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년의 유산
[엑스포츠뉴스=김현정 기자] 한 여자를 놓고 두 남자가 싸운다. 얽히고설킨 삼각관계다. 보통 멜로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MBC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도 이러한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착하디착한 채원(유진 분)을 두고 부족할 게 없는 재벌 2세 세윤(이정진)과 또 다른 부잣집 아들 철규(최원영)가 사사건건 부딪히며 삼각관계를 공고히 한다. 여기에 철규의 동생이자 세윤을 짝사랑하는 주리(윤아정)와 철규의 새로운 부인 홍주(심이영)의 개입으로 단순한 삼각관계는 가지치기를 하고 인물들의 갈등도 정점을 찍는다.
이혼한 여자와 백마 탄 왕자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 이를 훼방 놓는 남녀 주인공의 방해공작은 그동안 많은 멜로드라마의 주된 요소였다.
'백년의 유산' 역시 겉으로는 가족드라마를 표방하지만 실은 멜로드라마 속 사랑의 기본구도를 충실히 따른다. 집안 배경과 조건의 격차가 심해질수록 갈등은 커지고 결말에 대한 기대감도 증폭시킨다.
이 드라마는 초반부터 시어머니 방영자(박원숙)와 며느리의 도를 넘은 고부갈등, 사랑 하는 사람에 물불 안 가리는 철규 남매의 악행을 담으며 '막장' 드라마 대열에 합류했다(비록 시청률은 30%를 목전에 두며 승승장구 하고 있지만).
하지만 '백년의 유산'에서 주인공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훼방꾼들은 타 드라마의 훼방꾼들과 조금 다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얼굴로 치밀한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과 달리 철규와 주리의 악행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특히 철규는 '악인'의 정해진 공식을 깨트린 별난 캐릭터다. 악인은 악인인데, 채원에 대한 삐뚤어진 집착으로 찌질한 행동을 일삼는다. 자살 소동을 벌여 채원을 별장으로 끌어들이고 다시 시작해보자고 애원하는 그의 모습은 웃기다 못해 실소가 나온다. 간통죄를 이용해 이혼을 하고 다시 채원과 합칠 궁리를 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채원을 쫒아낸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정작 엄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찌질남 철규는 키다리 아저씨 노릇을 하는 세윤보다 더 큰 매력을 발산한다.
세윤은 도움이 필요한 채원을 여러 방면에서 도와주고 위급한 상황이 올 때마다 채원 돕기에 나서는 훈훈한 인물이다. 그런데 정작 시청자들은 백마 탄 왕자인 세윤보다 열혈 마마보이 철규에게 호감을 느낀다. 찌질하지만 계산적이지 않은 철규의 사랑이 더 진실성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반대하자 채원을 있는 그대로 봐달라며 애원하는 세윤에 비해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철규가 더 현실적인 캐릭터로 그려진 탓도 크다. 그는 부잣집에 한 명씩 있을 법한 철 없는 사춘기 학생 같은 모습으로 주위 인물에게 민폐를 끼치지만 결코 밉지 만은 않다.
최근 들어 차츰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애초에 주리의 악행을 알면서도 귀 얇고 줏대 없이 휘둘린 세윤이 오히려 더 찌질하다면 찌질할 터다.
세윤의 생모가 춘희(전인화)로 암시되는 상황에서 채원과 세윤에게 더 큰 고난이 닥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부모의 반대에 세윤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세윤과 철규를 향한 시청자들의 호불호가 더욱 판이하게 갈라질 듯하다.
또 채원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려는 영자의 음모에 따라 철규의 집착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그 자체는 비뚤어진 집착이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철규의 일관된 마음만큼은 너무나 솔직해서 연민이 들게 한다. 부인 홍주에게 "내 마음 속에는 채원이 외에는 빈 방이 없다"며 이불을 싸들며 나가는 장면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러니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여전히 착하고 명랑한 채원과 외모, 재력, 능력, 심성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엘리트남 세윤의 비현실적인 신데렐라 로맨스보다, 찌질이 철규와 가식적인 철규 모의 악행이 더 기다려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사진 = 백년의 유산 ⓒ 방송화면]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