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0-05 14:48
스포츠

[홍성욱의 스포츠라운지] 고개 숙인 KBL, 다 버리고 '농구' 하나만 살려라

기사입력 2013.03.13 16:24 / 기사수정 2013.05.08 16:55

홍성욱 기자


[엑스포츠뉴스=홍성욱 기자] 남자농구가 죽어가고 있다. 숨통이 끊어질 지경이다. 11일 밤 원주 동부 강동희 감독이 국민체육진흥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됐다. 12일에는 감독직도 내려놨다. 현직 프로팀 감독이 구속된 건 사상초유의 일이다.

강 전 감독은 2011년 2월부터 3월 사이 브로커 2명으로부터 4700만원을 받고 4차례에 걸쳐 승부조작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는 이제 시작이다. 언제 어디서 끝날지 모른다. 고구마 줄기처럼 파면 팔수록 계속 나올까 우려스럽다. 이 과정에서 다른 농구인이 소환될 가능성도 있고, 다른 종목으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 이미 축구 배구 야구는 크고 작은 승부조작에 내홍을 겪은 바 있다.

농구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남자농구를 주관하고 있는 KBL(한국농구연맹)은 12일 한선교 총재와 10개 구단 대표 명의로 사죄의 글을 올렸다. KBL은 현 상황을 97년 프로농구 출범 이래 가장 큰 위기로 인식하고 있으며, 승부조작에 대해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불관용의 원칙에 따라 엄정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13일에는 이사회를 열어 드래프트 제도 등을 손질했지만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모양새다.

사실 강 전 감독의 구속사태 이전에도 농구계는 심각한 위기상황에 놓여있었다. 내년 시즌 쏟아지는 대어급 신인을 차지하기 위해 어차피 우승을 못할 바에는 6강 플레이오프 진출보다 신인지명 드래프트에 유리한 7등 아래로 쳐져 전력보강을 꾀하려는 이른바 ‘고의패배’ 의혹이 불거졌던 것. 총재의 경고서한이 발송됐지만 사태는 봉합되지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번 시즌 들어 농구계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심판의 욕설 논란과 연이은 오심 논란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결국 팬들을 농구장 밖으로 내몰았다. 농구는 배구와의 시청률 경쟁에서도 확실하게 밀리면서 겨울스포츠의 주인자리를 내주는 굴욕을 겪었다. 심지어 지상파로 중계된 남자농구 올스타전은 일주일 먼저 경산에서 열린 여자농구 올스타전보다도 시청률이 낮았다. 이젠 설자리도 없다는 얘기다.

농구계는 진작부터 위기였지만 발 빠른 대응을 하지 못해 화를 자초했다. 전자랜드 구단이 모기업의 사정으로 새 주인을 찾고 있었지만 인수기업은 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1년 예산이 300억 전후인 야구단을 서로 하겠다고 싸우는 판국에 수도권 구단의 주인조차 찾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그나마 자존심이던 통신3사 라이벌전도 이제 2015년부터는 야구에 내줄 판이다.

땅에 떨어진 남자 프로농구를 재건할 KBL의 사태수습 의지나 능력도 지금 상태로는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이미 팬들은 등을 돌렸고, 여간해선 돌아오기 힘든 상황이다. 이기려는 팀과 지려는 팀이 섞여 경기를 했다는 의혹에다 승부조작까지 있었다면 농구팬 모두가 속은 셈이다.

두려운 건 농구인 몇몇이 영구제명을 받는 것이 아니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정작 견디기 힘든 건 팬들의 마음에서 농구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토록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가 이지경이 됐는데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 누굴 탓해야 하나.

KBL 수장인 한선교 총재와 10개 구단 대표는 '환부를 도려내고 새살을 돋게 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개혁 의지다. 이사회와 모든 전문위원회는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 직접 칼을 들 수 없다면 구조조정을 외부에 맡기는 방법도 있다. 지금은 비상시국이다. 평소처럼 하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진다. 자가치유가 불가능한 부분은 고집해선 안된다. 명의를 데려와 집도를 맡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내부적으로 개선할 부분은 하되, 외부적인 힘이 필요하다면 빨리 명의를 찾아 나서야 한다.

이 참에 농구발전의 작은 걸림돌 하나까지 깡그리 제거하고 중장기적인 플랜까지 가동할 수 있다면 당장은 아프겠지만 어쩌면 지지부진한 농구계가 확실하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남자 농구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종목이었다. 올드팬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의 극적인 우승과 2002부산 아시안게임의 기적 같은 우승은 국민들을 감동시켰다.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건네준 종목이 바로 남자농구였다.

오늘도 새벽부터 싸늘한 코트에 나가 슛을 던지는 수많은 어린 선수들이 있다. 그들이 한국 농구의 미래다. 그들이 코트에서 당당하게 뛸 수 있도록 판을 만드는 작업이 지금 필요하다. 버릴 것이 있다면 버려야 한다. 승리를 향한 열정과 좋은 경기를 위한 지원이 어우러진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다. 

기로에 선 한국 남자 농구가 동네농구로 전락할지, 아니면 농구대잔치 시절의 호황기를 다시 맞을 수 있을지는 지금부터 몇 달 사이에 달렸다. 시간이 많지 않다. KBL의 각성과 변화를 주시한다.



[사진=강동희 전 감독 (C) 엑스포츠뉴스 DB]


홍성욱 기자 mark@xportsnews.com

ⓒ 엑스포츠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

주간 인기 기사

연예
스포츠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