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의 골프 라운딩 논란에도 누리꾼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 엑스포츠뉴스 DB
[엑스포츠뉴스=한인구 기자] 지난 주말 난데없이 방송인 이경규(54)의 골프 라운딩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보도전문채널 YTN은 26일 이경규가 이날 오전부터 전남 화순에 위치한 골프장에서 지인들과 골프를 치고 있다고 알렸다. 이어 "세월호 참사로 연예계에서 애도와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경규의 골프는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경규는 그 시간 골프 라운딩 중이었다. 그러나 YTN은 사실의 전달뿐만 아니라 논란을 암시하는 듯한 내용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 기사가 전해지자 다른 매체들도 확인에 나섰다. 이경규 소속사 측은 같은 날 "이경규의 골프 라운딩은 사적인 자리였으며 두 달 전에 약속이 됐다"며 "이경규가 소식을 접하고 골프 라운딩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누리꾼들은 비난의 화살을 골프 라운딩을 한 이경규가 아닌 이 소식을 전한 언론으로 돌렸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큰 슬픔이긴 하지만 그 무게까지 개인적인 활동을 했던 연예인이 짊어져야 했느냐는 지적이었다. 누리꾼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어제 나도 축구했는데 잘못한 것인가"라는 조롱 섞인 패러디를 쏟아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팽팽하게 맞서던 좌우진영도 한뜻으로 입을 모았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SNS를 통해 "애도는 의무나 강요가 아니죠"라고 의견을 내놨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역시 "언론의 거짓선동이 문제지 연예인 골프가 뭐가 문젠가요"라고 뜻을 전했다.
이경규가 세월호 참사로 예능프로그램이 대부분 결방하는 분위기 속에서 골프를 쳤다는 소식은 보기에 따라서는 '서운하게' 생각할 여지도 있다. 전 국민적으로 어떤 '자숙'의 분위기가 팽배한 속에서 골프라는 '한가한 운동'을 즐기는 것은, 이경규가 비록 공직자는 아니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문제를 삼을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경규의 골프 라운딩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언론보다 더 지혜로웠다. 곁가지가 아니라 본질을 보려고 했던 것이다. 세월호와 관련해 지금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어떤 '희생양'을 만들어 사람들의 울분을 그쪽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따져묻고, 구조 상황을 전하고, 실종자나 유가족과 함께 슬픔을 나누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던 것이다.
누리꾼들은 언론의 보도로 자칫 희생양이 될 뻔한 이경규를 '수렁'에서 건져냈다. 이경규의 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세월호 침몰 사고의 미흡한 대처를 문제 삼았다. 또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으로 세월호 침몰 사고를 지켜보는 데서 오는 울화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연예인 한 명에게 쏟아붓지 않았다. 한마디로 '집단적 지성'의 한 예를 보는 듯 했다.
이러한 밑바탕에는 SNS를 통한 누리꾼들의 정보 공유가 있었다. 소규모 매체들은 과감히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정보 및 보도를 SNS으로 전달했다. 누리꾼들은 일방적인 정보의 습득보다는 다각도에서 정보를 받고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축적돼 있었다. 이와 함께 언론에 휘둘려 해당 사건에 날선 비판을 하지 못했던 과거 사건들에 대한 학습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이경규 골프 회동이 있고 하루가 지난 27일 청와대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는 '당신이 대통령이어서는 안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조회수 50만이 넘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글의 내용에서는 대통령 한 사람만을 지목하고 있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 대처에 무능했던 국가 시스템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힌다.
이경규는 자칫 또 다른 희생자가 될 뻔했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의 분노를 한 연예인에게 돌리기보다는 이번 사고를 재난시스템의 미비와 국가적인 책임으로 봤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서라도 말초적인 이슈거리에 치우치는 기사보다는 사고에 대한 정확한 보도가 나와야 할 시점이다.
한인구 기자 in999@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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