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승현 기자] 수많은 정상급 가수 중에도 '국민'이란 영예로운 타이틀을 하사받기는 결코 쉽지 않다. 가장 기본적인 가창력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재능, 다수의 히트곡, 그리고 이 내용이 반영된 결과물인 수상 내역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신비감과 거리가 먼 대중적인 친화력과 인기 유지 능력, 부가적인 음악적 능력 등이 거론되곤 한다. 이런 면을 모두 섭렵한 가수는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며 '국민가수'로 가는 길은 그만큼 험난하다.
항상 무대의 마지막은 거물급 인사들이 장식하곤 한다.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있지만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이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이 사람이라면 인상적인 무언가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크게 작용한다. 지난 2011년 3월 첫 방송된 MBC '나는 가수다'의 첫 출발도 그랬다. 이소라, 김범수, 박정현, 윤도현, 백지영, 정엽 등 날고 긴다는 고수들이 있었지만 마지막 무대는 '국민가수' 김건모가 장식했다. 그는 자신의 데뷔곡인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를 여유 있게 소화하며 관록을 과시했다.
김건모라는 존재만으로 '나는 가수다'의 순항이 예상됐지만 예기치 못한 1라운드 탈락이란 청천벽력이 전해졌고 그 누구보다 동료 가수들이 더욱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어진 재도전 논란은 대중의 심판을 유도했고 그렇게 김건모는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퇴장했다. 이후 김건모는 다시 '나는 가수다2' 무대에 섰고 하차한 뒤 1년 만에 종합편성채널 JTBC '히든싱어'에 출연했다.
'히든싱어' 제작진은 3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건모 섭외에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재도전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었다"며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란 점과 다시 방송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건모가 기존에 입었던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건모는 1일 방송된 '히든싱어' 시즌1 마지막 경연 무대에 섰다. 그리고 왜 제작진이 삼고초려를 하면서 자신을 불러들이려는지 가치를 증명했다. 감기에 걸려 링거를 맞고 촬영을 강행하면서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모창능력자들의 실력에 혀를 내두르긴 했지만 말이다.
시즌1 마지막 방송에 유종의 미를 거두려는 제작진의 노림수는 통했다. 감동과 재미를 모두 잡는 '히든싱어'에 최적화된 가수였다. 토크 중에는 어린아이처럼 미소 짓고 무대 뒤로 퇴장하려는 천진난만함을 보이며 좌중을 웃겼고 경연과 모창능력자와의 합동 무대에서는 뮤지션의 진지한 분위기를 풍겼다.
각 라운드 미션곡이 공개됐고 특히 4라운드에서 '히든싱어' 최초로 김건모 메들리가 경연곡으로 주어졌다. 또 토크 중간마다 끊임없이 곡들이 흘러나왔다. 1992년 데뷔 이후 최정상의 자리를 점하고 유지하면서 불러왔던 곡들은 다수의 시상 내역이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예전에 방영됐던 KBS '가요톱텐'에서 당시 정말 힘들다는 5주 연속 1위를 '첫인상', '핑계', '잘못된 만남'로 석권한 그의 위용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히든싱어' 출연진들이 나누는 이야기와 가볍고 진중한 분위기에 맞게 배경음악으로 깔린 김건모의 곡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국민가수의 발자취를 느끼게 한다. 오히려 프로그램이 김건모의 히트곡을 모두 담지 못할 정도였다.
노래를 참 맛깔나게 부른다는 평을 받는 김건모의 음색과 가창력을 따라 하기 쉽지 않다. 모창능력자의 도전이 거셌지만 김건모는 이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또 '나는 가수다'에서 김건모의 노래를 재해석했던 김조한, 김연우, 옥주현 등 프로 가수들조차도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며 김건모의 향기를 지우지 못했다. '제2의 김건모'에 대한 하마평만 오르내리는 이유다.
방송 초반에 다른 가수처럼 김건모는 모창능력자들의 실력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치 "네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라고 핑계를 대며 금세라도 도망칠 기세였다. 특유의 너스레는 여전한 채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국민가수' 자체를 보여줬고 모창능력자들을 따뜻하게 격려하는 큰 형님의 면모를 보였다.
김건모는 방송 말미에 "시원섭섭하다"며 경연을 마친 소감을 전했다. 이어 "내 나이 또래 가수들이 힘이 없어졌다"며 "중견 가수들의 음악 활동이 활발해졌으면 한다"고 말해 장내를 숙연케 했다. 이렇게 국민가수는 모창능력자뿐 아니라 자신도, 그리고 자신과 함께 영광의 세월을 누렸던 동료 가수들도 히든싱어임을 조명하는 배려심을 보였다.
김건모는 과거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해 "하늘을 날고 싶다"며 자신의 고민을 밝혔다. 당시 이러한 발언이 무성의하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히든싱어'에서의 김건모는 분명 달랐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자신의 곡을 재조명했다. 이렇게 가슴 속 응어리였던 고민을 해결하고 비상할 수 있었다. 김건모에게 '히든싱어'는 절대로 잘못된 만남이 아니었다.
김승현 기자 drogba@xportsnews.com
[사진 = 김건모, 전현무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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