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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리의 그린라이트] '양성애자' 이레너 뷔스트의 금메달이 특별한 이유

기사입력 2014.02.10 17:22 / 기사수정 2014.02.10 21:24

나유리 기자


[엑스포츠뉴스=나유리 기자] 굳이 그의 이름 앞에 '양성애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꼭 표기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이레너 뷔스트가 다른 곳이 아닌 러시아에서 세계 정상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10일(이하 한국시각) 뷔스트는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 스케이팅 센터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여자부 3000m에서 4분00초34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함께 출전한 28명의 선수들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였다. 이로써 뷔스트는 토리노, 밴쿠버에 이어 올림픽 3연속 금메달 획득에 성공할 수 있게 됐다.

'빙속 강국' 네덜란드 출신인 뷔스트가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된 것은 그다지 놀라운 소식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러시아에서 치러진 올림픽에서 이같은 성과를 냈다는 점에는 분명히 상징적 의미가 있다.

소치동계올림픽은 개막전부터 여러 이유로 시끄러운 대회였다. 그중에 하나는 러시아가 지난해 6월 '반동성애법'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비전통적 성관계와 동성애 선전을 금지한다"는 명목아래 '동성애 없는 사회' 구축을 지향하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러시아의 움직임에 당연히 많은 국가들의 반발이 있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소치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도 '반동성애법'의 영향이 컸다.

더욱이 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가 "스포츠 활동은 인간의 권리이며 어떠한 차별도 없이 올림픽 정신에 입각하여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올림픽 헌장'을 지키지 않는다는 지적도 등장했다.

이번 올림픽 출전 선수 중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식적으로 밝힌 선수는 총 7명이다. 지난 5일 동성애자를 위한 스포츠 매체인 '아웃스포츠'에 따르면 뷔스트 외에도 벨 브록호프(호주·스노우보드), 아나스타샤 벅시스(캐나다·스피드스케이트), 다니엘라 이라슈코 스톨츠(오스트리아·스키점프), 바르바라 예제르셰크(슬로베니아·스키), 셰릴 마스(네덜란드·스노우보드), 산네 판 케르호프(네덜란드·쇼트트랙) 등 6명의 여성 선수들이 커밍아웃을 했다.

뷔스트의 고국인 네덜란드는 지난 2001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동성 결혼이 합법화 된 곳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타인의 성적 취향에 관대하고,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들의 인권 보장이 가장 잘 된 곳이기도 하다. 7명의 커밍아웃 선수 중 3명이 네덜란드 출신임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올림픽이 열린 러시아의 분위기는 뷔스트를 비롯한 일부 선수들(커밍아웃하지 않은 선수들까지 포함해서)에게 껄끄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뷔스트의 금메달 소식은 한국을 비롯해 외신에서도 주목하는 뉴스가 됐다. 미국에서 개국한 아랍권 최대의 방송사인 '알자지라 아메리카' 역시 뷔스트의 금메달이 러시아에서 탄생한 의미에 대해 보도했다. '알자지라'는 "뷔스트의 승리는 '반동성애법'을 주장하고 있는 러시아가 국제적인 비판에 직면하게끔 하는 효과를 일으킨다"며 "심지어 러시아 당국은 지난 8일 소치 올림픽 개막식이 치러지던 당시 모스크바와 상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반동성애법 금지' 시위에서 14명 이상의 사람들을 체포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고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 '폭스스포츠' 등도 뷔스트가 가장 빛났던 순간을 보도했다. 경기후 인터뷰에서 뷔스트는 "1700만 네덜란드 국민들이 나의 승리를 응원했다"며 "이제 나는 압박감을 벗었다. 전 시즌을 통틀어 현재 가장 컨디션이 좋다. 그래서 난 내가 빛나야 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당당하게 소감을 밝혔다. 

양성애자인 뷔스트는 지난 2009년 처음으로 "여자친구가 있다"고 커밍아웃한 후 국제 대회에 참석할 때 마다 경기 외적인 내용, 그러니까 성적 취향을 중심으로 한 사적인 질문에 시달려 왔다.

지난 밴쿠버올림픽 당시 뷔스트는 "나는 스케이팅에 관한 이야기만 하고 싶다. 당신들은 스벤 크라머(네덜란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에게는 연애에 대해 묻지 않는데, 왜 나에게만 묻는지 모르겠다. 내가 게이와 사귀고 있다고 해도 당신은 질문하지 말아야 한다"고 언론을 향해 통쾌한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엄청난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뷔스트는 소치올림픽에서 '게이' 선수 중 최초로 메달을 획득한 선수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다. 이제 1000m와 1500m 출전을 앞두고 있는 그가 어떤 성적을 남길 수 있을지, 또 시대를 역행하는 러시아의 억지 주장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

[사진=이레너 뷔스트 ⓒ 소치올림픽 중계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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