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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V] V리그 '한국형 외국인 선수'들의 명과 암

기사입력 2012.10.02 04:42 / 기사수정 2012.10.02 04:42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생각대로 잘만 해주면 좋을 텐데…"

2012~2013 프로배구 V리그 개막을 앞둔 각 구단은 올 시즌도 외국인 선수에 거는 기대가 크다. 잘 지은 '외국인 선수 농사'가 풍성한 수확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의 비중은 선수의 기량과 팀 사정에 따라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남자부에서는 대한항공과 KEPCO가 지난 시즌 뛰었던 마틴(슬로바키아, 대한항공) 안젤코(크로아티아, KEPCO)와 재계약을 체결했다. 두 팀은 국내리그에서 검증을 받은 이들과 일찌감치 계약을 맺었다.

'한국형 외국인선수'의 전형을 제시한 팀은 삼성화재다. 삼성화재를 거쳐 간 외국인 선수들은 정규리그 MVP는 물론 챔피언결정전 MVP에 등극했다. 또한 안젤코 추크(2007~2009)와 가빈 슈미트(캐나다, 2009~2012)는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삼성화재가 외국인 선수 영입에 성공을 거둔 이유는 여러 요인이 있다.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선수의 명성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노장 선수들이 주축이 된 팀과 화합할 수 있는 점에 무게 중심을 뒀다. 또한 기술은 부족해도 높이와 힘을 중요하게 여겼다. 여기에 시즌 내내 뛸 수 있는 체력도 요구했다.

삼성화재는 국내 구단들 중 최고의 수비와 서브리시브 능력을 갖춘 팀이다. 문제는 스케일이 큰 공격을 소화할 '거포의 부재'였다. 프로 출범 이후 늘 우승권에 머물렀던 삼성화재는 신인드래프트 순위에서 항상 맨 뒷줄에 서야했다.

대학에서 명성을 떨친 공격수들은 LIG손해보험과 대한항공 그리고 막내 구단인 러시앤캐시 드림식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공격수가 부족했기 때문에 팀의 득점을 책임져줄 외국인 선수가 필요했다. 이러한 역할을 맡은 안젤코와 가빈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해냈다.

안젤코와 가빈이 V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삼성화재의 리시브와 토스가 가장 안정됐기 때문이다. 현재 KEPCO에서 두 시즌 째를 맞이한 안젤코는 "삼성화재 시절 나에게 볼을 올려준 최태웅은 대단한 선수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가 아시아 최고의 세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팀을 옮겼지만 나를 아직까지 기억해주고 반갑게 대해주는 삼성화재 선수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제적인 이름값은 떨어져도 '자기희생'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한국형 외국인 선수'의 첫 번째 조건이다. 3년 동안 함께했던 가빈과 작별을 고한 삼성화재는 새로운 외국인 선수로 쿠바 출신의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23)를 선택했다. 신치용 감독은 "레오에게 우리 팀 분위기를 따라오라고 요구했다. 남미 선수들은 이런 점이 미흡한데 레오는 팀 분위기에 잘 따르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만 4시즌 째를 소화하고 있는 안젤코는 '한국 사람'이 다 됐다.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그는 '형' '동생'식의 한국형 호칭에 익숙해져 있다. 또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만하는 외국인 선수에서 벗어났다. 게으른 후배들을 질책하고 선배들의 말에 수긍할 줄 아는 자세를 갖춘 그는 "올 시즌 정규리그를 처음으로 소화하는 세터 김정석을 마음껏 지원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가 게으름을 피운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웃음)"고 밝혔다.

마틴 역시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자세를 높이 평가받아 재계약에 성공했다. '한국형 외국인 선수'의 또 하나의 조건은 '빠르기'보다 '높이'를 추구하는 경기력에 익숙해져야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한다'는 격언이 있다. 국내 V리그에 들어오면 당연히 한국의 배구에 적응해야하고 이곳의 문화에 익숙해져야 한다.

하지만 모든 선수들이 한국배구에 융화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국내에 들어온 선수들 중 가장 이름값이 높았던 이들 중 한 명은 기예르모 팔라스카(스페인, 전 LIG손해보험)다. 유럽 정상급 공격수였던 그는 영입과 동시에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유럽보다 몇 박자 느린 한국식배구에 적응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세터와의 호흡 문제였다. 빠른 토스에 익숙했던 팔라스카는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하지 못했다. '배테랑 세터' 최태웅(현대캐피탈)은 "처음 호흡을 맞출 때 가빈과 안젤코는 당연히 빠른 토스에 익숙했다. 처음에는 높이를 살려주는 볼을 낯설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배구에 적응해 나갔다"며 외국인 선수와의 호흡에 대해 설명했다.

러시앤캐시 드림식스가 처음으로 선택했던 외국인 선수는 공격수가 아니었다. 젊은 공격진이 풍부한 팀의 사정을 고려해 장신 세터 블라도 페트코비치(세르비아)를 데려왔다.

블라도가 띄워주는 빠른 토스에 기대를 걸었지만 국내 공격수들이 여기에 따라오지 못했다. 김호철 현대캐피탈 총감독은 "스피드 배구는 세계의 추세지만 우리 선수들과 유럽 선수들의 체형과 파워는 분명히 다르다. 빠른 배구를 추구하되 우리의 장점을 살리면서 적절하게 조합시켜야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러시아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가빈은 왼쪽 옆구리에 '헌신 인내 열정'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고 코트에 나섰다. '자기희생'의 미덕을 중요시하는 한국문화와 배구에 융화되는 것이 '한국형 외국인선수'로 가는 지름길이다. 반면 세계무대에서 익힌 외국인 선수의 장점을 한국배구에 맞게 살려주는 점도 과제로 남았다.



[사진 = 가빈 슈미트, 안젤코 추크, 블라도 페트코비치 (C) 엑스포츠뉴스DB]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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