 자부심을 다시 느낀다며 자신의 어깨에 놓인 무게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매 작품마다 넘칠 정도로 쏟아내는 에너지. 일상의 천우희는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다시 채워 넣을까. 그는 "특별히 여행을 간다거나, 다른 시간을 내서 무엇을 배운다거나 하지 않아도 혼자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천우희는 매 작품을 통해 한 뼘, 한 뼘 성숙해져가고 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스크린 안에 담아내고 있는 그의 활약이 어디까지 이어질 지, 천우희가 밟아가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기대가 더해진다.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사진 = 천우희 ⓒ 엑스포츠뉴스 김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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