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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앵커가 꿈이 아니다"…아나테이너가 가는 길

기사입력 2014.02.16 08:40 / 기사수정 2014.02.17 10:56

한인구 기자


[엑스포츠뉴스=한인구 기자] "금메달, 이상화 금메달. 여러분 이상화 선수가 금메달을 가져갑니다. 올림픽 2연패의 이상화 선수입니다."

김성주 캐스터는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이상화 선수의 스피드스케이팅 500m 경기를 생생하게 전했다. 12일 새벽(한국시간)은 이상화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건 날이기도 했지만 MBC 아나운서로 입사해 프리선언을 했던 김성주가 방송 중계로 복귀한 무대이기도 했다.

아나테이너(아나운서와 엔터테이너의 합성어)의 강세가 다시금 두드러지고 있다. 김성주, 전현무, 오상진, 문지애, 최송현, 박지윤, 유정현 등 방송사와 프로그램을 가리지 않고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실 아나테이너라는 단어는 이제 진부한 표현에 가깝다. 시청자들은 2000년대 접어들면서 아나운서가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경기대 언론미디어학과 윤성옥 교수는 "융합이 중요해진 시대에 아나운서들에게도 복합적인 기능이 요구되고 있다"며 변화된 방송 환경을 설명했다.

융합은 곧 방송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다. 특히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정보 전달과 오락을 함께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등장으로 아나운서의 활동 범위도 넓어졌다. 물론 아나운서뿐만이 아니다. 배우, 가수, 개그맨 등도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진행도 맡게 됐다. 이런 상황은 아나운서에게는 새로운 기회이자 동시에 위기이기도 하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은 "아나테이너에 대한 시선이 예전만큼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면서도 "방송환경이 점차 크로스오버(여러 장르가 교차하는 것)되는 경향에 따라 아나운서라는 직종이 많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아나운서의 꿈이 앵커로 수렴되던 시대는 지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나테이너의 활동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1993년 SBS 3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한 유정현은 '한밤의 연예TV'를 진행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그는 정치인 생활을 거쳐 현재 tvN '더 지니어스: 룰 브레이커' 등에 출연 중이다.

또 김성주는 프리선언을 한 뒤 여러 프로그램에서 진행을 맡았으며 MBC '아빠 어디가'와 같은 리얼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비추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상진은 SBS 수목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유석 역으로 연기자로 변신했다. 이는 tvN '감자별 2013QR3'에 출연 중인 최송현도 마찬가지다.



'프리'를 선언한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들의 활약은 특정 방송사에 소속된 아나운서의 활동 영역도 넓혀주는 결과를 낳았다. JTBC 장성규 아나운서는 'JTBC 주말뉴스'를 시작으로 '김국진의 현장박치기', '시트콩 로얄빌라' 등 보도 및 예능의 울타리를 넘나들며 활약 중이다.

이와 관련해 장성규 아나운서는 "이런 변화를 반기는 분위기도 있다. 여러 선배들이 길을 터준 덕분에 아나운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폭넓은 시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 같다"고 전했다.

연예기획사들도 방송 무대에서 다양한 끼를 보이는 아나운서에 대해 관심을 높이고 있다. 이들은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들이 자질이 우수하고 대중적 지명도가 있고, 방송에서의 적응력이 높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오상진과 문지애가 소속된 프레인TPC 김지윤 홍보팀장은 "두 사람과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며 "오상진, 문지애 모두 아나운서 시절, 왕성하게 방송 활동을 했었고 기본적으로 재능이 있다. 앞으로의 가능성도 크다"고 평했다.

그러나 모든 아나운서가 아나테이너를 꿈꾸는 것은 아니다. SBS 김태욱 아나운서는 "아나운서실 내의 분위기는 차분한 편이다. 대부분의 아나운서들은 아직도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이 주는 이미지에 대한 부담과 자신의 한계 등으로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꺼려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아나운서의 본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보를 전달하고 우리말을 지켜야 하는 아나운서의 입장에서는 언어와 관련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방송 환경이 공익적 논리가 약화되고 상업적 부분이 중요해져 보도·시사 프로그램마저 재밌게 만들고 있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은 "과거에 비해 방송에서 아나운서가 갖는 의미가 많이 퇴색된 경향이 있다. 과거 방송사에서는 신뢰와 공정성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재미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에 따라 아나운서의 언어 활용에 관해서 어느정도 관대해진 시대 흐름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나운서는 '객관적 진실의 전달자'로 상징돼 왔다. 그래서 가급적 감정 표현을 억제하면서 멘트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표준말로 표현한다. 그들은 '언어의 수호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전통적인 아나운서 상이 흔들리고 있다. '융합'을 지향하는 시대에 아나운서도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아나운서의 변신은 현실의 변화에 대한 '적응'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 입장에서는 다양한 모습의 아나운서들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변화가 아나운서 본연의 위치를 지나치게 흔들어서도 곤란할 것이다. 아나운서의 변화가 단순한 적응과정을 넘어 더 나은 '진화'과정이 되느냐 아니냐는 결국 아나운서 자신들과 대중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한인구 기자 in999@xportsnews.com

[사진 = 김성주, 유정현, 최송현, 오상진, 전현무 ⓒ MBC, 엑스포츠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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