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인간은 끊임없이 쾌락을 갈구하는가, 쾌락은 무엇인가, 왜 쾌락에 집착하는가그리고 왜 그것을 가족과 공유하려 하는가. 사람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이고, 성기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가족은 무엇이고, 왜 외도에 분노하는가, 그리고 왜 외도하는가. 영화를 보면서 내가 끊임없이 던져야 했던 질문들이다. 물론 누구도 답을 해주지 않았고 여전히 답을 얻지 못했다.
김기덕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쾌락과 고통
“쾌락과 고통은 접점이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고통의 끝에 쾌락이 있고, 쾌락의 끝에 고통이 있다. 아주 건전하고 일반적으로 말하면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하지 않는가.
여기서 인내를 고통으로 살짝 바꾼다면 적당히 받아들일 수 있는 교훈적인 말이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은 이 일반적이고 건전한 것을 매우 불편하고,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강도의 차이일 뿐 저 격언과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서 나오는 것들의 차이가 무엇인가?
김기덕 감독이 초기 작품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보여주었던 극단적인 괴로움과 고통은 결국 그 고통이 쾌락과 맞닿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고통은 적당했을 때가 아니라 아주 극심했을 때 비로소 쾌락과 맞닿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여태까지는 김기덕 감독은 그것을 말해주지 않고 관객들이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며 극단적인 고통만을 집착적으로 보여주기만 했다면 뫼비우스는 친절하게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정확하게는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보여주는데 이해하기 쉽게 보여준다. 그래서 말해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사람이 왜 그렇게도 쾌락을 갈구하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도 구하지 못했다. 물론 감독도 그 답을 구하고자 묘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쾌락을 갈구하는 인간의 본능이고, 그 본능은 쉽사리 누그러뜨릴 수 없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엄청난 욕구와 본능이 가지고 올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 그리고 그 욕구와 본능을 위해 인간이 하고 있고, 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과 고통을 충실하게 보여주고만 있다.
김기덕 감독의 캐릭터들
김기덕 감독 영화의 캐릭터들은 괴물이다. 괴물이 아니었다면 괴물로 변해간다. 감독은 우리가 쉽사리 접할 수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뫼비우스 속 주요 캐릭터들은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 미묘한 캐릭터들의 표정에서 나는 괴물을 보았다. 과연 내가 그들을 괴물이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내 안에 깊숙하게 이미 자리 잡고는 어떤 욕망일지도 모르는 것들.
의식에 덮인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피해 다른 사람들 몰래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 김기덕은 자신이 묘사하는 극단적인 상황들에 대하여 보는 이들이 불편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지만 때로는 현실이 더 충격적이고 잔인할 때가 있다.
뫼비우스의 띠에 올라선 가족
뫼비우스에서 나오는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반적이지 않은 일들은 결국 아들에게 지은 죄, 미안함, 연민 그리고 사랑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결국 자식은 나의 분신이자 내 사랑의 분신이다. 아들에 대한 엄마와 아빠의 마음, 아내에 대한 엄마에 대한 남편에 대한 아빠에 대한 마음은 곧 나에 대한 사랑이자 증오, 나에 대한 질투이다.
이 즈음에서 김기덕 감독의 작의가 이해가 된다. 결국 '나에 대한 사랑, 증오, 질투'이라는 말이 이렇게 나오는구나. 영화를 보면서는 김기덕 감독을 잘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리고 보고 난 후에도 작품 의도로 쓰인이 이 영화와 무슨 상관일까 고민했는데…영화를 보고 나서 곱씹어보니 김기덕 감독의 작의에서 보았던 말들을 나도 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잘 전하고 있다. 아주 명확하게!!
욕망의 대표, 성. 합법적인 성욕의 분출 장소이자 대상인 가족. 그리고 그 성욕의 결실. 사랑이자 분노로 엮인 가족. (물론 성욕으로만 이루어진 결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뫼비우스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그 욕망의 도구이자 욕망의 결실을 목구멍으로 삼켜버린 그 순간, 그 처음 순간, 가족은 모두 하나이자 괴물이 되는 것이다. 욕망의 결실을 목구멍으로 삼켜버리는 그 신이 이 영화의 작품의도는 물론 영화의 끝을 말해주고 있었다.
김기덕 감독의 대중성
뫼비우스는 피에타에 비해서 불편하다. 그리고 피에타에 비해서는 덜 대중적이다. 그러나 피에타 이전의 김기덕 감독 작품들에 비해서는 매우 대중적이다. 앞서 여러 번 언급하였듯이 대사는 없지만 모든 것을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김기덕을 반대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대중적이지 않은 김기덕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김기덕감독은 그 전달 방법과 묘사에 있어 대중들을 매우 불편하고 괴롭게 만들지만, 그러한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인간 심연에 있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전작들에 비해 김기덕 최고의 작품! 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그의 작품 의도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불편함과 괴로움 때문에 쉽게 권할 수 없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참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김기덕 감독이 우리에게 던지는 인간 본연에 대한 질문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글] 이해랑 객원 칼럼니스트 · 대중문화부 enter@xportsnews.com
[글] 이해랑 객원 칼럼니스트 · 대중문화부 ent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