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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제로 다크 서티', 참을 수 없는 '빈라덴 추격'의 무거움

기사입력 2013.03.08 11:50 / 기사수정 2013.03.11 15:27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2001년 9월11일. 전 세계의 시선은 미국 뉴욕에 쏠려있었다. 21세기를 갓 넘긴 시점에서 인류사에 남을 어마어마한 테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함께 뉴욕의 상징이었던 '110층짜리 쌍둥이 빌딩'(세계무역센터)이 돌진하는 비행기에 충돌돼 무너지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생히 중계됐다.

도대체 누가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을까? 미국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1957~2011)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를 검거하기 위해 대규모의 수사가 펼쳐진다. 미군과 CIA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을 비롯한 중동 지역을 샅샅이 수색한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영화 '제로 다크 서티'는 무려 10년간 진행된 '빈라덴 추적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것이다. '제로 다크 서티'란 자정에서 30분이 지난 시각을 뜻하는 군사용어로, 미국 네이비씰 대원들이 빈 라덴 은신처에 도착한 시각을 가리킨다. 
영화는 빈 라덴을 좇는 한 CIA 여성요원의 눈물겨운 집념을 중심축으로 삼아 전개된다. 수사에 투입됐던 요원들의 안타까운 희생도 그려진다. 그리고 미국 정부의 그늘도 '제로 다크 서티'가 다루는 소재 중 하나다. 빈 라덴을 잡기 위해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43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지만 소득을 얻지 못한다. 당시 미국 정부와 CIA의 무능함이 이 영화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2시간37분 동안 10년 동안 벌어진 실제 사건을 요약했다. 참을 수 없는 테러를 주도한 자에 대한 추격은 매우 진지하면서도 무겁게 진행된다.



'제로 다크 서티', 빈라덴 추격과정에서 나타난 '미국의 추악함'을 고발


'제로 다크 서티'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당시 빈라덴 추격에 참여했던 실존 인물들의 증언과 빈라덴 사살 이후 공개된 기밀문서를 토대로 완성됐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존 인물의 실명을 쓰지 않고 철저하게 '영화의 캐릭터'로 새롭게 탄생했다. 주인공인 마야(제시카 차스테인 분)는 빈라덴 추격에 참여한 실제 요원들을 조합해 창조한 허구의 인물이다.

'빈라덴 추격담'은 철저하게 마야의 시선에 따라 진행된다. CIA 초보 요원이었던 마야는 상사인 댄(제이슨 클락 분)이 빈라덴 측근 인물을 고문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잔인하게 진행되는 물고문에 충격을 받은 마야는 당황한다.

고문 장면은 한동안 미국 정부가 은폐했던 '진실'이다. 이 영화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군인은 절대로 고문을 실행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빈라덴 측근에게 잔혹한 고문을 수행했던 댄은 TV로 방영되는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이 장면을 통해 '제로 다크 서티'는 고문을 가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미국 정부의 거짓말을 폭로한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마야는 어딘가 엉성해 보이는 '초짜' 이미지를 풍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빈 라덴 추격에 열정을 태우는 요원으로 변모한다. 특히 자신이 가장 존경하고 따른 선배인 제시카(제니퍼 엘 분)가 빈 라덴 측근의 폭탄 테러에 목숨을 잃으면서 그녀의 집념은 더욱 강해진다. 동료 요원들이 '불가능한 임무'라며 하나 둘씩 떠날 때도 마야는 흔들리지 않는다. 한 여성 요원의 끈질긴 집념은 끝내 '빈라덴 사살'로 이어진다.

'제로 다크 서티'는 테러리스트 추적이라는 본연의 임무보다는 개인의 승진과 안위만 일삼는 CIA 고위 간부들의 모습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비글로우 감독은 이러한 CIA의 무능함이 빈 라덴을 사살하는데 10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하게 했다고 소리높여 비판하는 것 같다.    



비글로우 감독의 힘있는 연출력과 차스테인의 명연기가 돋보이는 영화


캐서린 비글로우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인정받는 여성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는 전쟁으로 인해 인간성이 얼마나 황폐되는지를 고발한 '허트 로커'로 2011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여성 감독답지 않게 선 굵은 연출력을 자랑하는 비글로우는 '허트 로커' 이후 또 다시 첩보스릴러 '제로 다크 서티'를 선택했다.

이 영화의 압권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빈라덴 은신처 습격' 장면이다. 비글로우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거친 카메라 워크로 생생하게 재현했다. 흔들리는 카메라로 찍힌 영상은 관객들이 빈 라덴 사살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됐던 제시카 차스테인의 뛰어난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로 자리 잡은 차스테인은 '마야'라는 복잡한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제로 다크 서티'는 매우 사실적이면서 객관적인 영화다. 영화는 주인공 마야를 비롯해 등장인물 누구의 주장도 부각시키지 않는다. 빈 라덴을 사살한 미국의 첩보능력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비글로우 감독은 정치적인 입장에 대해 시종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려고 노력한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나는 이 영화로 인한 정치적 논란은 얘기하고 싶지 않다. 사실을 토대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고 판단은 관객들에게 맡기고 싶다"라고 밝혔다.

올해 아카데미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제로 다크 서티'는 음향편집상을 수상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는 최고작품상인 벤 애플렉 감독의 '아르고'나 감독상을 수상한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참고로 시사주간지 '타임'은 '제로 다크 서티'를 '2012년 최고의 영화'로 선정했다. 또한 뉴욕, 보스턴, 워싱턴 비평가 협회는 '아르고' 대신 '제로 다크 서티'에 작품상을 안겨주었다.

지난 7일 개봉한 '제로 다크 서티'는 현재 전국에서 상영 중이다.

[사진 = 제로 다크 서티 스틸컷]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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