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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최민식, 이 시대의 영웅상을 제시하다 (인터뷰)

기사입력 2014.08.04 00:41 / 기사수정 2014.08.04 02:02

박지윤 기자
배우 최민식이 영화 '명량'으로 돌아왔다.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배우 최민식이 영화 '명량'으로 돌아왔다.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엑스포츠뉴스=박지윤 기자] 배우 최민식을 만나러 가는 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발길이 멈춰섰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구한 성웅 이순신은 4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의 심장에 우뚝 서 있었다. 이런 대한민국의 유일한 영웅을 연기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쉬이 상상하기도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최민식의 고민도 그렇게 시작됐다. '잘해야 본전이다'는 생각에 캐스팅 제의를 받고도 쉽게 달려들지 못했다. 충무공을 연기한다는 것은 27년의 연기 경력의 배우에게도 어려운 결정이었다.

"김한민 감독에게 제안을 받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팔아서 이따위 영화를 만드냐?'고 욕을 바가지로 먹기 십상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전 국민이 이미 결말을 다 알고 있는 내용이잖아요?(웃음) 그런데 김 감독의 취지와 의도가 너무 좋았습니다. '명량해전'을 영화로 구연해보고 싶다는 욕심. 아주 리얼한 해상 전투신을 만들고 싶다고 하더군요. 김한민 감독은 역사에 대한 관심도 정말 많아요. 이런 영화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술자리에서 오케이를 했죠."

"내가 이분을 연기할 수 있을까? 해도 될까?"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사실 이순신은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연기하고픈 캐릭터로 꼽힌다. 외국 여배우들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블랑쉬를 꿈꾸듯, 배우로 반평생을 살아온 최민식도 언젠가 이순신 장군에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막연한 기대와 의욕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는 '이순신'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저는 제 몸이 악기라고 생각해요. '이 캐릭터는 바이올린처럼 연주하자', '이건 피아노, 저건 일렉트로닉 기타' 이렇게 제가 전환을 하며 연기를 하는 거죠. 그렇게 제 해석을 연기에 투영되는 겁니다. 하지만 이순신이란 인물은 제가 함부로 상상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었어요. 그러다보니 경직되고, 제 스스로 강박에 빠졌죠. 이순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야만 연기할 수 있다는."

서울 광화문 동상까지 가지 않더라도, 매일 사용하는 100원짜리 동전에는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가 새겨져있다. 어려서 읽었던 위인전, TV 드라마까지…. 이순신 장군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최민식은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진중에서 쓴 '난중일기'를 통해 이순신에게 말을 걸었다. '왜?', '어떻게?' 같이 결코 답을 알 수 없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최민식은 스스로 비현실적인 강박에 빠질 만큼 고민에 빠졌고, 꿈에서라도 한 번 만나고 싶을 만큼 이순신을 갈망했다.

"나이 50이 넘어서 처음으로 이순신이라는 사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어렸을 때는 시대적으로 이순신 장군을 절대적인 영웅으로 추앙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학교 조회시간에 충무공 노래도 부르곤 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순신 장군이 현대사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약간 영웅화되고 과장된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난중일기'를 읽어보니…. 정말 흠이 없는 분이에요. 거기서 오는 절망감이 컸어요. 정말 내가 이분을 연기할 수 있을까? 해도 될까? 같은 고민들. 제가 함부로 연기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를 계기로 활발한 토론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엑스포츠뉴스 권혁재 기자


최민식은 '명량' 기자간담회에서 '아직도 개운치가 않다'는 말로 이순신 연기에 대한 부족함을 설명했다. 그러나 최민식의 우려와는 달리 현재 '명량'은 한국 영화의 흥행사를 새로 쓰고 있다. 역대 최대 오프닝스코어, 최다 일일 관객수, 최단 기간 100만, 200만, 300만 돌파 등 '명량'의 행보는 그대로 신기록이 됐다. 

"한국분이라면 영화를 보며 울컥하는 게 있을거에요. 다 같은 피를 나눈 민족이니까요. 물론 '애국주의를 지나치게 강요한다', '너무 무겁다'는 평가도 이해해요.  그런데 이건 무겁고 비장한 얘기에요. 이걸 코믹하게 다룰 순 없잖아요?"

최민식은 영화 '명량'을 두고 미련 곰탱이 같은 영화로 표현했다. 한 때는 옳고 정의로운 가치로 여겨졌던 조국, 의리, 충성 같은 단어들. 그것들을 다시 깨끗하게 닦아내 장식장 가장 잘보이는 곳에 올려놓은 영화. 그리고 그런 가치들을 대중들과 나누는 영화가 바로 최민식이 표현하고자 했던 '명량'이었다.

"이 영화를 계기로 활발한 토론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요즘 한국 사회에 리더십의 부재라는 얘기가 많이 나와요. '왜 우리에게는 영웅이 없냐'는 거죠. 누군가 짠하고 나타나서 이 어렵고 힘든 상황들을 정리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관점에서 주제 의식을 갖고 활발한 토론이 이뤄진다면 좋겠어요. 팝콘처럼 단순히 즐기는 오락영화도 있지만, 이런 영화도 있어야겠죠."

최민식에게 '명량'은 과거의 역사를 전하는 역사물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이 실제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관객은 최민식을 통해 성웅 이순신을 보았다. 전장에서 발휘되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말이다. 

박지윤 기자 jyp90@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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