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과천선'이 과감한 현실 꼬집기로 시청자에게 호평을 받았다 ⓒ MBC 방송화면
[엑스포츠뉴스=김현정 기자] 한국 드라마는 장르가 다양한 것에 비해 주제와 내용은 한정돼 있다. 오죽하면 의학드라마에서는 의사가 사랑에 빠지고 법률드라마에서는 변호사, 혹은 검사가 사랑에 빠지고 도박드라마에서는 타짜가 사랑에 빠진다는 말이 나왔을까.
그런데 오랜만에 '연애 안 하는' 전문직 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 휴머니즘을 담은 법정물인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이다.
김석주(김명민 분)의 기억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보다 소중한 것을 되찾았다. 아버지 때문에 냉혈한 변호사가 됐던 그는 방송말미 김신일(최일화)과 낚시를 하러 떠났다. ‘인간’이 된 김석주가 아버지와 화해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마음의 적과 싸웠던 김석주는 기억상실 덕에 짐을 내려놓고 '본래의' 김석주로 돌아가게 됐다. ‘개과천선’식의 묵직하고 담담한 해피엔딩이었다.
이 드라마는 드라마 속에서 가장 흔한 병이라는 기억상실증을 소재를 내세웠다.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김석주가 변호사로서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고 새 인생을 살게 되는 내용을 그렸다.
잘못하면 진부한 스토리로 흘러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 인간적으로 변해가고 자신이 속했던 차영우펌과 맞서 싸우는 김석주의 모습을 중점으로 담아 몰입을 높였다. 기억상실증을 식상한 소재로만 머무르지 않게 한 덕이다.
시원한 현실 풍자도 주목할 만했다. 김석주가 수임한 사건들은 국내 대형로펌을 연상시키는 차영우펌, 론스타 외환은행 사건, 동양그룹 사태, 삼성 기름유출사고, 키코사태 등을 떠올리게 했다.
“미국 대법관은 소수인종이나 다양하게 구성하려고 노력하는데 지금 이 13명은 특징이 똑같다. 서울대 출신, 고시에 일찍 합격한 사람들 중 연수원 성적 수석 차석, 보수적 판결을 내린 법관들”, “참여정부 때만 해도 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었다. 10년 전만해도 법원이 이러지 않았다”라는 현실을 꼬집는 대사는 시청자에게 대리만족을 안겼다.
후반으로 갈수록 완성도가 떨어진 점은 아쉽다. 김석주라는 캐릭터를 중점적으로 보여주다 보니 그가 수임한 사건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법률 용어들이 등장하는 탓에 법정물이 낯선 이들에게는 어려운 전문직 드라마로 다가왔다. 회를 거듭할수록 배우들의 열연이 스토리나 구성보다 더 눈에 띄는 모양새였다. 조기종영 탓에 다급하게 마무리 된 느낌을 준 점도 옥에 티였다.
그럼에도 '개과천선'을 웰메이드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불합리한 현실을 고발하고 약자들의 입장을 보여 주려는 노력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어려웠지만 몰입도는 상당했다. 비록 짜임새는 부족했다 한들 가진 자들 앞에서 무력해지는 우리네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시도만으로도 ‘개과천선’이 호평을 받을 이유는 충분하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순진한 사람이 많은거냐?"는 김석주의 말에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함축돼 있다.
로맨스에 목을 매지 않은 점도 좋았다. 김석주와 이지윤·유정선(채정안), 이지윤과 전지원(진이한)의 러브라인은 이도 저도 아니게 됐지만 오히려 연애하는 법정드라마에 지친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었다.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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