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나유리 기자] 누구도 쉽게 황폐한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그래서 '엘리시움' 속에 그려진 2154년 지구의 모습은 꽤 충격적이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땅이 인간을 수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공기는 탁해졌으며 질병과 가난은 한 곳에 뒤엉켰다. '푸른별' 지구가 더이상 안식처가 되지 못하자, 많은 돈을 가진 1%의 상류층 인간들은 지구 위에 자리한 또다른 행성 '엘리시움'으로 터전을 옮겼다.
주인공 맥스(맷 데이먼 분)는 고아원에서 지내던 어린 시절부터 '엘리시움'으로 가는 미래를 꿈꿔왔다. 어느날 성실히 일하던 공장에서 치명적인 방사능에 노출되지만 그는 어떤 보상이나 위로도 받지 못하고 대신 "앞으로 5일 후 죽는다"는 로봇의 차가운 선고만 손에 쥔채 집으로 향한다.
죽음을 목전에 둔 '맥스'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심정으로 '엘리시움'을 향한 오래된 꿈을 닷새 안에 실현하려고 마음 먹는다. 이를 위해 지하세계의 지배자 스파이더(와그너 모라)를 찾아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엘리시움'은 영화적 스케일이 거대하다. 그런만큼 '눈 호강'은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맷 데이먼과 샬토 코플리를 주축으로 한 화려한 액션과 지구와 '엘리시움'을 넘나드는 공간 표현은 가히 아름답고도 웅장하다.
그러나 등장 인물들 중에 크루거(샬토 코플리 분)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캐릭터가 평면적이고 밋밋한 점이 흠이다. 11kg짜리 원격제어 장비를 입은 맷 데이먼의 몸짓이 '빈 몸'보다 둔하게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하더라도, 결말에서 '맥스'의 선택은 '영웅'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억지 포장된 느낌이 강해 부담스럽다.
'엘리시움'의 장관 '델라코트'로 출연한 조디 포스터의 비중이 미미한 점이나, 애매한 러브 라인만 남긴 '프레이'(앨리스 브라가 분)의 역할 역시 아쉬움을 금할 길 없다. 그래도 '스파이더'를 연기한 브라질 출신 배우 와그너 모라를 발견케 해준 것은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사실 '맥스'가 '엘리시움'으로 향하는 까닭은 자명하다. '엘리시움'에는 어떤 까다로운 병(病)도 수 초 안에 치료할 수 있는 치료 기계가 집집마다 구비되어 있다. '엘리시움' 시민권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든, 언제든 이용이 가능해 빈민처럼 지내는 지구 위 사람들은 이를 통해 아픔없이 살아보고자 '엘리시움'에 가기를 소망한다. '맥스'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치료 기계와 맑은 공기, 휴양지 같은 풍경을 제외하면 '엘리시움'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세세히 드러나지 않아, 이 설정 자체를 미국의 의료 보험 제도를 비판하는 도구로 사용한 듯한 느낌도 든다. 미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의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비싼 보험료와 청구서 폭탄 탓에 보통 사람들은 전문의의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엘리시움'은 의료 보험 문제 뿐 아니라 불법 이민자 문제, 경제적인 지위로 나뉜 사회 계층 문제 등 2154년이 아닌 지금, 2013년의 우리 모습을 투명하게 반영하고 있는 듯 하다.
닐 블롬캠프 감독이 'SF 영화의 기준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고 극찬을 받으며 할리우드에 데뷔한 전작 '디스트릭트 9'(2009)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그는
다양한 인종이 엉켜 살아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답게 외계인들을 등장시켜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재치있게 풀어냈었다. 미래를 배경으로 삼아 현재를 이야기하는 셈이다. 덕분에 영화를 보는 우리가 신랄하게 꼬집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디스트릭트 9'의 그림자가 지나치게 짙어 '엘리시움'이 다소 밍밍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블롬캠프 감독은 퇴색되지 않은 자신의 날카로움만큼은 아쉬움없이 표현했다. '올 여름 최후의 블록버스터'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작품. 29일 국내 개봉.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
[사진 = '엘리시움' 스틸컷 ⓒ 소니 픽쳐스 릴리징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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