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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서의 삐딱하게] '집으로 가는 길'은 전도연에서 시작해 전도연으로 끝난다

기사입력 2013.12.23 10:25 / 기사수정 2014.02.27 17:02

정희서 기자


[엑스포츠뉴스=정희서 기자]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극장가를 찾아왔다. 전도연은 '집으로 가는 길'을 통해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절대 과장되지 않음을 증명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마약 운반범으로 오인돼 대서양 외딴섬 마르티니크 감옥에 2년을 머물러야했던 평범한 주부 송정연과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철저하게 시간순으로 흘러간다. 배경과 어디서 이야기가 진행되는지를 자막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정연의 고난을 관객이 따라가게 해 한국에 돌아가기까지 힘든 여정과 정연의 지친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장미정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는 그토록 집에 가고 싶어 했지만 갈 수 없었던 '정연'을 통해 외교통상부의 무관심과 미숙한 일처리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이 영화가 우리의 마음 한구석을 콕콕 찌르는 이유는 실화에 충실히 재현했기 때문이다. 방은진 감독은 실화의 주인공이 쓴 일기를 참고하며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400만 원을 벌기 위해 마약운반 사건에 휘말리게 된 정연은 지극히 우리들과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정연은 남편이 보증을 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손을 벌벌 떠는 심약한 우리네 주부였다. 프랑스 공항에서 현행범으로 꼼짝없이 잡혀 유치장에 갇혔을 때도 그는 이것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영화는 사실 재현에 있어 외교통상부를 비난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저렇게까지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종배와 정연을 대하는 대사관 직원들의 태도는 관객들의 부아를 치밀게 했다. 그들은 애처롭게 도움을 청하는 정연과 남편 종배에게 '범죄자 주제에', '마약아줌마'라는 말을 달며 조롱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파리를 방문한 국회의원들을 위해서는 레스토랑의 등급까지 꼼꼼히 챙겨댔지만, 정연의 입과 귀가 돼줄 통역하나 마련해 주지 않았다. 정연을 감옥에서 꺼내줄 단 하나의 '희망'인 재판 자료조차도 허무하게 분쇄기에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영화 말미 정연이 한국에 돌아오고 난 뒤 대사관 직원의 전화는 어이없는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방은진 감독은 끝까지 비판의 시선을 놓지 않으며 대사관의 잘못을 상기시켰다. 이에 대해 방은진 감독은 "아주 예민하게 방점을 찍고 싶었다"며 "실제 조사 결과 대사관의 잘못이 밝혀지기도 했다. 다시 들춰 너무 이슈가 되는 것보다는 앞으로 이런 일이 없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프랑스 대사관-교도소' 되풀이되는 억울한 상황은 관객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한국에서 남편 종배와 검찰들이 범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재판이 진행돼도 정연의 한국행은 그려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제대로 된 통역 하나 없이 재판이 1년 이상 늦춰지고 영화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무력감은 보는 관객들도 지치게 하였다.

영화는 종배를 통해 그 지루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음 또한 전달한다. 결국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데 큰 힘이 된 건 국가도 아닌 '네티즌'이었다. '북한에 핵폭탄이 있다면 한국에는 네티즌이 있다'라는 대사와 함께 여론이 들끓는 모습을 통해 정연의 사건이 해결되는 것을 압축적으로 설명했다.

너무 직접적인 설명과 수만 명의 네티즌의 얼굴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장면은 황당한 웃음과 함께 몰입도를 떨어뜨려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영화에는 교도소 내 성추행 장면과 비 오는 날 월세방에서 쫓겨나는 장면 등 극적인 요소들이 군데군데 삽입됐다. 한국형 신파물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장면들과 무능력하고 감정이 앞서는 종배의 뻔한 캐릭터는 관객에 과잉된 눈물을 자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일련의 아쉬움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전도연의 힘이었다. 전도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보기 흉할 정도로 말라가고 초췌해지는 정연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특유의 푼수끼로 절망의 상황 속에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의 모습은 가슴 절절한 모성애 그 자체였다.

관객은 131분이라는 긴 상영시간동안 실화의 주인공 장미정 씨가 겪었을 이야기에 간접적인 경험을 하게 됐다. 그에 대한 관심은 저절로 실존 인물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고, 방은진 감독은 장미정의 근황을 전하며 영화를 끝마쳤다.

물론 실제보다 과장된 실화 영화라는 점은 참작하고 봐야 한다. '집으로 가는 길'은 실화를 뛰어 넘어 아내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편 종배와 머나먼 타국에서 딸 사진 하나로 희망을 잃지 않는 정연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평범한 정연을 특별하게 만든 것도 가족에 대한 사랑이었다. 작고 갸날픈 엄마의 눈물겨운 여정은 너무 익숙해서 잠시 잊고 있었던 '가족애'를 떠올리게끔 한다. 남루한 모습마저 사랑스러운 전도연의 연기를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전도연은 단언컨대 '집으로 가는 길'이 필모그래피 사상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

정희서 기자 hee108@xportsnews.com

[사진 = 집으로 가는 길 ⓒ CJ엔터테인먼트]

정희서 기자 hee108@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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