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승현 기자] 초반 위기를 겪던 울리 슈틸리케(61) 축구대표팀 감독이 현실을 인정한 뒤 상황이 180도 바뀌기 시작했다.
2015 호주아시안컵 개막을 앞두고 치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 모의고사에서 2-0으로 승리하며 힘차게 닻을 올린 슈틸리케호는 오만과 쿠웨이트에 신승을 거두며 일찌감치 8강을 확정지었다. 1차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신통치 않은 경기력으로 우려 섞인 눈초리를 받았다.
슈틸리케 감독 부임 후 맞이한 첫 메이저 대회인데다 손발을 맞출 기회가 많지 않았음을 감안한다면 냉혹한 측면도 있지만, 한 수 아래의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끌려다닌 것이 크게 작용한 듯 보였다. 호주전을 앞둔 길목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오늘부로 우리는 우승후보가 아니다"라며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했다.
해외 언론은 한국의 경기력에 의문 부호를 품었고, 3차전 상대인 호주는 승리를 낙관했다. 콧대가 높았던 사커루는 예상치 못한 문제에 당면했다. 자세를 낮추며 스스로 우승후보에서 내려온 한국이 이 시기를 기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끈끈한 응집력을 뽐낸 한국은 이정협의 결승골로 호주의 잔칫상을 엎었다. 한국산 늪 축구는 이렇게 태동을 알렸다.
선수단은 좋은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베테랑 곽태휘가 중심을 잡은 수비진이 안정 궤도에 오르자 불안감을 노출하던 뒷문 단속이 강점으로 변모한 점은 가장 든든한 부분이다. 무실점으로 우즈베키스탄을 돌려 세웠고, 8년 전 패배를 안기며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이라크와 4강에서 만났다.
복수전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늪 축구 대신 볼 점유율을 강조하던 슈틸리케 감독의 초심이 그라운드에서 구현됐다. 이라크보다 하루를 더 쉰 한국은 상대가 체력이 빨리 소진되도록 철저하게 패스 플레이를 추구했다.
전반전 66%의 점유율로 경기를 주도한 한국은 282회의 패스로, 144회의 이라크를 압도했다. 수중전으로 상대의 체력 소비는 그 정도가 더했다. 집중력 있는 수비는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라크 선수들의 표정은 일그러진 반면 한국은 어느 때보다 신바람을 내며 풍악을 울렸다.
로저 페더러는 2015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에서 이변의 희생양이 됐지만, 이 점을 경계한 슈틸리케 감독은 4강전을 치밀하게 준비했음을 입증했다. 이라크의 약점인 체력을 점유율로 약화시켰고, 세트피스의 허술한 수비도 수차례의 연습을 통해 허물며 결실을 맺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결승 상대로 호주를 지목했다. 모두가 승리의 기쁨에 도취한 상황에서 그는 "결승전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기 위해 보완할 점이 많다"며 신중함을 요했다. 마지막 상대로 유력한 호주와의 결승전을 앞두고 또다시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본 슈틸리케 감독의 눈은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55년 만에 아시아 정상 탈환을 노리는, 우승후보가 아니었던 한국은 우승컵에 다가가고 있다.
김승현 기자 drogba@xportsnews.com
[사진= 이라크전 승리에 기뻐하는 한국 축구대표팀 ⓒ AFPBBNews=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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