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이은경 기자] 제프 블래터(79) FIFA 회장이 자진 사퇴했다. 임기 5년의 FIFA 회장직에 재선된 지 나흘 만이다.
FIFA는 블래터의 빈 자리를 이어받을 새 회장을 12월에서 내년 3월 사이에 선출할 예정이다. 세계 축구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이 향후 몇 개월 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위치는 과연 어디에 있는지가 관심사다.
정몽준 명예회장의 성명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FIFA 총회(겸 회장선거)를 몇 시간 앞두고 ‘블래터 회장은 물러나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정 명예회장은 이 성명서에 “FIFA의 부패는 구조적이고 뿌리가 깊습니다. 블래터 회장이 FIFA의 수장으로 지낸 기간 동안 FIFA의 부패 문제는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블래터 회장의 사임을 촉구합니다”라며 강도 높은 비판의 내용을 담았다.
정 명예회장은 대한축구협회장 재임 시절과 FIFA 부회장직을 맡고 있을 때도 ‘반(反) 블래터 인사’로 유명했다. 블래터가 공식 사퇴한 현재로서는 정 명예회장의 성명서가 사실상 성공을 거뒀다는 인상을 준다. 한국 축구가 오랜 기간 블래터의 반대 편에 서 왔다는 점도 현재 상황에서는 마이너스될 게 없다.
다만 염두에 둘 부분은 있다. FIFA 내 역학구도에서 블래터 퇴진에 가장 큰 압력을 행사한 곳은 유럽축구연맹(UEFA)이었다. 향후 FIFA에서 UEFA의 입지가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그 동안 한국 축구는 UEFA에 무조건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정 명예회장은 2018 월드컵 개최지 투표 때 러시아에 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잉글랜드, 프랑스 등이 중심에 서 있는 UEFA는 러시아 개최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축구 정치’에서 아직 갈 길 멀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지난 4월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총회에서 FIFA 집행위원에 도전했다가 낙선했다.
이를 두고 두 가지 평가가 공존했다. 정몽규 회장이 아직 복잡한 국제축구 정치에 대해 잘 몰라서 보기 좋게 실패했다는 평가, 그리고 또 다른 평가는 정몽규 회장이 AFC의 독재적인 분위기에 대해 용감하게도 공식적으로 반기를 들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다.
AFC는 셰이크 아마드(쿠웨이트) 집행위원의 전횡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는 분위기다. 셰이크 아마드는 현재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을 맡고 있으며, 차기 FIFA 회장직을 노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한 인물이다.
그 동안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동세에 밀려 AFC 내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는 더 나아가 FIFA에서도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됐다.
국제 축구계의 정치는 실제 정치판과 다를 바가 없다. 합종연횡이 판을 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정몽규 회장, 즉 대한축구협회가 AFC 내의 부패와 독재에 반대하는 ‘용기 있는 야당’의 입지를 다진 것이 향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긴 어렵다.
다만 블래터가 여론에 떠밀려 사퇴에까지 이른 현재 상황에서, 한국 축구가 ‘부정부패에 반대한다’는 깨끗한 이미지를 심으면서도 국제 축구 정치의 역학관계에서 밀리지 않을 만한 입지와 힘을 키워가는 건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이은경 기자 kyong@xportsnews.com
[사진=정몽규 회장 ⓒ 엑스포츠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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