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우리 시대의 거장 쿠엔틴 타란티노는 '영화 발명가'로 표현할 수 있다. 자신이 인상적으로 봤던 영화의 명장면과 대사를 실험 재료로 사용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독창적인 발명품을 완성해낸다.
'모방의 천재성'은 물론 '창작의 천재성'까지 겸비한 그는 순식간에 거장의 대열에 합류했다. 타란티노의 등장으로 인해 '장르 영화'는 새롭게 평가를 받았고 소위 'B급'으로 불리는 하위문화까지 영화의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냈다.
'장르 영화의 대가'로 불린 그는 여러 영역에 걸쳐 과감한 실험을 시도했다. 홍콩 느와르 영화와 B급 문화의 절묘한 조합인 '저수지의 개들'(1992)과 '펄프 픽션'(1994), 60~70년대 TV드라마와 쇼프로그램에서 영향을 받은 '재키 브라운'(1997), 아시아 액션 영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홍콩 무협 영화를 새롭게 해석한 '킬빌1'(2003), '킬빌2'(2004), 전쟁 영화와 첩보물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2009)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작품은 다양한 장르가 새롭게 조합돼 온전한 '타란티노의 영화'로 완성됐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크리스토프 왈츠)과 각본상을 수상한 '장고 : 분노의 추적자'도 이러한 계보를 잇고 있다. 이번에 타란티노 감독이 시도한 영역은 '서부극'이다. 어린 시절부터 존 웨인이 출연하는 정통 서부극에 심취했던 그는 '스파게티 웨스턴(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서부영화)'에도 열광했다.
오리지널 '장고'는 1966년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작품이다. 황량한 사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장고 : 분노의 추적자' 오프닝은 오리지널과 흡사하다. 붉은 색의 글씨로 영화의 타이틀과 배우, 스텝들의 이름이 나오는 점은 오리지널 영화와 똑같다. 배경 음악인 메인타이틀 곡 '장고'도 똑같이 흐르고 있다.
다만 장고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오리지널 영화에 등장했던 장고(프랑코 네로 분)는 관을 끈 상태에서 고독하게 사막을 홀로 걸어간다. 그러나 '장고 : 분노의 추적자'에 등장하는 장고(제이미 폭스 분)는 밧줄이 묶이고 등에는 채찍 자국이 난 상태에서 다른 노예들과 함께 끌려가고 있다. 그리고 그는 흑인이다.
장고의 권총, 노예 제도의 위선에 방아쇠를 당기다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주제는 '복수'다. '킬빌'의 잔혹한 검객인 '브라이드'(우마 서먼 분)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빌'(데이비드 캐러딘 분)을 향해 복수의 칼을 내민다. 이 영화 이외에도 타란티노의 작품에 등장하는 몇몇 캐릭터도 복수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을 선택한다.
흑인 노예인 '장고'는 복수보다 아내를 구출하기 위해 권총을 잡는 '로맨티스트'다. 하지만 아내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백인우월주의자'들과 마주친다. 장고는 이런 현실을 목도하면서 흑인 노예로 살아온 수치감과 좌절을 뼈저리게 느낀다. 결국 자신의 가치를 돈 몇 푼으로 환산하는 백인들을 향해 복수의 총구를 겨눈다.
이 영화는 1850년대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당시 흑인들은 말을 탈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탄압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서 노예의 비참한 삶을 살아가던 장고는 현상금 사냥꾼인 닥터 슐츠(크리스토프 왈츠 분)의 도움으로 총잡이의 인생을 시작한다.
닥터 슐츠와 장고는 서로의 뜻이 맞는 것을 확인한 뒤 동지가 된다. 이들은 집요한 추적 끝에 장고의 아내인 브룸힐다(케리 워싱턴 분)가 남부 지역 거부 중 한 명인 켈빈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저택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흑인 노예 상인으로 위장한 장고와 닥터 슐츠는 켈빈 캔디와 거래를 한다. 닥터 슐츠는 브룸힐다를 안전하게 구출하기 위해 전략을 짜내지만 캔디 가(家)의 집사인 스티븐(사무엘 L 잭슨)에게 적발된다. 자신을 속이려했다는 점에 분노한 캔디는 브룸힐다를 미끼로 삼아 닥터 슐츠와 장고를 위협한다. 그리고 장고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이 펼쳐진다.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오리지널 영화 제목과 오프닝 씬 그리고 메인 테마와 몇몇 곡을 그대로 썼지만 이를 제외하면 오리지널 '장고'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다. 타란티노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장고의 리메이크 영화라고 여기는데 나는 처음부터 장고를 리메이크할 생각이 없었다. 오리지널이 유명해 장고란 이름으로 발표된 작품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오리지널과는 상관없지만 장고가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었고 장고 시리즈에 한 편을 보태게 돼 너무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타란티노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들이다. 그는 '캐릭터들의 수다'를 통해 사회와 이념의 모순을 통렬하게 비판해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크리스토프 왈츠가 연기한 닥터 슐츠다. 치과 의사 출신으로 현상금 사냥꾼인 그는 거대한 치아 모형이 달린 마차를 끌고 다닌다. 그의 장점은 총 솜씨가 아니라 현란한 말 재주다. 그는 그럴듯한 말로 상대를 현혹시킨 뒤 기습적으로 상대방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마차에 달린 치아 모형은 '궤변론자' 닥터 슐츠의 상징물이다.
독일 출신인 그는 백인이지만 미국의 노예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노예였던 장고를 최고의 총잡이로 완성시킨 그는 "네가 아내를 찾으려면 자유인이 되어야한다"라며 자아를 일깨워준다. 캔디 가의 저택에서 펼쳐지는 닥터 슐츠와 켈빈 캔디의 '입씨름'은 이 영화의 백미다.
배우들의 놀라운 열연, 타란티노의 독특한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다
타란티노의 영화는 주연보다 조연들의 역할이 빛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저수지의 개들'의 마이클 매드슨과 팀 로스, '펄프 픽션'의 사무엘 L 잭슨, '킬빌'의 데이비드 캐러딘, 그리고 '바스터즈'의 크리스토프 왈츠까지 인상적인 조연배우들의 활약은 그의 영화의 특징 중 하나다. '장고 : 분노의 추적자'도 마찬가지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거머쥔 크리스토프 왈츠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다. 등장인물들 중 가장 많은 대사를 가진 캐릭터인 닥터 슐츠는 장고와 함께 처음부터 후반부까지 극의 흐름을 이끈다. 왈츠는 전작인 '바스터즈'에 이어 타란티노 영화에 다시 출연했다.
가장 큰 관심을 받은 배우는 '악인'으로 변신을 시도한 디카프리오다.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들 중 악역과는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배우가 악인으로 등장해 충격을 던진 적이 있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1968)에서 헨리 폰다를 악역으로 등장시켰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배우 중 한 명이었던 폰다가 어린 아이마저 가차 없이 살해하는 악한으로 나타나는 장면은 매우 강렬했다.
타란티노도 할리우드 톱스타 중 한 명인 디카프리오에게 악역을 맡겼다. 디카프리오는 "그동안 주로 해보지 않은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걱정도 했지만 타란티노 감독과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또한 사무엘 L 잭슨과 제이미 폭스 등 동료 배우들도 나에게 큰 힘을 줬다"고 밝혔다. 디카프리오는 닥터 슐츠를 연기한 왈츠와 더불어 최고의 조연 연기를 해냈다. '양심을 가진 악인'이 아닌 '악질 중의 악질'을 연기한 디카프리오는 그동안 틀에 박혔던 자신의 이미지를 극복해냈다.
이들 외에도 캔디 가의 충복한 집사인 스티븐을 연기한 사무엘 L 잭슨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다. 잭슨은 '펄프 픽션', '재키 브라운'에 이어 세 번째로 타란티노의 작품에 출연했다.
몇몇 거장들은 꾸준하게 작품을 발표할 경우 간혹 슬럼프에 빠진다. 그러나 타란티노는 아직까지 자신의 건재함을 유지하고 있다. 장르 영화의 조합을 통해 전혀 새로운 결과물을 완성시키는 그의 재주는 여전히 최고 수준이다.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2시50분의 런닝 타임을 가지고 있지만 원래는 4시간짜리 영화였다. 타란티노는 "조만간 긴 버전의 영화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하며 '장고 : 디렉터스컷'의 발표 가능성을 한층 높였다. 지난 21일 한국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현재 15만의 관객을 모으며, 국내에서 개봉된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 중 가장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사진 = 장고 : 분노의 추적자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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