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신원철 기자] 때로, '장래희망'에는 정작 희망이 없다. 어릴 적 장래희망 칸에 적어 넣던 그 꿈에는 이제 가격표가 붙었다. 누군가의 꿈은 다른 어떤 꿈보다 더 싸게 팔린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이유로 '꿈 바겐세일'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대중문화계는 그렇게 '싸게 팔린 꿈'을 먹고 자라고 있다.
A는 영화감독을 꿈꿨다. 2000년대 중반 대학에 입학한 그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전공을 택했지만 틈틈이 휴학을 반복하며 뮤직비디오부터 광고, 영화까지 닥치는 대로 현장경험을 쌓았다. 시나리오 작법부터 음향 이론까지 공부도 할 만큼 했다. 전공과 영화라는 '두 집 살림'을 해온 탓에 9년이 지나서야 졸업장을 받아든 그는 아직 영화 현장에 남아있다.
지난 2월, A에게 안부를 물었다. 졸업식이 있던 날이었다. 하지만 그는 '현장'에 있다고 했다. "돈 벌어야지". 그가 남긴 메시지였다. 꿈에 다가가기 위해 선택한 현장 경험이 이제는 당장의 '생계'를 위해 묶여 있어야 하는 '족쇄'로 변했다. 뒤돌아가기에는 늦었고,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벽이 너무 높아 보였다.
A를 보며 과거 인터넷에 떠돌던 글이 떠올랐다. 당시 꽤 유명한 인디밴드의 멤버였던 이가 '영화감독을 꿈꾸는 20대 청년'에게 쓴 글이었다. 그는 "영화도 하고 싶고 뭣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청년에게 "그러니까 네가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다"라며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대기업은 아니라도 적당한 회사에 들어가서 틈틈이 영화공부를 하다가 40대쯤 되면 사회적으로 안정된 지위와 함께 영화 경험도 쌓고 입봉(감독으로 데뷔하는 것)도 할 수 있다"고 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글을 모아 책으로 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역시 웃었다. 아마 A는 웃음조차 짓지 못했으리라.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에 매달렸던 B. 그는 이력서를 넣은 회사 가운데 내심 1순위로 꼽았던 곳에 합격했다.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목표로 하는 대기업도 중견기업도 아니었지만 '업계'에서는 나름 이름이 난 회사였다. 문제는 이 업계가 인디음악 시장이라는 점. 먹고 살기 힘든 뮤지션들과 함께 일하는 만큼 B의 생활도 넉넉하지는 않다. 이 판에는 '투 잡'을 뛰는 뮤지션들도 더러 있다지만, B는 그럴 시간이 없다.
B는 인턴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근한 첫 주부터 야근을 밥먹듯 했다. 야근 수당 따위는 기대할 수도 없었다. 출근 시간은 있는데, 퇴근 시간은 없었다. 인턴 꼬리표를 뗀 지금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공연기획자를 꿈꾸는 B는 쉬는 주말이면 공연이 열리는 클럽을 찾아다닌다. 일과 일상의 경계가 없다. 그런데도 그의 임금은 싸도 너무 싸다. 문제는 그것이 '업계 평균' 임금 수준이라는 점이다.
랩퍼 더콰이엇은 'The Greatest' 가사에서 "내가 억대로 벌 때 넌 대체 뭘 한거야 그냥 놀고 있었지"라고 썼다. 물론(그가 요즘들어 반복하는 것처럼) 다른 의미 없이 그저 부(富)를 자랑하기 위해 쓴 가사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아무리 몸을 혹사하고 발버둥쳐도 하루 하루 넘기는 게 힘겨운 이들이 많다. 어쩌면 대중문화계가 겉보기에 화려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실속이 없기 때문에 그 격차가 더 커보이는지도 모르겠다.
A와 B처럼 '꿈을 먹고 사는' 젊은이들을 향해 "그렇게 힘들고 억울하면 그만두면 되잖아?"라고 반박하는 이들도 있을 줄 안다.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려면 그 정도 고생은 감수해야지"라며 거드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지금 대중문화계에서 성공한 이들도 모두 그런 험난한 과정을 겪었어"라며 혀를 차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인 '에반게리온'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대용은 얼마든지 있다". '억울해서 관둔' 이들의 자리는, 다시 그 자리를 선망하는 이들이 채운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노동절인 1일, 알바연대는 서울 종각역 부근에서 '최저시급 1만원 보장'을 내걸고 집회를 열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알바와 다를 바 없는 임금을 받고 있는 대중문화계 종사자들도 한 마음으로 응원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꿈을 땡처리 하지 말아달라고.
신원철 기자 26dvds@xportsnews.com
[사진 =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사진은 본 기사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엑스포츠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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